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00년 전인 1913년 미국 디트로이트 하일랜드파크의 포드자동차 생산 공장엔, 훗날 세상을 뒤바꾸게 되는, 새로운 ‘물건’이 등장했다. 바로 컨베이어벨트로 길게 이어진 대규모 자동차 조립·생산 라인이다. 창업자 헨리 포드가 이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의 ‘발명가’인 건 아니다. 효율적인 생산체계를 갖추는 데 늘 골몰하던 헨리 포드는 당시 미국 최대 우편판매업체인 시어스로벅의 물류 시스템을 벤치마킹했고, 심지어 시카고의 대규모 도축장에 설치된 라인 시스템에서도 아이디어를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수천 개에 이르는 부품을 표준화하고 작업 공정을 일관화한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그 전까지만 해도 포드의 대표작 ‘T모델’ 자동차 한 대를 조립하는 데 무려 750분(12시간30분)이 걸렸으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도입 직후 그 시간은 93분(1시간33분)으로 크게 단축됐다. 자동차 판매 가격을 획기적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던 건 물론이다. 1908년 825달러에 팔리던 T모델 한 대 가격은 1913년엔 550달러로, 1920년엔 255달러까지 낮아졌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도입을 착안하게 된 배경엔 뜻밖에도 ‘그놈의 영어’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비밀은 당시 미국 자동차 산업 노동력의 근간이 이주노동자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헨리 포드 자신이 19세기 중반 그 유명한 ‘감자 기근’의 여파로 미국으로 이주해온 아일랜드계 이민 가정에서 출생했거니와, 1913년 당시 포드 생산 공장의 노동자는 폴란드계(21%), 러시아계(16%), 루마니아계(6%), 이탈리아계(6%) 등이 주를 이뤘다. 한마디로,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 간에도 서로 ‘영어가 안 통했다’는 얘기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 개개인에게 정해진 작업 위치와 작업 공정을 부과하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은,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최적의 생산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100년의 세월이 흐른 2013년 4월, 대한민국 울산의 현대자동차 공장 앞 송전 철탑에선 지금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공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사내하청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에도 꿈쩍조차 않는 현대차 경영진을 향해, 사내하청 노동자의 전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려는 목적에서다. 지난해 10월17일 농성이 시작됐으니, 어쩌면 조만간 200일째를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100년 전 미국 땅에선 종족과 언어가 서로 다른, 말이 통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칸베이어벨트 앞에서 함께 일했다면, 100년 뒤 이 땅에선 하나의 언어와 혈통을 가진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하청이라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으로 나뉜 채 함께 일하고 있는 꼴이다.
물론 자동차 산업, 나아가 20세기 제조업의 역사를 새로 쓴 헨리 포드를 무작정 칭송할 수만은 없다. 하루 2.34달러에 불과하던 임금을 전격적으로 두 배 인상하고 노동자도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연 헨리 포드를 향해, 당시 노동자들은 “마르크스 대신 포드를!”이라고 외쳐댔다지만, 정작 헨리 포드는 끝까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억누른 냉혹한 자본가이기도 했다. 실제로 포드자동차는 미국 자동차 회사 가운데 가장 늦은 1941년에야 노조가 결성된 곳이다. 무엇보다 헨리 포드가 본격적으로 도입한 컨베이어벨트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 에 잘 묘사돼 있듯이, 노동자를 기계의 속도에 종속시킨 괴물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딴 ‘포디즘’은 좁은 의미의 생산 시스템을 넘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노사 타협을 특징으로 하는 20세기 사회모델의 대표적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 시대 상황에 걸맞은 창의적 해법을 제시했다는 의미에서다. 현대자동차라는 이름 앞엔 1970년대 이후 후발주자로 출발해 세계 자동차 회사 ‘빅5’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전무후무한 사례라는 찬사가 따라다닌다. 1976년 고유 모델 포니 6대를 처음 수출한 지 37년 만에 누적 수출 5천만 대의 성공 스토리를 쓴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일터와 사회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과제를 전향적으로 풀어줄 ‘현대이즘’의 출현을 기대해보는 건 과연 허튼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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