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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트윗, 지드래곤은 아티스트인가

등록 2013-02-05 21:02 수정 2020-05-03 04:27

아티스트가 아닌들 어떠하리

아이돌의 질서와 문법, 규범을 넓힌 아이돌, 지드래곤
굳이 아티스트로 부르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아이돌의 경계 확장해

948호 크로스 트윗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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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런 연예인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특 히 ‘아이돌’은 연예인 가운데서도 극한의 감 정노동이 필수적인 이들이다. 아이돌의 감 정노동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인데 도덕과 상 식, 윤리와 규율 모두에서 마땅히 모범적 존 재여야 하는 동시에 응시 가능한 대상으로 굳건해야 한다. 그래서 그 존재의 장려는 한 국 사회에서 아이돌을 가장 도덕적이면서 동 시에 전위의 집단, 가장 ‘에지’ 있으면서도 품 성이 곧은 청년으로 이미지화한다. 한 문장 에 욱여넣기도 힘든 도무지 성립되지 않는 역설이지만, 이 긴장감 속에 지금도 아이돌 은 끊임없이 길러지고 배출된다.

말하자면 지드래곤(권지용)은 이 규정과 구획의 바깥에 있는 존재로 ‘상정’되는 거의 유일한 ‘아이돌’이다. 그것이 단지 지드래곤 의 ‘이미지’라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 대단히 특별한 지평이자, 확장이다. 비슷한 시간 ‘국 민 여동생’으로 규정된 아이유가 다른 누군 가와 사진이 찍혔다는 것만으로 ‘논란’이 되 지만, 지드래곤은 대마초 흡연설이 있어도 ‘그럼, 아닐 줄 알았느냐’는 반응이 주를 이 루며 비껴간다. 지드래곤은 슈퍼주니어의 그 들처럼 순발력 있게 웃기지 못하고 동방신기 처럼 춤을 추지 않지만, 그럼에도 아이돌로 서 완벽에 가까운 위상과 형상을 갖고 있다.

이것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지드래곤이라 는 아이돌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한국적 아이돌의 질서와 문법, 그리고 규범을 획기 적으로 넓혔다. 아이돌이라는 규정이 그의 존재를 다 말하기에 지나치게 협소한 틀이란 말은 그래서 차라리 그를 ‘아티스트’라고 불 러야 한다는 주장이 어떤 얘기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 이돌 너머의 아이돌 역시 그냥 아이돌로 두 는 편이 대중문화의 경계 측면에서도 훨씬 유의미한 선택이 아닐까.

아이돌을 둘러싼 수용과 향유의 체계는 오늘도 역동적으로 변해간다. 한국 엔터테인 먼트 산업의 토양이 굳건해진다는 건 결국 그 생산물을 즐기는 층의 질감 역시 두터워져간 다는 의미다. 지드래곤의 존재를 ‘아티스트’로 격상해줘야 그가 뿜어내는 흥겨움이 더 총체 적이고 고급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 저 여전한 ‘아이돌’이라고 해도 당대 대중문화 에서 지드래곤의 가치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아이돌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아이돌이라 는 ‘체계’가 일정 경지에 오른 창작자를 수용 하기에 너무 협소하고 문제적인 것일 수 있 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지드래곤을 아이 돌 목록에서 빼내는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 는 감정노동 속에서 산업의 첨병으로 허덕이 는 아이돌에 대한 규정 자체의 모순과 부조 리를 제거하는 것일 테다. 아이돌의 생산과 유통 방식이 천박하다고 해서 아이돌이 천 박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완 기자

지드래곤은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로 데뷔했지만, 작곡능력과 래핑 실력 등을 꾸준히 선보이며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고 있다. 아이돌이 때로 노래하는 인형처럼 여겨지는 현실에서 그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드래곤은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로 데뷔했지만, 작곡능력과 래핑 실력 등을 꾸준히 선보이며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고 있다. 아이돌이 때로 노래하는 인형처럼 여겨지는 현실에서 그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먼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그의 눈이 내뿜는 무기(誣氣), 그의 노래에도 보여
래핑·작곡·샘플링 능력 갖춘 아티스트의 밝은 미래

948호 크로스 트윗2

948호 크로스 트윗2

지드래곤은 아티스트인가? 어려운 질문 일 수 있고, 쉬운 질문일 수 있다. 스스로 아 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 표방하며 다른 아 이돌 그룹과 차별화하려는 ‘빅뱅’의 리더 지 드래곤에게 아티스트의 칭호를 붙이는 건 어 찌 보면 당연한 말일 수 있다. 그는 빅뱅의 거 의 모든 곡을 만들고, 자신의 솔로 음반의 모 든 과정을 도맡아하며, YG엔터테인먼트 소 속의 다른 그룹과 뮤지션의 음반 프로듀싱에 도 참여한다. 스스로 곡을 만들고 노래와 퍼 포먼스를 하는 뮤지션을 통상 아티스트로 정 의할 수 있다면, 지드래곤을 아티스트의 반 열에서 배제한다는 것은 일단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아티스트 자격이라는 게 제작 능력 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법, 이른바 ‘뮤지션’ 으로서의 자기 내공, 음악적 완성도, 시대를 앞서가는 트렌드세터로서의 면모가 진정한 판단의 근거이겠다. 한두 곡의 표절 논란으로 그의 온전한 음악적 능력이 의심받은 바 없진 않지만, 지드래곤은 뮤지션으로서의 자기 색 깔과 음악적 완성도에서 계속 진화하는 아티 스트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곡을 만들려는 태도가 분명 하다. 곡에 분명한 개성이 돋보인다는 뜻이다. 가사와 래핑의 조화, 라임의 특이한 해석력, 예리한 리듬의 굴절, 감각적인 샘플링 능력은 최근 솔로 음반 (One of a Kind)에서 잘 보여주었다. 지드래곤은 현존 아이돌 뮤지션들 중에서 힙합, 일렉트로닉, 팝, 하드코어 장르를 자신의 감각으로 혼성교 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더욱이 그를 아티스트로서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음악적 태도와 스타일이다. 그의 인생 사를 모두 알 순 없지만, 지드래곤은 여린 내 면의 감정을 강력한 표현의 방어 기제로 극 복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때론 그것이 힘들 어서 정신적으로 방황한 듯하지만, 시대의 스타일을 앞서나가려는 감각은 탁월하다. 그 감각적 예외로 인해 때로는 대중에게 건방지 고 싸가지 없게 보이더라도 사실 그의 음악 적 살기는 아이돌식 외형적 포장을 압도한 다. 그가 먼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그는 아 마 강한 무기(誣氣)를 가진 미학적으로 뛰어 난 무당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눈을 보라.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정신적 고 통, 트라우마 같은 것이 음악적 열정으로 반 전되는 판을 만드는 것, 그것이 아티스트로 서 귀중한 자격 중 하나다. 원래 아티스트는 대중을 위해 자신을 위장해 열정적으로 속 이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는 그런 점에 서 외롭지만 유쾌한 아티스트가 되려고 계 속 노력한다. 물론 그가 현재 음악적 기득권 을 누리는 것은 사실이다. 이른바 태생적으 로 아이돌계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바, 그 것이 아티스트로서의 자양분이 된 것도 분 명하다. 형식을 좀더 파괴할 필요도 엿보인 다. 그러나 그의 남은 음악적 여정은 아이돌 에서 아티스트로의 이행을 지나 우리 대중 음악사에서 개성이 아주 강한 뮤지션으로 기억될 날을 더 많이 남겨놓고 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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