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일이 연일 중앙 언론을 장식했다. 지난 5월20일 경남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선로 공사가 재개됐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다치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는 장면, 알몸으로 공사에 저항하는 장면이 날마다 보도됐다.
이런 뉴스를 보며 걱정하고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왜 저러지?’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왜 시골 할머니들이 저렇게 결사적으로 송전선로에 반대하나?’라고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님비’(NYMBY)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밀양 송전선로에 반대하는 것은 지역 이기주의고, 밀양 주민들 때문에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식의 사설이 쏟아졌다.
님비 얘기를 좋아하는 언론사 데스크나 기자들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어느 날 한국전력 직원이 찾아와서 ‘당신 집 옆 4m 위로 765kV 송전선이 지나갑니다. 지금 법에 따르면, 송전선에서 3m까지만 보상하기 때문에 당신 집은 보상금 한 푼 없습니다’라고 얘기한다. 그런데도 당신은 ‘국책사업이니까 협조해야지요’라며 쿨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 옆에 대형 건물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포클레인 밑에 드러눕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물며 초고압 송전선이 마을과 학교, 논밭을 지나가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있을까?
지난 5월22일 밀양의 송전탑 반대 현장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다. “제발 예전처럼 살도록 그냥 놔두면 좋겠다. 아니면 집과 땅을 사주고 이주를 시켜주든지.” 이것이 밀양 주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어느 날 갑자기 초고압 송전선로가 마을과 논밭을 지나가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8년 동안 반대운동을 해왔다. 지난해 1월에는 평생을 같이 살아온 70대 이웃이 분신을 하는 비극까지 겪었다. 그래서 주민들 중에는 ‘공사를 강행하면 나도 분신하겠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래서 지난 5월20일 이후 밀양의 송전탑 반대 현장은 하루하루가 급박했다. 밀양의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로부터 문자 수신을 하고 있던 나는 매일 아침을 ‘×××번 송전철탑 현장에서 ○○○ 할머니가 다쳤다’는 문자로 시작해야 했다. 악몽 같은 상황이었다. 내가 이런데 매일매일 몸으로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주민들은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그래서 밀양 주민들은 ‘공사를 중단하고 대안을 검토할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해달라’고 요구했다.
전문가 1명이 주민의 운명을 결정?다행히 뒤늦게나마 국회가 중재에 나섰다. 한전은 처음에는 완강했다. 공사 중지만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5월29일 최종 합의를 시도하기로 돼 있었지만, 그 전날까지도 합의가 이루어질 전망은 불투명했다.
그런데 5월28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밀양 송전선로 문제로 장관들을 질책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부와 한전은 40일간의 전문가협의체 활동에 동의했고, 공사 중지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협상은 막바지에 난항을 겪었다.
정부와 한전이 주장한 하나의 조항이 문제였다. 전문가협의체에서 다수결로 정한 사항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문가협의체는 한전 추천 3명, 밀양 반대 대책위 추천 3명, 국회 추천 3명(여당 추천 1명, 야당 추천 1명, 여야 합의 1명)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여야 합의로 추천되는 1명의 전문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밀양 송전선로 문제가 좌우될 수 있는 셈이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것도 아니고 주민들이 동의한 것도 아닌 전문가의 손에 주민들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였다. 그래서 밀양 반대 대책위는 그 조항에 대해 끝까지 문제제기를 했다. 결국 전문가협의체는 국회에 검토보고서를 내고, 국회 상임위원회(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권고 의견을 내면 한전과 주민 쪽이 따르는 것으로 절충됐다.
합의가 타결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이 착잡했다.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전문가 협의체가 구성되기는 했지만, 9명의 전문가와 국회 상임위의 판단에 따라 밀양 4개 면, 20개 마을 주민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협의체에서 검토하는 내용도 ‘이미 저질러진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해 말부터 가동될 예정이라는 신고리 3호기에서 나오는 전기를 어떻게 송전할 것이냐가 우선 검토 과제로 돼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검토가 필요하다. 그동안 주민들은 굳이 765kV 송전선로를 새로 건설하지 않더라도 기존 선로를 이용해서 전기를 송전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우회 노선을 이용한다든지 지중화를 하는 방안도 주장해왔다. 전문가협의체는 이런 가능성들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전문가협의체는 밀양 송전선로 문제가 생기게 된 근원을 따져봐야 한다. 근원을 따져야 해법도 보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첫째, 바닷가에 원전을 지어 765kV 초고압 송전선로를 통해 전기를 보내는 게 과연 필요하냐는 것이다. 밀양을 지난 송전선로는 다시 대구로 향하게 되는데, 대구 지역에서 전기 수요를 줄이고 자체발전 비중을 늘리면 765kV 송전선로는 필요 없다.
공법학회 “보상 범위 80m로 해야”둘째, 송전선로가 필요하다면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송전선로에서 좌우 3m까지만 보상해주는 것은 주민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2011년 한국토지공법학회는 최소한 송전선로 끝에서 좌우 80m(대지는 180m)까지는 보상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주민들은 이것도 불충분하고, 실제 피해범위는 그보다 더 넓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제대로 보상하려면 송전선로 건설 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시골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려면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송전선로 건설을 재검토하는 것이 맞다.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한 뒤 밀양 반대 대책위에서 연락이 왔다. 전문가협의체에 참여해달라는 것이다. 그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마음은 무겁다. 그동안 많은 협의기구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가협의체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바깥에 있는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밀양 주민들이 왜 그렇게 절박하게 반대하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한다. 물론 나도 해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협의체 내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부디 40일이라는 공사 중지 기간이 끝났을 때 밀양에 평화가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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