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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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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트윗, 갑질의 횡포

등록 2013-05-15 20:18 수정 2020-05-03 04:27

“내가 당했으니…” 고통의 평등주의 악순환 끊어야

‘슈퍼갑’ 정점으로 수많은 ‘을들’이 위계의 피라미드 형성
‘을들’ 간 착취 구조 못 깨면 ‘제2 남양유업’ 영원히 지속
961호 크로스트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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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사태 등으로 갑을관계가 문제가 되니 어느 백화점은 ‘갑을’이란 문구를 없애 자고 한다. 헝겊인형에 이름 쓰고 저주하면 그 사람이 죽을 거라 믿는 것과 비슷한 수준 의 발상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부러 저 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름을 뭘로 바꾸건 갑을관계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 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무서워지기도 한다.

갑과 을은 주지하다시피 계약상의 강자 와 약자를 가리킨다. 자본의 차이라고 표현 하건 힘의 차이라고 표현하건 어쨌든 갑을관 계는 비대칭적이다. 발본적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한다면 이 비대칭성, 불균등성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을 게다(“모든 권력관계의 억 압성을 철폐하자”). 우리의 목표로 삼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관점이 당장 실용하 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권력의 비대칭은 일종의 ‘상수’라고 봐야 한다. 지금 사람들의 반응은 해도 해도 너무한 갑들의 횡포에 대 한 공분이고 공감인 것이다.

갑을관계와 무리한 ‘갑질’은 예전에도 있 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로 과거에는 유야 무야 넘어갔던 ‘갑질’이 더 빨리, 더 많이 노 출된 측면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른바 신 자유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갑을관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핵심은, 기업의 아웃 소싱(외주)이 과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 아졌다는 점이다. 외주화·비정규직화를 통 해 기업의 현재적 비용과 미래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 그리고 그 비용과 리스크를 사회 전체로 떠넘기는 것. 정리하자면 신자 유주의 원리가 국가의 통치에 스며들고, 통 치권력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 을 법적·제도적으로 정당화해줌으로써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소비자들에게 전가 되는 과정의 반복과 축적.

명백한 사실은 시간이 가도 ‘갑질’이 줄어 들기는커녕 점점 혹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이것은 사회구조적 문제다. 한 국의 상황을 보자. 이른바 ‘슈퍼갑’을 정점으 로 수많은 을들이 또다시 서로 갑을관계를 맺으며 촘촘한 피라미드를 형성하고 있는 시 장에서, 노동조건이나 공정경쟁에 대한 기업 의 인식 수준은 낮고 국가의 감시와 규율마 저 턱없이 미흡하다. 이런 상황은 룰을 지키 는 경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피라 미드의 구성원은 현재의 위계에서 미끄러지 지 않기 위해 제 살을 잘라 먹으면서까지 필 사적으로 버티거나, 편법과 불법을 강요하는 갑의 요구를 다시 자기 아래의 을에게 전가 시키게 된다.

피라미드의 중간층 내지 중하위층의 을 들은 갑에게 피를 빨리는 피착취자이면서도 자기 밑의 을에게는 자신의 갑보다 훨씬 가 혹한 착취자인 경우가 많다. 피라미드의 최 하층에 있던 을이 지위를 높여 이제 자신의 을을 거느리게 됐을 경우, 그동안 층층시하 의 갑들에게 당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반복할 가능성 또한 높다. 비평가 이 택광이 언젠가 탁월하게 묘파한, “내가 당했 으니 너도 그만큼 당해야 한다”는 ‘고통의 평 등주의’가 ‘갑질’의 동학에도 정확히 작동하 는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지 않고선 남 양유업 사태는 기업명만 바뀐 채 영원히 지 속될 게 틀림없다.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r>

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여도 될 사람들이 대리점의 지점장으로, 특수고용노동자로, 영세자영업자로 밀려나는 상황에서 ‘갑의 횡포’는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 2010년 7월 불법 다단계 하도급 폐지를 요구하며 경기도 군포시의 한 건설현장에서 농성 중인 건설노동자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여도 될 사람들이 대리점의 지점장으로, 특수고용노동자로, 영세자영업자로 밀려나는 상황에서 ‘갑의 횡포’는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 2010년 7월 불법 다단계 하도급 폐지를 요구하며 경기도 군포시의 한 건설현장에서 농성 중인 건설노동자들. 한겨레 김명진 기자

‘갑질’ 배양하는 매트릭스는 흔들리는 노동

노동자로 보호받아야 할 이들이 영세사업자가 되는 현실
사태 해결 열쇠는 노동에 대한 존중과 노동시장 복원
961호 크로스트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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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이 새삼 화제다. 남양유업의 욕설 파 문 때문에 더 커지긴 했지만 이른바 ‘라면 상 무’ ‘폭행 빵 회장’ 등 최근 화제가 된 여러 사 건들 때문에 그간 억눌려 있던 을들이 목소 리를 높일 기회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소 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공간에서 을 의 입장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가 겪은 갑들 의 부당한 ‘갑질’들 때문에 겪은 고충을 쏟아 내는 통에 인터넷 세계가 떠들썩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자신들이 겪어본 갑질 의 종류도 다종다양하다. 남양유업처럼 프 랜차이즈 본사에서 대리점에 횡포를 부리는 경우를 말하는가 하면, 법적으로 개인사업 자의 지위인 학습지 교사, 화장품 방문판매 원 등에 대한 대기업의 부당한 착취를 예로 드는 경우도 있다. 젊은 사람들은 ‘손님은 왕’ 이라며 감정노동을 강요당하는 아르바이트 를 하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 역시 과거 덤프트럭 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에서 일할 때 건설현장에서 벌어지 는 갑질을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다. 건설 산업은 다단계 하도급이 가장 뿌리 깊게 자 리잡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일 것이다. 원청은 하청에게, 하청은 그 아래의 업자에게, 업자 는 또 그 아래의 업자에게 갑질을 하며 자기 배를 불린다.

부당한 정도는 아래 단계로 내려올수록 더 심해지고 치졸해진다. 이 괴이한 먹이사 슬의 맨 끝에 있는 덤프트럭 노동자들은 현 장소장이 이름 대신 “야!”라고 부르며 모욕을 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만 했 다. 과적을 강요당하고 도로에서 단속에 걸 려 운전자가 벌금을 뒤집어써도 일거리가 없 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냥 참아야 했다. 중 간업자가 원청으로부터 받은 공사대금을 떼 먹고 도망가도 덤프트럭 노동자는 법적 보호 를 받을 수 없었다. 덤프트럭 노동자들은 “인 간이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갑질의 부조리는 을도 ‘인간’이라는 것을 갑들이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는 목 소리도 많다. 갑들이 을의 인간성을 인정하 고 갑질을 인간적으로 용납되는 수준으로만 했더라면 롯데백화점의 매출 실적 압박에 입점업체 직원이 자살하는 비극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성은 ‘노동’을 통 해 유지된다. 즉, 사회의 노동에 대한 태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갑질의 형태도 달라진다. 법에 의해 보호받는 노동자의 처지여도 될 사람들이 대리점의 지점장으로, 개인사업자 화된 특수고용노동자로, 노동시장에서 탈락 한 영세자영업자로 밀려나는 상황에서 ‘갑의 횡포’는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 사태 해결의 진정한 실마리는 여기에서부터 얻어야 한다. 계약서에서 갑을 명칭을 없애거나 역할을 바 꾼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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