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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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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클럽

등록 2012-04-05 15:46 수정 2020-05-02 04:26
일러스트 이강훈

일러스트 이강훈

지난해 희망의 버스 당시엔 참 아름답고 눈물겨운 일이 많았다. 그중 정규와 비정규라는 자본의 분할을 넘어 아래로부터 자발적 연대를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도 참 많았다. 뒤늦긴 했지만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자신들이 ‘한 배의 운명’임을 자각한 한진중공업 정규직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반성도 소중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면 1사 1노조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조 설립에 함께하겠다는 사람들의 약속이 눈물겨웠다.

‘저공’과 ‘허공’ 사이의 논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은 도저히 편하게 버스를 타고 갈 수 없다고, 나서서 사회적 호소를 조직하겠다고 폭우를 뚫고 하루 40여km를 걸어 걸어 부산까지 내려갔다.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희망의 자전거’를 타고 왔다. 조선업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연대에 나섰고, 4차 때는 ‘모든 비정규직들의 행진’이 맨 앞에 섰다. 1년에 한 번 야유회를 간다는 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야유회를 반납하고 부산으로 향하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3만원인 버스비도 부담돼 봉고를 타고 오기도 했다. 전국의 해고노동자들이 모여 서울 광화문을 희망의 소금꽃밭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 모든 이들의 열망이 모여 18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최소 소망이 무엇인지가 사회적으로 각인될 수 있었다.

과정에 재미있는 일도 참 많았다. 그중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 ‘고공클럽’을 둘러싼 이야기다. ‘고공클럽’은 그간 십수 년 평지에서는 살 수 없어 김진숙처럼 고공농성을 한 이들의 모임이었다. 모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라는 일터의 광우병에 맞서 죽음을 각오해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실제 그간 십수 년 수많은 노동자·민중들의 운명이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씨와 같았다.

그렇게 고공으로 오를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김진숙의 고공농성을 함께 지키겠다고 모였는데, 과정에 사소한 논란이 있었다. 함께하겠다는 사람들 몇이 ‘배제’를 당한 것이었다. 그중엔 나도 끼었다. 나도 기륭전자에서 포클레인 고공농성을 했으니 넣어달라는 것이었는데, 기준 미달이고, 자칫 고공클럽을 희화화하는 등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5m 높이는 고공이 아닌 ‘저공’이니 불만이 있으면 ‘저공클럽’을 다시 만들라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그런데 왜 GM대우 비정규직들 중 한강다리에 매달린 사람들은 뺐느냐고 물었더니, 그곳은 높이는 되는데 고공이 아닌 ‘허공’이어서 뺐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만 근 100여 명이었다.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처참한 일들이었지만 모두들 웃으며 나서는 사람들을 보며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선 후보자 누구도 찾지 않는 광장

그런 그들이 오늘도 서울시청 광장 앞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광장’을 열고 십수 일째 노숙 농성 중이다. 거기 가면 96일을 단식한 김소연과 동맥을 끊기도 했던 코오롱의 최일배와 송전탑에 올라 단식까지 했던 콜트·콜텍의 이인근이 짐을 나르고 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바야흐로 선거철, 모두 나서서 서로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겠다는 입후보자들 중 어떤 한 사람도 이 광장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십수 년 목숨까지 바치며 평범한 노동자·민중들의 운명을 위해 싸우고 일한 사람들은 오늘도 연행당하고, 빛나는 배지들은 어떤 배부른 자들의 몫인 이런 세상이 가끔은 참 서럽고 분하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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