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야인으로 돌아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칭 타칭 ‘비즈니스맨 대통령’이었다. 대선 후보 시절엔 경제를 아는 대통령이라며 당선만 되면 대한민국 최고 세일즈맨으로 세계 무대를 누비겠노라 공언하고 다녔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친화적) 대통령’이란 단어도 이즈음 등장했다. 실제로 그는 재임 기간 중 자신의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주려 애썼다. 새벽부터 일어나 열정적으로 일하는 대통령에겐 ‘얼리버드’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퇴임을 앞두고 행한 마지막 연설에선 스스로 “가장 열심히 일한 대통령”으로 한껏 추어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돈 되는 사업을 위해 밀고 당기는 ‘딜’에 능한 비즈니스맨과,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이해관계를 매끄럽게 조율하는 소통과 통합을 이뤄내야 할 대통령 자리가 각각 요구하는 자질과 몸가짐은 번지수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주특기라 할 수주전쟁에선 몇 차례 ‘큰 건’을 성사시켰을지언정, 임기 내내 우리 사회에 불통과 뻔뻔함, 도덕의 추락이라는 생채기를 남겼을 뿐이다.
게다가 비즈니스맨 대통령의 효과는 엉뚱한 곳에서 더 두드러졌다. 대통령을 비롯해 측근 인사들이 보인 행태는, 좀 심하게 말해, 자기 비즈니스를 위해 청와대에 ‘취업’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 이전의 군사정권까지도 나름의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연대에 가까웠다면, 지난 정부는 애초부터 가격의 연대, 쿨한 비즈니스 공동체였던 격이다. ‘실용’이란 단어는 공과 사를 구별하는 의식이 유달리 허약했던 비즈니스맨들이 써먹을 수 있는 그럴싸한 가림막이었다.
취임 한 달을 맞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한 달간 보여준 행보는, 적어도 공적 가치에 대한 강조라는 점에선, 이전 정부의 행태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1577만 표나 얻을 수 있었던 데는, 지난 정부의 장돌뱅이 스타일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들에게 최소한의 ‘품격’은 지키는 인물로 받아들여진 게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은 일종의 ‘스테이츠맨 대통령’에 가깝다. 어쨌거나 원칙과 가치를 귀히 여기며 몸가짐을 가벼이 놀리지 않는 것, 비즈니스맨 대통령에겐 기대 난망인 과제이자, 스테이츠맨 대통령의 자랑스런 징표다. 여기까진 분명 훈훈한 스토리다.
그럼에도, 지난 한 달간 박 대통령의 행보에서 또 다른 우려가 가시지 않는 건, 짐짓 공적 가치에 대한 ‘과대집착증’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지난 정부의 과도한 비즈니스 성향이 우리 사회에 큰 해악을 끼쳤다면, 정반대로 국가로 상징되는 공적 영역에 필요 이상의 방점을 찍는 것 역시 우리 사회를 되레 허약한 몰골로 망가뜨릴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 개인사에 녹아들었을 아픔과 상처를 십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정서적으로 아버지와 채 분리되지 못한 ‘60대 소녀’의 감성이 ‘나=아버지=국가’라는 그릇된 등식으로 한걸음에 비약하지 않을까 두렵다. 도무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일련의 ‘인사사고’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세계 10위권 국가의 국정 시스템이, 대통령 1인의 독선과 고집에 사실상 다운됐음을 알리는 서막이다.
불온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박 대통령에겐 차라리 ‘스테이츠’로부터 좀 자유로워지라고 권하고 싶다. 공적 가치를 지키는 일에 무뎌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사실 ‘스테이츠맨’의 전성시대는 산업사회의 등장 이후 사회 구성원 간 이해 대립과 갈등 구조가 단선적이고 일차원적인 19세기 후반 아니었던가? 무대는 분명 21세기인데, 국민이 누릴 행복마저 국가가 ‘추진’하려 드는 시절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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