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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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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서 오줌 모으는 청년들

한국은행 앞 생태화장실 열었던 젊은이들의 ‘씨앗들 협동조합’
회비 내고 시간 내서 한 달에 한 번 총회 참여하는 이유는 “재미”
등록 2013-04-19 20:36 수정 2020-05-03 04:27

봄이다. 도시 텃밭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곳곳에서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시농 제’(始農祭)가 열린다. 비어 있는 땅, 건물 옥 상이 농사짓는 장소로 변신한다. 농사짓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넘친다. 요즘 도 시농업 바닥에서는 남녀노소가 없다. 텃밭 활동을 하는 청년들도 있다. 공부, 취업… 이 런 단어들부터 떠올리기 마련인 우리 시대 의 청년들은 왜 텃밭농사를 지을까? 이런 의 문을 풀려면 역시 사람을 만나야 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 모인 도시 텃밭 청년들은 올해 ‘씨앗들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대학에서 텃밭을 일구고 거기에서 나온 배추로 김장도 담그고, 심지어 오줌을 모아 액비를 만든다. 씨앗들 협동조합 제공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 모인 도시 텃밭 청년들은 올해 ‘씨앗들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대학에서 텃밭을 일구고 거기에서 나온 배추로 김장도 담그고, 심지어 오줌을 모아 액비를 만든다. 씨앗들 협동조합 제공

“읽은 책은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지난해부터 알게 된 ‘씨앗을 뿌리는 사람 들’이라는 모임이 있다. 대학에서 텃밭을 일 구고 거기에서 나온 배추로 김장도 담그고, 심지어 오줌을 모아 액비를 만드는 청년들이 다. ‘레알텃밭학교’라는 도시농업강좌도 몇 년째 열고 있다.

이 모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모임에 소 속된 황윤지씨가 2012년 1∼2 월호에 쓴 글을 보고서였다. 대학에서 좁은 자투리땅을 구해 오이·토마토·콩·고추·당 근·무·배추·고구마를 키운다는 사실도 신 선했지만, 도시농업강좌에 매번 60명 가까 운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한다는 것도 놀라 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텃밭을 하면 서 느낀 점을 쓴 대목이었다.

“대학에서 텃밭을 가꾸는 이 단순하고 반 복적인 일들은 내게 대학에서는 배울 수 없 었던, 진짜 알고 싶었던 것들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물했다.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로 읽었던 책들은 기억이 안 나는데, 친구들이 랑 매일같이 모여 가꿔온 텃밭의 풍경은 하 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글 속에는 졸업을 하면서 텃밭 활 동을 같이한 친구들이 흩어지는 것을 안타 까워하는 마음이 진솔하게 담겨 있었다.

지난해 5월1일 한국은행 앞에서 열린 노 동절 행사에서 황윤지씨와 그 친구들과 우 연히 마주쳤다. 그리고 많이 놀랐다. 그들은 오줌을 모으기 위한 ‘생태화장실’을 한국은 행 앞에 설치해놓고 있었다. 서울 명동의 한 국은행 앞에 생태화장실이라니! 덕분에 그 직전에 먹은 막걸리로 인한 생리 현상을 잘 해결했지만, 참 재미있으면서도 진지한 청년 들이었다. ‘혹시 고향이 시골인 청년들이 모 였나?’라고도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 들이었다.

‘왜 텃밭 활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재미’ 라는 답이 튀어나온다. 작은 텃밭이지만, 그 것을 가꾸며 느끼는 생명의 힘, 그리고 함께 가꾸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다른 곳에서 찾 을 수 없는 재미를 준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재미로’ 이렇게 활동할 수 있을지 는 고민이라고 했다.

벌써 진성 조합원이 40명!

그런데 올해 들어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는 소식을 들었 다. 이름이 ‘씨앗들 협동조합’이란다. 황윤지 씨는 협동조합 이사장이 되었다. 이제는 재 미를 넘어선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 지난 4 월10일 황윤지씨를 만나서 근황에 대한 얘 기를 들었다. 그는 여전히 생동감 있게 활동 하고 있었다. 우선 협동조합은 왜 만들었는 지 궁금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됐다. 구성원들이 대학을 졸업하면서 정체성에 대 한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마침 협동조합기 본법이 시행되면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합원은 좀 모였느냐’고 물어보니, 벌써 조합원 수가 40명이란다. 그냥 조합원이 아 니라 6개월에 5만원을 내는 조합원이란다. 진성 조합원인 셈이다. 처음에는 16명으로 시작했는데 몇 달 사이에 2배 이상이 되었다 고 한다. 그리고 여전히 ‘레알텃밭학교’를 열 고, 매주 토요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조합원은 20대가 많고,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토요일에 쉬는 게 아니라 텃밭에 모여 농사도 짓고 모임도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 조합원총회를 연다. 웬만한 애정이 아니면 참여하기 어려운 모임이다. 돈도 내고 시간도 내야 한다. 그런데도 모임을 열면 절반 이상이 출석한다. 이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여전히 대답은 ‘재미’다. 재미없는 일은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재미있으니까 참여율도 높다는 것이다. ‘혹시 귀농을 고민하는 청년은 없느냐’고 물어보니, ‘더러 있다’는 대답이 나온다. 황윤지씨와 함께 만난 이환희씨가 그런 편이다. 이씨는 귀촌·귀농을 고민하고 있는데, 일종의 인턴 과정으로 생각하고 ‘씨앗들 협동조합’에 참여하게 되었다.

얼마 전 한 대학교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받았는데, 한 청년이 ‘텃밭 활동을 하고 싶은데 어디에서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인터넷에서 ‘씨앗들 협동조합’(cafe.naver.com/waithongbo)을 쳐보라고 말해주었다. 이렇게 텃밭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곳곳에 있다니. 농사를 포기한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는 참 신기한 일이다.

“놀이동산만큼 농사가 좋아라”

그래서 청년들이 얘기한 ‘재미’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아마 청년들이 말하는 그 재미는 게임을 하거나 소비를 하면서 느끼는 재미와는 다른 것이리라. 그렇다면 어떤 재미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은 ‘씨앗들’이 초등학교 특별활동(CA) 시간에 진행한 농사수업 일지를 읽으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

“농사만 지을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던 텃밭이 모두에게 재미있는 놀이터가 되어줄 수 있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놀이동산에 가는 것만큼 농사를 좋아라 한다. 다만 그게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 내가 해도 되는 건지 모르고, 손을 잡고 텃밭으로 가보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학교에 텃밭이 더 많이 생기길. 초등학교에도, 중학교에도, 고등학교에도, 대학교에도.”

‘힐링’을 얘기하는 시대에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흙과 가까이 살고 사람들과 함께 땀 흘려 일하면서 어울리던 모습일지 모른다. 함께 농사짓고 얘기하고 나눠먹는 재미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른 삶, 다른 문화, 다른 사회의 대안이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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