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8학군 교실에 ‘일베질’ 고교생이 태반인 현실
‘괴물’ 배척 말고 그들의 멘털 이해하려는 노력 선행돼야
보습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올해 초, 학원에서 알게 된 학생이 내게 안 부를 물었다. 수능도 치렀겠다, 어지간히 심 심했나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일베’ (일간베스트저장소)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일 베가 뭐임?”이라고 모르는 체했다. 내가 “님 반응 왠지 연기 같음”이라고 의심하자 “ㅋㅋ ㅋㅋ 우리 학교 이미 ‘산업화’됨. ‘일베 학교’ 임”이라고 밝히며 덧붙였다. “‘청정지역’인 반 도 있는데, 대부분 교실에서는 학생의 반 이 상이 일베를 한다.” 그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자립형 사립고에 다녔다. 이는 그가 중간계 급의 자제이며 공부도 꽤 잘하는 학생이라 는 사실을 함축한다.
일베의 월간 페이지뷰는 10억 건이고, 회 원 수는 수십만 명이다. 전효성도 여기에 포 함될까? 그룹 시크릿의 멤버 전효성은 지난 5월1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저희는 개 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민주화’라는 언어를 ‘개 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 이다. 일베에서 쓰는 용법이기에 많은 사람 들이 그가 일베를 할 거라고 추측했다. 일베 하는 주변인에게서 은연중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옹호론도 존재했다. 어찌됐든 일베 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일베 유저들은 ‘잉여력’을 뽐내며 도를 넘는 ‘드립’을 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능욕하고, 전라도 사람들을 혐오하 며, 한국 여성을 비하한다. 일베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일베 유저를 사회 부적응자로, 혹 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며 타자화한다. 하지 만 대학강사, 사법연수원생 등 ‘배울 만큼 배 운’ 사람들도 일베 유저고, 강남의 고등학교 교실에서도 일베 하는 이들이 태반인 것을 보 면, 일베를 괴물들의 집합이 아닌 시대의 초 상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일베로 인한 사 회 갈등을 극복하려면 일베의 ‘멘털’을 이해 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젯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일베 하는 강 남 학생’과 통화했다. 그는 ‘종북 프레임’을 가 진 부모 아래 자라며 촛불집회를 겪었고, 그 러면서 북한·좌파·전라도 등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전라 도 출신 대통령인 김대중이 북한에 ‘퍼주기’ 를 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 하며, “일베에서 언어 유희와 합성으로 이런 점을 까는데, 솔직히 재밌다”고 말했다. “햇 볕정책이 아니라 핵볕정책” “(김대중은) 노벨 평화상이 아니라 노벨물리학상” 같은 농담 이 그 예다. “노무현도 북한에 퍼줬다. 그런 노무현보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는 감 성적인 사람들이 우습다”고 덧붙이며 촛불 집회에 대해서는 “‘주작’(‘조작’을 뜻하는 은 어)에 선동당해 나온 사람들은 멍청하다” “좌파는 꼰대 같다. 촛불집회에 비판적인 사 람들을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탄압했다(이 때문에 ‘민주화’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걸 로 보인다)”고 말했다. 슬쩍 부모님에 대해 물 어봤더니 부모님 역시 전라도 사람이 대통령 이 돼 나라가 망할 뻔했다고 생각하신단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이들을 변화시키 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꼰대질’과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화’가 해결책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다음주에 직접 그를 만나 ‘현피’… 아니 얘기 나눠야겠다. 친구도 데리고 나오 라고 해야지.
최서윤 월간 편집장
증오와 냉소 합리화하는 자폐적 언어놀이
뭇매 맞은 전효성이야말로 민주주의 교육의 공로자
탈민주화 세대에 민주주의 가치 역설적 방식으로 환기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거든요. 민주화시 키지 않아요.” 걸그룹 ‘시크릿’의 멤버 전효성 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던진 이 말은 역 설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민주주의의 좋은 교육 사례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3가지 정신 이 자유·평등·박애임은 잘 알 것이다. 개성 존중은 아마도 자유의 정신에 가까우니 민 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해도 무방 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시키지 않는다니?
사실 전효성의 발언은 이른바 ‘일베충’이 사용하는 ‘민주화시키다’의 정치적 의도에 동의하기보다는 그 잘못된 문법을 사용하 고 있을 뿐이다. 일베충들은 ‘민주화’를 ‘몰 락시킨다’는 부정적인 말로 사용한다. 반대 로 ‘산업화’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주입 해 성공시킨 긍정적인 말로 사용한다. ‘민주 화’는 조롱의 언어로, ‘산업화’는 찬양의 언 어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수동형의 ‘민주화되다’와 능동형의 ‘산업화시켰다’는 말은 같은 의미다. 이들의 언어는 이념적 당 파성, 의식적 배타성, 정서적 폭력성이 아 주 분명하다. 그들만의 언어놀이로 자신의 증오와 냉소의 감정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민주화시키겠다는 말은 결국 역사적 민주 주의에 대한 냉소적 감정의 극단적 반어법 이다.
전효성의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는 말은 일베충의 극단적 파시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행간에 숨은 뜻을 보면 본인의 의 도와 상관없이 오히려 그것을 공격하고 있 다. 개성을 존중하는 시크릿은 일베충, 너희 처럼 민주화시키지는 않는다는 말! 전효성 의 발언이야말로 일베충이 ‘민주화시키려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잘 간파하고 있다. 전효 성은 개성과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 요체 라는 의미를 일베충의 ‘민주화’ 논리를 역으 로 조롱하며 알려준 것은 아닐까? 전효성이 한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란 말은 오로지 일 베충이 자신들의 우익 파시즘을 합리화하기 위해 정의한 ‘민주화’의 관점에만 한정된다. 개성과 자유는 일베충의 논리대로 ‘민주화 될 수 없다’는 위트! 일베충의 조롱의 언어를 다시 조롱하는 이 탁월한 반전의 수사학! 전 효성이 던진 이 말의 무의식은 적어도 나에 게는 일베충에게 던지는 경고의 말처럼 들 린다.
그러니 생각만 바꾸면 될 일이다. ‘민주화’ 가 진정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면 된다. 이번 기회에 전효성은 민주화의 진정한 의미가 무 엇인지를 잘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생 각 없이 내뱉은 일베충의 ‘민주화시키다’의 의미가 어떤 의도로 사용됐는지도 잘 알았 을 것이다. 역사적 민주주의의 시대에 살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어찌 보면 이런 해프닝 이 민주주의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베충의 극단적인 수사학과 행동은 오히려 이런 계기를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잘 모르는 세대에게 좋 은 교육 재료가 되었다. 전효성의 발언으로 일베충이야말로 ‘민주화된’ 것일까? 전효성 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는 지금, 진정한 민 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 민주주 의 교육의 아이돌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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