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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주거권’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등록 2013-03-16 17:33 수정 2020-05-03 04:27

요즘 20대의 팍팍한 삶을 지켜보며 가끔씩 나의 20대 시절을 회상해본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80년대 끝자락과 비교해 지금의 대학생을 에워싼 환경은 전방위적으로 열악해졌다. 내가 다닌 대학의 등록금은 그사이 무려 5배나 올랐다. 그때도 대학 등록금 부담이 커서 대학의 상아탑을 빗대 ‘우골탑’이라고 불렀다. 가난한 농촌에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면 자식 같은 소를 팔아야 했기에 나온 말이다. 요즘 부모들의 부담이야 오죽하랴. 대학생들의 몇 년에 걸친 투쟁 끝에 ‘반값 등록금’이 공론화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아르바이트도 빈익빈 부익부

그런데 등록금보다 더 심각한 것이 주거비다. 대학 시절을 상기해보면 당시 2명이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이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5만원 수준이었다. 간혹 전세 50만원 하는 방도 있었다. 물론 지역마다 차이는 컸지만 말이다. 요즘은 가장 열악한 주거를 상징하는 고시원도 월세 3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보도에 따르면, 대학가에서 나름 모양새를 갖춘 방을 구하려면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은 줘야 한단다. 그조차 새 학기라 얻을 수 없어 ‘집 구하기 전쟁’이라는 기사도 자주 눈에 띈다. 나의 주관적 체험치로는 24년 사이에 대학 등록금은 5배나 오르고, 집값은 10배 가까이 올랐다.

그나마 이름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학비나 주거비를 충당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과외 아르바이트였다. 대학 시절을 회상해보면 서울 출신들은 알음알음해서 과외를 손쉽게 구했다. 반면 지방 출신들은 쉽지 않았다. 부모들이 낯선 사람을 집 안에 들이는 것을 꺼리다보니 이왕이면 연줄이 닿는 서울 출신을 선호해 이들에게 과외 자리가 집중됐다. 그런데 정작 과외 등 번듯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급한 쪽은 지방 출신들이다. 등록금에 월세, 생활비 등을 충당하려면 과외 몇 개를 해도 힘들다. 명문대 출신이라도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과외 구하기가 어려웠다. 친구들 중에서는 투박한 사투리와 용모 때문에 퇴짜를 맞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 출신들 중에서는 강남과 강북의 차이가 컸다. 강남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훨씬 손쉽게 과외를 구해 2~3개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과외하는 곳이 집 근처다보니 시간 활용도 훨씬 용이했다. 반면 강북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1시간 이상 걸려 과외를 하러 갔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용돈의 빈익빈 부익부가 나타났다. 강남의 여유 있는 집의 대학생들은 과외까지 해서 풍요로운 대학 생활을 보내고,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허덕이곤 했다.

지금은 상황이 훨씬 나빠졌다. 등록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거비·생활비 부담이 매우 커졌다. 번듯한 아르바이트 자리는 더 구하기 어렵다. 자기 한 몸이라도 누일 수 있는 월세방을 구하려면 주유소, 커피전문점 등 ‘생계형 알바’를 최소한 2개는 해야 한다. 학점과 스펙이 좋아도 취업이 힘든 세상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다보니 가난한 지방 출신 학생들은 경쟁에서 점점 처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의 이면에는 대학 기숙사의 절대적 부족이 있고, 기숙사마저 수익사업으로 여기는 대학의 책임도 크다.

그것은 지방 차별이다

교육은 기회의 평등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주거 문제는 등록금 문제와 더불어 교육 기회를 구성하는 핵심 축이다.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높은 주거비 부담은 교육의 장에서도 지방에 대한 차별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방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인이 감내하도록 두는 사회는 절대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이제 반값 등록금을 넘어 ‘반값 주거권’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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