명절에 던지는 도발적 질문 하나. 대한민국에서 정말로 명절을 기다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명절 가사노동, 시월드 스트레스 등 주부들이 겪는 명절증후군은 너무도 뻔한 레퍼토리지만, 사실은 남편들도 고단하기는 매한가지다. 운전에, 나가는 돈다발에, 부모·형제에다 마누라 눈치에. 일가친척들의 관심을 견뎌야 하는 싱글녀·싱글남들의 스트레스는 물론이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기혼여성인 나 역시 명절이 다가오면 우울해진다. 명절 가사노동, 장기간 이동의 피로함은 그렇다 치자. 연로하신 친정 부모님이 올해도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실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명절, ‘산산가족’들의 핏줄 확인 의례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명절을 폐지하자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농경사회의 유물인 명절은 묘한 연민이 느껴진다. 명절에 자행되는 확대가족의 윤리규범은 강압적지만, 이 징글징글한 강압성의 이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련함이 있다. 현대의 명절은, 혹은 귀성할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은, 어떤 경제적 실용성이나 능력도 없다는 걸 인정한 대신 문화적 가치만을 인정받은 채, 오지 않을 전수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그러니까 현대 한국 사회에서 명절은 이산가족을 넘어 산산가족이 되다시피 한 핵가족들이 제집 문턱을 넘어서는 수준의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례적 의식인 셈이다.
문제는 명절 자체가 아니라 귀성 전쟁이다. 고작 3~4일 동안에 이 좁은 나라에서 수천만 명이 집중적으로 움직인다.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에서 흘려버린 시간 때문에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극도로 제한된다. 보통 명절 휴가는 2박3일, 가는 날 오늘 날 빼면 기껏해야 하루가 확대가족 문화 체험을 위해 허락된다. 제사가 끝나면 마치 의무방어전의 부담에서 벗어난 것처럼, 떠나기 바쁜 서로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명절의 뒤끝은 씁쓸하다.
명절 연휴가 좀더 길기만 해도 상황은 훨씬 낫지 않을까? 명절 연휴에 연차휴가를 2~3일 정도만 붙여 사용할 수 있다면 훨씬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귀성과 귀경이 분산되니 교통체증도 덜할 것이다. 여성들로서는 맘 편히 친정도 다녀올 수 있다. 계획만 잘 세운다면 가족과 고향 근처로 가벼운 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 이왕지사 욕먹기로 각오한 싱글들은 조금 더 먼 나라로 도피했다가 올 수도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들의 연차유급휴가는 평균 15.3일인데, 실제 사용 일수는 고작 7.1일이다. 소진율이 50%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주어진 연차휴가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어도 명절이 훨씬 여유로워질 텐데. 역시 문제는 제도 이전에 문화다. 휴가 사용이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직장 내 경직된 분위기’(42%)였다.
이에 반해 프랑스 등 서구 유럽에서는 유급휴가 사용률이 거의 100%라고 한다. 스웨덴의 경우 8주 휴가에, 여름에만 5주를 연이어 사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책상 뺄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웬만한 직장에서 일주일 이상 휴가를 쓰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휴가를 늘리는 건 별도로 하고 있는 휴가나마 제대로 쓸 수 있어도 명절이, 아니 삶이 훨씬 여유로워질 텐데 말이다.
시댁이 부산인데 명절마다 남편과 약속한다. 다음에는 꼭 명절에 하루이틀 휴가 내서 부산 여행을 하자고. 그 약속, 아직까지 지키지 못했다. 부산의 명물인 사직구장에도 가보고, 해운대에 가서 비릿한 바닷바람도 쐬고 싶다. 그러다보면 명절 우울증 대신 여행 설렘이 생기지 않을까? 확대가족 체험의 의무방어전으로 찌들어버린 한가위를 가을휴가, 가을방학처럼 좀 발랄하게 보내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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