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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석방돼도…광장은 뜨겁고도 차갑다

등록 2025-03-07 17:25 수정 2025-05-20 15:49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이 취소된 2025년 3월7일 저녁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연 ‘내란수괴 윤석열 석방 결정 긴급 규탄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박고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이 취소된 2025년 3월7일 저녁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연 ‘내란수괴 윤석열 석방 결정 긴급 규탄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박고은 기자


그는 매년 대보름이 되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오곡밥과 나물을 먹고 귀밝이술을 마셨다. “자기를 돌볼 새 없이 늘 바쁜 친구들과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대보름을 챙겨왔다.” 올해는 그러지 못했다. 2024년 12월3일 내란죄 피고인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뒤 주중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으로 살고 주말은 동네 산책하며 자신과 가족과 집을 돌보는 짬을 누리던 그의 삶에 짬이 사라졌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 행사기획팀장을 맡아 이슈에 대응하고 집회를 기획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정진임(사진)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진임 제공

정진임 제공


—올해 대보름은 집 대신 광장에서 ‘내란 종식 대보름 한마당’을 열었더라.

“이 대신 잇몸이다. 한 친구가 오래전에 ‘올해 대보름은 2월12일’이라고 말도 해줬는데…. 오곡밥과 나물 대신 올해는 집회를 기획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윤석열을 파면하라!’라고 빌었다. 지금 간절한 것은 아무래도 내란범이 정치 무대에서 내려오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광장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니까.”

—3월5~7일에는 ‘윤석열 파면을 향한 야간 산책’도 기획했다.

“‘윤석열 탄핵’이 가장 중요한 이슈이긴 하지만, 여러 현안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시간이 주말 광장에만 집중되는 것 같아서 ‘평일에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산책 같은 행진을 기획하게 됐다. 투쟁과 현안이 있는 현장에 직접 가는 ‘산책’이다. 요즘 많이 하는 ‘나이트 런’에서 영감을 받았다.(웃음) 3월5일에는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출발해 ‘내란범 변호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로 갔다. 가는 길에 ‘거통고’ 한화오션 투쟁 현장도 들러 연대를 보탰다.”

—갑작스런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과 윤석열 석방으로 3월8일 광장은 다시 뜨거워졌겠다.

당장 3월7일에 기획한 ‘야간산책’은 취소하고 긴급집회를 했다. 공지한 지 3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시민분들이 정말 많이 참여해주셨다. 바로 다음날인 3월8일 비상행동 14차 범시민대행진에는 우리 추산 30만명의 시민이 오셨다. 본 집회를 하는 중에 5시 넘어서 윤석열 석방 소식이 전해졌다. 발언이 예정돼 있던 활동가가 시시각각 변하는 소식에 발언문을 너댓 차례 수정했다. 비상행동 상임대표단은 바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시민들이 그러나 흥분이나 열패감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냉정하게 사안을 바라보고 대응을 고민하시는 게 느껴졌다. 대검으로 행진하자, 한남동으로 행진하자 등 여러 목소리가 나오다가도 비상행동 공식 계정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차분히 기다리시는 모습 등이 감사하고, 인상적이었다. 어찌됐든, 이제 다시 매일 집회를 하는 비상상황이 됐다. 

 

—이번 탄핵 찬성 광장은 시국이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그 기획들이 다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다. 광장에 오시는 시민들이 매우 다양하다. 2030 청년, 퀴어, 덕후 등 다양한 관점을 가진 시민들이 어색함이나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광장을 기획하려 노력하고 있다. 집회할 때마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스크린에 띄우고 차별·배제의 말이 마이크를 타지 않도록 한다. 예를 들어 “장하다” “대견하다” 같은 말로 발언자를 미숙한 존재로 대하거나 “예쁘다” “아름답다” 등 외모를 평가하는 구호도 하지 않도록 안내한다. 2월8일에는 ‘노(No)윤 노쓰’ 집회를 했다. ‘윤석열도 없고 쓰레기도 없는’ 집회였다. 손팻말을 가지고 오는 대신 종이상자를 준비해 드리고 문구를 써서 손팻말로 쓰도록 하고, 텀블러를 가져오고 이런 것들을 사전에 안내했다.”

—대중음악의견가인 남편 서정민갑과의 협업도 있나. 집회마다 ‘다양한 대중문화예술인’의 공연 참여가 돋보인다.

“서정민갑이 행사기획팀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어떤 뮤지션의 어떤 음악이 광장에 모여 있는 시민들을 위로하고 응원할 수 있을지를 함께 논의하고 섭외한다. 오래전에 쓴 노랫말이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노랫말을 바꿔줄 수 있는지 요청하는데 아무래도 ‘평론가’로서 관계가 있어서 조금 더 유연하게 의견이 전달되는 것 같다. 대부분 흔쾌히 수용해주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집회가 있다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체포영장을 처음 집행했던 2025년 1월3일부터 3박4일 동안 키세스 시위대가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을 지켰다. 기온은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고 눈이 너무 많이 오는데 은박 담요를 덥고, 광장을 지키는 시민들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추위에 여기 있는 걸까. 시민들의 이 뜨거움, 이 염원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활동가로서 이 마음을 어떻게 받아서 서로가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고, 혹 실망한다면 이해하면서 동료로서 지속 가능할까. 이런 고민이 컸다.”

—윤석열 이후의 한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광장에서의 다양한 열망과 바람이 시스템으로 안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활동가로서는 시민사회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잘 보여주고 설득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걸 구현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지만 상상을 시스템으로 제안하는 것은 시민사회다. 개인적으로는 빨리 본업인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로 돌아가고 싶다. ‘회의공개법’을 통해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화하고 더 많은 당사자의 참여를 시스템화하는 것을 입법화하고 싶다.”

—한겨레21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현안이나 사회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싶을 때 한겨레21 같은 주간지를 살펴본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 활동가에게도 주간지 보는 것의 장점을 말했다. 사회를 읽는 깊은 시선을 선물한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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