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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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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 (22) 테오 얀선

이것은 더 이상 기계가 아니다 vs 하나의 생태계를 창조하다
등록 2012-02-03 01:19 수정 2020-05-02 19:26
이것은 더 이상 기계가 아니다해변을 유유자적 거니는 테오 얀선의 키네틱 아트 작품들… 자연에서 에너지 섭취하며 생명으로 진화하는 기계

테오 얀선은 지난 20여 년간 해변에 ‘움직이는 조각’(Kinetic Scuplture)을 설치해왔다. 미술을 모르는 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유튜브를 통해 BMW의 광고에 사용된 그의 작품을 접해봤을 게다. 지난해인가, 대전의 어느 미술관에서 이 네덜란드 작가를 초청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해변처럼 광활한 환경에 설치돼야 하나, 몇 가지 사정 때문에 열린 공간이 아니라 전시실의 실내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장엄한 효과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관람객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생명을 얻은 움직이는 조각

굳이 ‘움직이는 조각’의 기원을 찾자면 저 멀리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의 장인 헤론은 신상들이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제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 이것이 인류 최초의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17세기에 널리 퍼졌던 자동인형(Automaton) 역시 키네틱 아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자동인형은 당시에 조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오늘날의 ‘로봇’에 가까운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본격적인 의미의 키네틱 아트는 20세기 초에 등장한다.

키네틱 아트는 거칠게 말해 ‘움직이는 조각’이다.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에게 “조각이 움직인다”라고 말하면, 아마 그들은 “그것은 마법”이라 소리쳤을 게다. 그 마법을 대신해준 것이 바로 기술이다. 키네틱 아트는 산업혁명(동력혁명)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키네틱 아트에 움직임을 주는 것은 바람, 동력, 아니면 인력이다. 가령 알렉산더 콜더의 모빌은 바람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장 팅겔리의 작품은 동력으로 움직이며, 최초의 키네틱 아트라 할 수 있는 마르셀 뒤샹의 자전거 바퀴는 사람이 손으로 돌려야 한다.

키네틱 아트는 ‘모던’이라는 시대의 산물이다. 과거의 노동이 자연(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면, 현대의 생산은 주로 기계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전통적 예술이 자연을 모방했다면, 현대의 예술은 인공을 모범으로 삼게 된다. 현대의 대표적 인공물이 바로 기계가 아닌가. 현대회화가 추상적·기하학적 문양과 더불어 기술적 도면을 닮아가는 것은 그와 관련 있을 것이다. 키네틱 아트는 기계의 외양만이 아니라 그것의 동작까지 모방한다. 그런 의미에서 키네틱 아트는 모던의 기계미학 그 자체인지 모른다.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테오 얀선의 작품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키네틱 아트에 속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더 이상 ‘모던’하지 않다. 왜? 생명을 기계화하는 것이 모던의 특성이라면, 얀선의 작업은 기계를 생명화하는 데 그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기계’라는 인공은 외려 자연의 ‘생물’이 되려 한다. 20세기의 키네틱 아트가 산업사회를 반영한다면, 얀선의 그것은 산업 이후의 사회 정신을 상징한다. 한마디로 모던의 키네틱 아트가 기계공학적이라면, 얀선의 작품들은 생명공학적이다.

진화론을 기계로까지 연장시킨다고 할까? 얀선의 목표는 새로운 기계생물의 종(種)을 창조해, 그것들이 마침내 해변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 진화시키는 데 있다. 각각의 종은 고유의 유전적 특성이 있다. 우수한 유전자는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한다. 그는 PVC와 레모네이드 페트병으로 만든 이 기계들을 새로운 생명체로 간주해 학명까지 붙인다. 가령 ‘아니마리스 쿠렌스 벤토사’(Animaris Currens Ventosa). ‘바람으로 움직이는 놈’이라는 뜻이리라.

한국 작가 최우람도 정교한 모양과 섬세한 동작을 하는 인공생명체들을 만들어왔다. 이 기계생명들에도 역시 학명이 부여된다. 그의 내러티브 속에서 기계생명체들은 도시의 에너지를 먹고 사는 것으로 설정되나, 실제로는 동력(전기)으로 움직인다. 테오 얀선의 작품은 이와 다르다. 그것은 인공의 동력이 아니라 해변에서 부는 바람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산업의 동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에서 바로 에너지를 섭취한다는 점에서 얀선의 작품은 탈산업적(Postindustrial)이다.

진화하는 기계생명

테오 얀선의 기계생명은 해변이라는 조건에 최적화돼 있다. 크랭크축을 따라 수십 개의 발들은 타이어에 비해 표면에 닿는 면적이 작다. 이것이 저항을 줄여줘 녀석들은 외려 자동차보다 효율적으로 해변의 모래사장 위를 거닌다. 한마디로 놈들의 발은 ‘바퀴의 진화한 형태’인 셈이다. 해변에서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격률은 ‘물을 피하라’는 것이리라. 기계생명에는 촉수로 사용되는 가는 파이프가 달려 있어, 다리가 물에 잠겨 파이프에 공기 대신 물이 흡입될 경우 녀석은 곧바로 방향을 바꿔 뭍으로 걸어나올 것이다.

얀선의 기계생명은 원시적이나마 뇌까지 갖고 있다. 뇌가 처리하는 것은 0과 1의 신호. 이 1비트의 처리 능력으로 놈들은 자신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판단을 내린다.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뭍인가.’ 이 판단을 못 내리면 아마 놈들은 밀물 때 익사하고 말 것이다. 일단 촉수를 통해 받아들인 신호는 뇌로 전달되고, 뇌는 다시 근골격기관에 신호를 보내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취하게 만든다. ‘물이냐, 뭍이냐?’ 이 1비트 흑백의 현실. 기계생명의 눈에는 세계가 그렇게 단순하게 비칠 것이다.

기계생명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종에는 종종 이전의 종이 갖지 못한 새로운 기능, 혹은 새로운 생존 전략이 부가된다. 가령 해변이라는 조건에서 생명체에게 위험한 것은 밀물만이 아니다. 바닷가에 흔한 강풍도 기계생명을 하늘로 날려버려 망가뜨릴 수 있다. 그래서 그 생명체 중 어떤 놈은 바람이 강해지면 그 힘으로 해머를 작동시켜 자신의 발을 땅속에 박아넣는다. 물론 제 몸을 대지에 고정해 강한 바람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탄생한 종은 에너지 저장 능력까지 갖고 있단다. 즉, 부는 바람을 페트병 속에 압축해 저장했다가 그 공기를 바람이 없을 때 동력으로 꺼내 쓰는 것이다. 이렇게 에너지의 섭취와 소비를 시간적으로 분리함으로써 기계는 생명체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의 기계생명은 아직 해변이라는 환경에서 혼자 살아가지 못한다. 얀선의 도움 없이 살아가려면 아직 갖춰야 할 기능이 많을 게다. 얀선이 하는 작업의 요체는 생존에 필요한 그 기능을 생각해내고, 그 해법을 기술적으로 창안하는 데 있다.

얀선은 수년 내에 자신의 생명체들이 자립 능력을 획득할 것이라 단언한다. 그때쯤이면 그는 자신의 생명체들을 모두 해변에 방사할 작정이라고 한다. 그가 창조한 인공동물들이 유유자적 거니는 해변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아마 동물원에서 탈출한 동물들이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 못지않게 장관일 것이다. 그놈들은 거기서 인간의 도움 없이 살아가다가 수명이 다하면 숨을 거둘 것이다. 그렇게 죽은 기계동물들의 사체로 덮인 해변의 모습은 또 얼마나 으스스할까?

목공의 몸체에 디지털을 입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컴퓨터가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가령 원리는 디지털이나 몸체가 목공으로 제작된 컴퓨터다. 내 눈에는 얀선의 기계생명이 그런 장치로 보인다. 얀선의 작품은 첨단의 콘셉트를 원시적 기술과 결합한다. 그리하여 가까이서 보면 매우 엉성하게 엮은 PVC 구조물이나, 멀리서 보면 정교하게 움직이는 생명체다. 이렇게 생물학적 기제를 재현하는 인공생명(AL)의 기획을 가내수공업의 기술로 구현했다는 점. 그의 기계생명이 지닌 치명적 매력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진중권 문화평론가

일러스트 김중화

일러스트 김중화


하나의 생태계를 창조하다

생명을 향한 천착과 공학적 발상… 자연의 모사가 아닌 우주적 스케일의 친환경 인공 생명체 실험

카이스트(KAIST) 학부생들을 위한 ‘바이오공학의 이해’ 수업 시간에 가장 인기 있는 로봇은 미국 스탠퍼드 기계공학과에서 만든 ‘스티키봇’(Stickybot)이다. 디자인연구센터 마크 컷코스키 소장과 그의 동료들이 도마뱀(Gecko)의 발을 흉내내어 만든 이 로봇은, 벽을 타고 걸어다닐 수 있는 ‘탐사용 로봇’이다. 유튜브에 올라 있는 스티키봇 동영상을 보여주면 학생들이 열광한다. “와, 이건 예술이야!”

‘도마뱀 로봇’이란 게 얼핏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간 신기한 녀석이 아니다. 도마뱀처럼 벽을 타고 오르려면 발바닥이 벽에 붙어서 쉽게 떨어지지 않아야 하지만, 다음 발을 내딛으려면 또 쉽게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끈적이는 발바닥’을 만들 수 있을까?

새로운 관절 구조의 영역을 탐색하다

스탠퍼드대학 연구팀은 실제 도마뱀의 발을 연구한 결과, 도마뱀 발에 난 무수한 털 돌기가 특정한 방향으로만 끈적여서, 아래에서 위로 벽에 접촉할 땐 끈적이고,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발을 뗄 땐 쉽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방향성 접착력’(Directional Adhesion) 원리를 그대로 적용해 만든 로봇이 바로 스티키봇이다. 정교하게 맞물린 근육과 도마뱀을 그대로 흉내낸 ‘도마뱀 발바닥’은 그 자체로 인간 테크놀로지가 도달할 수 있는 생체모방 기술의 정수다. 스티키봇은 2006년 이 선정한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이 테크놀로지가 과학자들에게 각별히 흥미로운 것은 도마뱀의 발바닥을 그대로 흉내낸 스파이용 로봇을 갖게 돼서가 아니라, 생명체의 운동기관을 좀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엔 두 발로 걷거나 네 발로 보행하는 동물이 대부분이지만, 생명체의 운동기관은 실로 다양하다. 온갖 생명체들이 다양한 방식의 관절(Linkage) 구조를 이용해 움직인다. 과연 그들의 보편적인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을까?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들도 지구 생명체와 유사한 다리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다양한 관절 구조의 가능성을 탐색한 천재가 있었으니, 바로 조 클랜이다. 그는 ‘클랜 링키지’(Klann Linkage)라 불리는 아주 독창적인 운동기관을 발명해 특허를 얻었다. 그는 최소의 프레임과 크랭크축을 사용해 몸이 출렁이지 않고 부드럽게 수평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운동기관을 제안했다. 이게 가능하다면 언젠가는 그의 발명품이 ‘바퀴’를 대체할 수 있을 거라 그는 믿었다!

2005년 미국과 캐나다의 과학자들이 만든 ‘몬도 거미’(Mondo Spider)는 클랜 링키지를 활용해 8개 다리로 보행하는 최초의 로봇이었다. 이 로봇은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도 보행이 가능하고 무거운 몸체를 안정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관절기관을 가졌다. 쉽게 말하자면, 화성에서 외계 생명체와 싸울 전 우주적 스케일의 탱크(지구인들의 무기!)에 효율적인 발이 생긴 셈이다. 아쉽게도 아직은 많이 불편해 보이지만, 우리는 움직이는 물체가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관절 구조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를 해온 셈이다.

이런 일이 예술 분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키네틱 아티스트 테오 얀선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 클랜이 탐색하지 못한 새로운 관절 구조의 영역을 탐색해왔다. 그는 생명체들이 진화해오면서 저마다의 복잡하고 효율적인 관절 구조를 가진 데 착안해, 그만의 생태계를 만들고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진화를 실험해왔다.

스스로 에너지를 활용하는 예술품

그의 첫 원시생명체 ‘아니마리스 불가리스’는 플라스틱 관을 뼈대로 구성하고 크랭크축으로 이루어진 척추를 가지고 있다. 인간처럼 그의 다리에는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발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바람이 풍부한 해변에 살고 있는 이 동물은 노란 플라스틱 관을 일종의 단백질처럼 생체의 기본 구조로 한다. 접착 테이프를 통해 조직이 좀더 복잡한 기관으로 커졌고, 기관은 케이블로 연결된 관절을 서서히 갖게 됐으며, 그러면서 스스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최초의 해변동물 ‘아니마리스 쿠렌스 불가리스’로 진화해갔다. (그의 작품을 독일에서 처음 보고 큰 충격에 빠졌었는데, 네덜란드와는 달리 바람이 적은 우리나라에서 2010년에 연 전시회에선 그의 작품이 해변을 거니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어 무척 아쉬웠다.)

‘빠르게 걸을 수 있는 동물만이 살아남는다’는 새로운 진화의 법칙을 적용하자, 해변동물들은 좀더 복잡하고 정교한 다리 구조로 진화하게 됐다. 움직임이 느린 개체는 도태됐다. 번식 시기에 다양한 관절 구조의 돌연변이가 생겨나기도 했는데, 더 효율적인 녀석들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좀더 큰 체격을 얻기 위해 플라스틱 대신 나무로 변한 녀석들, 바람 대신 스스로 파워를 만들어내거나 압축펌프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녀석들도 생겨났다. 테오 얀선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생태계였다.

그의 작품을 ‘21세기에 주목해야 할 예술품’으로 손꼽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다른 키네틱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예술작품이라는 점유된 공간에 시간성을 부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에너지’를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로 간주했다. ‘인과관계의 연속이 시간을 만들어낸다’는 동역학이나, 균형(밸런스)과 대칭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운동의 기원인 에너지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예술품이 스스로 운동을 위해 에너지를 활용하는 구조를 갖게 됐는지를 고민했다.

‘해변의 모래와 바람, 그리고 물. 이 안에서 어떻게 예술작품이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관절을 바꾸어야 하는가?’라는 이 예술적인 질문은 ‘엔트로피와 에너지, 그 안에서 어떻게 해변의 바람을 활용하는 새로운 관절 구조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공학적 질문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가 BMW 자동차 광고에서 했던 말, “공학과 예술의 경계는 우리 마음속에만 있다”는 것은 최소한 그에게만은 허세가 아니었다. 그의 예술적 창의성은 생명에 대한 천착에서 비롯됐고, 예술적 혁신은 공학적 발상의 전환으로 귀결됐다.

조 클랜을 포함해 많은 공학자들과 우주생물학(Astrobiology)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은 우주라는 일반적인 환경에 존재 가능한 보편적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스위스의 예술가이자 초현실주의자 H.R. 기거가 외계 생명체의 외형에 오랫동안 천착해왔다면, 테오 얀선은 그들의 다리 구조에 매달려왔다. 덕분에 우리는 기괴한 작품을 넘어 생명과 동력에 대한 전 우주적 스케일의 이해를 얻고 있는 셈이다(바람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그의 작품을 흔히 친환경 생명체라고 부르지만, 여기서 환경은 전 우주적 스케일의 환경이다).

모사가 아닌 창조와 진화

한때 예술의 목적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었다. 2차원 평면에 3차원 세상을 담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기도 했으나, 사진술의 발달은 그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본질을 화폭에 담으려는 시도는 점·선·면으로 세상을 잘게 나누어 쪼개거나, 여러 각도에서 본 세상을 하나의 화폭에 담는 입체파로 이어지기도 했다. 세상의 본질이 시간의 역동성이라면, 잭슨 폴록 같은 추상화가의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더없이 사실적인 구상화이리라.

이제 예술가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그들의 작품 속에 담으려는 노력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려 들고 있다. 소설가는 ‘이야기’라는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적 공간을 꿈꾸고, 사진가는 프레임 안에 그가 꿈꾸는 세상을 재구성해 창조한다. 키네틱 아티스트는 생명의 시간을 아틀리에에서 재조작해 새로운 생태계를 진화시키고 있다.

‘자연에서 배운다’를 실천하는 바이오미메틱스(Biomimetics) 연구자들을 조롱이라도 하듯, 테오 얀선은 자연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공학자들의 그것보다 더 정교하면서도 효율적인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21세기 예술가는 자연을 창조하기 위해 테크놀로지의 붓을 휘두르는 신이 되었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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