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거의 모든 매체에서 ‘올해의 인물’을 발표한다. 산업계, 정치계, 예술계, 문화계, 기술계 등 가장 영향력 있었던 인물은 분야마다 다를 것이다. 거기에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보니, 매체의 국적에 따라서도 선정되는 인물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올해의 인물’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단연 미국의 시사주간지 (TIME)에서 선정한 것이리라. 에서는 2011년의 인물로 ‘시위자’(Protester)를 꼽았다.
양적 평가냐 질적 평가냐
‘올해의 인물’은 1927년 에서 한가한 주에 뉴스거리가 될 만한 아이템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 마침 그해에 은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을 커버스토리로 싣지 않기로 결정했던 차. 이 결정적인 편집상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린드버그를 ‘올해의 인물’(Man of the Year)로 선정한 것이 이 제도의 기원이라고 한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올해의 인물’은 거의 모든 매체에서 한 해를 마감하는 포맷이 되었다.
‘올해의 인물’이라 하나 대상이 인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1982)나 지구(1988)처럼 무생물이 선정되는 일도 있다. ‘맨’(Man)에서 ‘퍼슨’(Person)으로 명칭이 바뀐 것은 1999년이지만, 그 이전이라 하여 남자만 선정된 것도 아니다. 윈저 공의 왕위를 포기하게 만든 월리스 심슨(1936),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1937),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1952),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1986) 등이 여성으로서 ‘인물’(Man)에 선정된 바 있다.
때로는 사회적·정치적 집단이 ‘올해의 인물’이 된다. 가령 헝가리의 자유투사들(1956), 평균적 미국인(1969), 미국의 여성들(1975), 미국의 병사들(1950·2003). 흥미로운 것은 ‘내부고발자’(2002)와 ‘시위자’(2011)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또 있을까? 가령 이문옥 감사관과 김용철 변호사가 내부고발의 대가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기리는 ‘시위자’도 한국에서는 거의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명예롭게 여겨진다. 선정된 이들이 대개 긍정적 업적을 낸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에서 제시하는 선정 기준은 질적이라기보다는 양적이다. “그해에 일어난 일들에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그 덕분에 1938년에는 히틀러가, 1939년과 1942년에는 스탈린이, 1979년에는 호메이니가 각각 ‘올해의 인물’로 선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역대로 선정된 인물들이 대개 ‘위인’이다 보니, 인물의 선정에 알게 모르게 질적 평가가 개입하기도 한다. 가령 1979년 호메이니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미국 정부와 공중의 심리를 적잖이 자극했다.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의 인물은 의 기준에 따르면 마땅히 오사마 빈라덴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정작 그해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엉뚱하게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 누가 그의 이름을 기억할까?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1999년은 20세기의 마지막 해이자, 지난 1천 년을 마감하는 해이기도 했다. 이를 기념해 은 ‘올해의 인물’과 함께 따로 ‘지난 세기의 인물’(아인슈타인)과 ‘지난 1천 년의 인물’(구텐베르크)을 선정했다. 문제는 ‘금세기의 인물’ 후보로 히틀러가 올라온 것이었다. 이 제시한 양적 기준으로 보면 마땅히 히틀러가 선정되어야 하나, 수상(?)의 영예는 결국 아인슈타인에게 돌아갔다.
정보화 이후 등장한 새로운 영웅들
역대 수상자(?)의 면모를 살펴보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역시 미국의 대통령들이다.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제럴드 포드를 제외하고 미국의 모든 역대 대통령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특히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세 차례(1932·1934·1941)에 걸쳐 ‘올해의 인물’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단, 아이젠하워는 재임 기간에는 물론, 그 훨씬 이전에도 연합군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올해의 인물’에 오른 바 있다.
그다음으로 많이 꼽힌 인물은 옛 소련의 지도자들이다. 스탈린(1939·1942), 흐루쇼프(1957), 안드로포프(1983), 고르바초프(1987, 1989), 푸틴(2007). 20세기는 과연 미소 냉전의 시대였다. 한편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1938), 콘라트 아데나워(1953), 빌리 브란트(1970) 세 사람을 명단에 올렸다. 영국의 지도자로는 처칠(1940·1949)과 엘리자베스 여왕(1952), 프랑스의 지도자로는 피에르 라발(1931)과 샤를 드골(1958)의 이름이 눈에 띈다.
중국은 장제스와 쑹메이링(1937), 덩샤오핑이 두 번(1978·1985) 이름을 올렸으나, 이상하게도 마오쩌둥은 명단에 빠져 있다. 열강이 아닌 나라에서는 인도의 간디(1930),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왕(1974), 이집트의 사다트(1977), 이란의 호메이니(1979),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1981) 등이 ‘올해의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의 자취는 1950년에 선정된 ‘미국의 전사들’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였다.
호명된 이들의 이름 속에서 우리는 식민주의에서 2차 대전, 미소 냉전과 자원전쟁, 사회주의국가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역사를 엿본다. ‘올해의 인물’은 그야말로 인물로 보는 세계사다. 이 맥락에서 은 즐겨 칼라일을 인용한다. “세계사는 위인들의 전기에 불과하다.” 이게 어디 정치나 정세만의 문제겠는가? 선정된 영웅들의 명단 속에서 우리는 또한 20세기에 일어난 산업과 경제의 변화를 읽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중반만 해도 서구는 아직 산업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크라이슬러 그룹의 창시자 월터 크라이슬러(1928), 제너럴모터스의 지도자 할로 커티스(1955)는 산업화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1982년 컴퓨터가 ‘올해의 인물’의 반열에 오른 뒤에는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조스(1999),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2010)가 새로운 신화로 떠올랐다. 이들은 디지털로 무장한 정보화 사회의 영웅이다. 2005년 보노와 함께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선정된 빌 게이츠 부부도 정보화 사회의 영웅이다. 선정은 못 됐지만, 올해에는 스티브 잡스가 작고한 인물로는 최초로 올해의 인물로 뽑힐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세계사를 바꾸는 ‘당신’
그런가 하면 2006년 은 “올해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온라인 백과사전, 영상파일 공유 사이트, 블로그 사이트를 비롯한 개인 미디어의 확산”이라며, 이 영역에서 활약한 ‘당신’을 ‘올해의 인물’로 뽑기도 했다.
‘뽑을 사람이 그렇게 없었느냐?’는 비난도 있으나, 이 결정은 우리의 주목을 끌 만하다. ‘올해의 인물’의 역사철학, 즉 칼라일의 영웅사관을 일거에 뒤엎어버렸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에서 밝히는 선정 사유. “‘당신’ 은 월드와이드웹을 파고들어 새로운 디지털 민주주의의 틀을 세우고, 대가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신’을 우리 정부는 탄압한다.
2008년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올해의 인물’을 뽑는 인터넷 투표를 한 적이 있다. 투표 30분 만에 워스트 1위를 달린 것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 베스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투표는 중단되고 선정 방식이 바뀌더니, 결과도 수정됐다. 워스트 강병규, 베스트 김연아. 각하가 ‘당신들’한테 욕먹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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