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문화평론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홍익대 인근 사거리에는 지하도가 있었다. 지하도 벽은 스프레이로 그린 다양한 낙서들로 장식돼 있었다. 요란한 이미지와 의미를 알 수 없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 낙서들을 바라보며 어렴풋하게나마 홍익대 앞 하위문화(Subculture)의 자취를 느꼈으나, 최근 지하도가 철거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이제 그것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예 구조물을 뜯어낸 게 아니라 그냥 흙으로 채워 입구만 막은 거라면, 수백 년 뒤 고고학적 발굴 작업을 통해 그 낙서들이 다시 빛을 볼지도 모르겠다.
라파엘로, 바이런도 낙서를 했다낙서를 흔히 ‘그래피티’(Graffiti)라 부른다. 이 말은 이탈리아어 ‘그라피토’(Graffito)의 복수형으로, 그 근원은 ‘글씨를 쓴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그라페인’(γρ?φε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어 ‘그라피토’는 원래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나 고대 그리스·로마의 벽화를 가리켰다. 그 때문에 가끔 낙서의 역사가 멀리 구석기 시대로까지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으나, 원시인의 동굴벽화나 고대인의 건물벽화를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낙서’로 볼 수는 없다. 둘은 기능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가장 오래된 낙서는 멀리 이집트 고왕국 시절(BC 28세기) 그리스의 에베소에서 발견된 것이다. 돌로 된 길바닥에 손과 발과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근처에 유곽이 있음을 알려주는 광고로 추정된다. 로마 시대에는 정치적 슬로건, 마술적 주문, 사랑의 맹세 등 다양한 종류의 낙서가 발견됐다. 인상적인 것은 기독교를 풍자하는 낙서다. 거기에는 십자가에 달린 당나귀 아래서 기도하는 사내의 모습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다. “알렉사메노스가 자신의 신을 경배한다.”
스칸디나비아의 로마네스트 성당의 벽에는 ‘타쉬롱’(훼손)이라 불리는, 긁어서 새긴 낙서들이 남아 있다. 르네상스의 화가들, 가령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필리포 리피는 고대 네로 황제의 별장인 ‘황금의 집’(Domus Aurea) 폐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이집트의 기념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아테네 남쪽 케이프 수니온의 포세이돈 신전의 기둥에는 아직도 바이런 경이 새겨넣은 낙서가 남아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뻔뻔한 문화재 훼손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학 시절에 본 낙서는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군부독재 타도하자.” 내가 이른바 ‘그래피티’라는 걸 처음 본 것은 독일에 유학을 가서였다. 솔직히 그것은 베를린이라는 역사적 도시에는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동서 베를린을 나누던 장벽에 그려진 낙서들은 나름대로 예술적 가치와 정치적 의미라도 있지만, 아무 데나 그려놓은 별 내용도 없는 문자나 그림이 썩 예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미국의 하위문화를 엉뚱한 맥락으로 들여와 어설프게 흉내냈다는 느낌이랄까?
낙서하는 이들에게는 이게 ‘예술’일지 모르나, 국가의 시각에서는 시설을 파괴하는 반달리즘일 뿐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낙서를 지우는 데만 연간 5억유로(약 8천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 낙서가 가난한 유학생들에게 중요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해주었다. 골치 아픈 것은 지하철 유리창에 긁어서 새긴 낙서들. 이른바 ‘스크래칭’이라는 그래피티 기법이라고 한다. 심지어 불산(HF)이라는 맹독성 용액으로 유리창에 낙서하는 위험한 기법(‘에칭’)도 있다. 이런 낙서는 지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날 그곳에서 자칭 그래피티 아티스트에 관한 방송을 보았다. 그의 방은 세상에 온갖 색상의 스프레이 깡통으로 뒤덮여 있고, 벽에는 그동안 자신이 제작한 작품들(?)의 사진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예술적 특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디에 낙서를 하느냐’다.
접근하기 힘든 곳에 할수록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나? 그러고 보니 언젠가 독일의 낙서자들 사이에서 경비가 삼엄한 고속전철(ICE)에 누가 먼저 낙서를 하느냐는 경쟁이 붙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과연 그들은 꿈을 이루었을까?
힙합의 예술적 대결, 그래피티 배틀
그래피티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특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의 도시에서 흔히 보는 힙합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 뉴욕의 지하철 낙서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화됐다. 디제잉(DJing), 엠시잉(MCing·랩), 비보잉(B-Boying)과 더불어 힙합 문화의 네 요소를 이루는 것이 바로 ‘라이팅’(Writing·그래피티)이다. 그래피티는 음악·무용·미술 등 여러 장르를 거느린 하위문화의 일부로서 곧 뉴욕을 벗어나 전세계 젊은이들 사이로 퍼져나가게 된다.
인터넷에서 종종 사용되는 ‘배틀’(Battle)이라는 말도 힙합 문화에서 유래했다. 힙합을 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배틀이 벌어지곤 한다. 이는 총이나 칼을 동원한 폭력적·물리적 대결을 예술적·문화적 대결로 승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배틀의 바탕에는 당연히 남들이 자신의 기량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인정 욕구가 깔려 있다. 힙합의 한 부문으로서 그래피티에도 당연히 배틀이 존재한다. 그래피티의 경우 필법의 참신함이나 표현의 미학성, 혹은 도발의 대담함 등을 놓고 서로 겨루게 된다.
물론 모든 그래피티가 건전한 것은 아니다. 범죄집단과 결합된 이른바 ‘갱 그래피티’도 있다. 1930년대부터 존재해온 갱 그래피티는 상당히 ‘동물의 왕국’스러워, 주로 갱단들 사이에 영역을 표시하는 데 이용된다. 괜히 그 영역 안으로 잘못 들어갔다가는 목숨을 대가로 치르기 일쑤다. 영역을 표시하는 데 이용되기에, 갱 그래피티는 색채나 문양의 미학적 수준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갱 그래피티는 ‘스타일 라이팅’(Style Writing)이라 불리는 화려한 예술적 그래피티와 구별된다.
이 하위문화가 1960년대 이후 현대예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미술사가들은 1960년대에 ‘팝아트’가 등장하기 직전에 그래피티 문화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가령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을 통해, 우리는 그래피티가 현대예술에 끼친 영향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미 그래피티 자체가 하나의 예술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가령 얼마 전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쥐20’의 원형이 된 영국의 작가 뱅크시. 그는 세계에서 유명한 영국 작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피티는 팝아트를 매개로 ‘포스트모던’의 정신적 분위기가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그래피티는 무명 대중의 손으로 만드는 예술이다. 굳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가 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가령 뱅크시는 그저 사인으로 쓰는 이름일 뿐,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세간에서는 그의 본명이 ‘로빈 거닝엄’이라고 추정한다). 이렇게 작가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철저히 익명으로 남는 것은 이른바 ‘미적 주체성의 해체’, 즉 ‘작가의 죽음’으로 더 널리 알려진 포스트모던의 주제와 연결된다.
철학적이며 미학적인 낙서베를린에서 그래피티를 처음 보았을 때, 벽에 그려진 이상한 문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나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의 표현을 빌리면, 시니피에(Signifie·기의, 의미) 없는 순수한 시니피앙(Signifiant·기표, 기호)이라는 얘기다. 이 얼마나 철학적인가? ‘영원히 의미(기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기호(기표)’. 이 관념은 정확히 데리다의 언어철학과 일치한다. 의미의 해체. 이 역시 전형적인 포스트모던의 주제다.
<hr>호모 두들리쿠스의 낭만은 살아남을까무의식적 흐름의 기록, 낙서… 스마트 디바이스 넘쳐나는 21세기에도 마음 지도는 계속 그려질 것인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2005년 영국에선 웃지 못할 낙서 해프닝 하나가 있었다. 그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선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연례회의인 세계경제포럼(WEF)이 어김없이 열렸다. 전 지구적 경제위기 이슈를 다룬 회의가 끝난 뒤,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가 앉았던 자리에서 낙서가 가득한 종이 한 장이 발견됐다.
“그건 빌 게이츠의 낙서였네”낙서를 긴급 입수한 영국 언론은 심리학자들과 서체 전문가들을 동원해 낙서에 드러난 총리의 속마음을 연일 분석하기 시작했다. “삼각형을 겹쳐 그린 것을 보면 총리가 집중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마음이 딴 데 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그라미의 끝이 완전히 맞물리지 못한 건, 블레어 총리가 평소 신앙심이 깊지 못하고 타고난 지도자감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네요.” 낙서 한 장 덕분에 영국인들은 블레어 총리의 심리상태를 총리 자신보다 더 잘 알게 됐고, 블레어 총리는 졸지에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지도자’가 돼버렸다.
하지만 영국 언론의 보도에 대해, 블레어 총리 쪽은 태연하게 (전혀 불안정하지 않은 태도로) 이렇게 응수했다.
“그건 블레어 총리의 낙서가 아니라, 그 옆에 앉았던 빌 게이츠의 낙서요!”
심리학자들은, 그리고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은, 낙서 안에 한 인간의 심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다고 믿게 됐다. 이른바 ‘자유연상’, 즉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특별한 목적이나 자기검열 없이 적어나간 낙서에는 내면의 의식 흐름이 잘 포착돼 있으며, 낙서 안에서 우리는 ‘무의식적 불안과 욕망’을 읽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주변 도처에 산재해 있는 낙서를 흔히 ‘스크리블’(Scribble)이라 부르며, 낙서하는 행위를 심리학자들은 ‘두들링’(Doodling)이라 부른다. 학술검색엔진에서 이 단어들로 연구논문을 찾아보면 700여 편의 논문과 참고문헌이 검색된다. 이 연구논문들은 대부분 낙서를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적 방식으로 해석해 질병을 진단하거나 인간 행동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이다. 미국 시애틀대학 인간발달연구소의 로버트 번스 박사가 아마 대표적인 학자일 텐데, 그는 “낙서라는 의식적 패턴 안에 무의식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낙서학’(Doodleology)의 아버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카를 융이다. 그들의 ‘꽤 그럴듯하게 들리나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이론 덕분에 온갖 낙서 해석이 난무해왔다. 해소되지 못한 성적 욕망으로 충만한 사람은 뱀이나 촛불, 과녁에 제대로 맞은 다트 같은 걸 낙서로 그리며, 금전적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는 숫자 낙서를 즐기고, 집에 대한 욕망은 기하학적 도형 낙서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사람의 몸이나 얼굴을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지나치게 크거나 작게 그려진 신체 부위는 불안정한 욕망이 투영됐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불행하게도 근거는 없지만.
욕구불만이 낙서로 이어진다?
낙서와 관련해 20세기가 만들어낸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인간은 왜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낙서를 끼적이는 걸까?‘일 것이다. 한시도 전화기나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한 ‘호모 텔레포니쿠스’들은 왜 전화 통화를 할 때 낙서를 즐기게 됐을까? 이 낡은 질문에 최근 흥미로운 대답을 찾아낸 사람들은 신경과학자들이다.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 뇌는 도형이나 패턴 같은 영역을 담당하는 부분과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평소 활동량이 높은데,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에는 온통 언어 영역만 활성화되다 보니 도형과 패턴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심심해져 기하학 문양이나 사람 얼굴을 그리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뇌활성화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상대방의 얼굴은 보지 못한 채 목소리만 들으려니 시각정보에 대한 균형을 맞추려고 낙서를 한다는 주장이다. 보지 못하고 듣고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시각자극에 대한 욕구불만이 낙서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전화할 때 손은 뭐하니?’가 20세기적 질문이었다면, 21세기적 질문은 더 묵직하다. ‘전 지구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낙서들은 과연 다음 세기로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21세기 현대인도 낙서를 즐길 것이다. 설령 화상전화가 발달해 청각자극과 시각자극의 불균형이 해소된다고 해도, 화장실이나 버스 뒷자리에서, 혹은 공부를 하다가 딴생각이 나서, 깁스한 친구를 보자마자, 옛사랑이 그리워서, 낙서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줄지 않을 것이므로. (고위 관료들의 회의는 전세계적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니, 그들의 낙서 종이만 이면지로 활용해도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낙서가 학습능력에 도움을 주고 집중력 향상에도 이롭다고 하니 결코 ‘호모 두들리쿠스’들이 멸종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점점 종이 사용량이 줄어들고, 연필이나 볼펜을 휴대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쉽게 보이던 메모지가 점점 사라지고 서류 종이가 세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오늘날, 20~30년만 지나면 ‘그 귀한’ 종이에 낙서하는 행위는 범죄행위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전자책이 위용을 떨치고 태블릿PC가 세상을 점령하는 시절이 와도 결코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나는 끝까지 종이책을 보리라 생각하지만, 남미와 동남아시아에서 나무를 베어와 만든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이 비윤리를 넘어 범죄가 되는 시절이 머지않았다.
스마트 디바이스들이 낙서장을 예쁘게 만들어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21세기 중반이 됐을 무렵, 과연 우리의 낙서는 다음 세대에 전달될 가능성이 남아 있을까? 아무도 펜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종이가 널브러져 있지 않으며, 관료회의마저도 낙서장을 제공하지 않는 시대가 됐을 때 우리 다음 세대는 과연 21세기 중반을 살았던 우리의 무의식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5천 년 전 선조의 동굴 낙서처럼 보존되기는커녕, 빠르게 부수고 새로 지어지는 세상, 실제 현실이 가상현실과 교묘히 얽히고 때론 대체돼버린 세상에서 우리가 편하게 자기검열 없이 무의식적 흐름을 기록할 매체가 과연 세상에 남아 있게 될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낭만이 사라진 시대가 우울할 뿐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낙서를 가진 나라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운이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 21세기에 그려진 모든 낙서를 다음 세대가 기억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귀한 낙서 하나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치른 국가행사 포스터에 한 예술가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무 목적 없이 낙서를 했다가, 그 이미지가 자신과 꼭 빼닮았다고 여겨, 아끼는 시녀들을 통해 단죄한 ‘벌거벗은 임금님’ 덕분에, 우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낙서를 가지게 됐으니 말이다. 낙서만이 무의식의 투영이 아니라, 낙서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무의식이 투영돼 있음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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