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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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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 ⑮ 나꼼수

독보적이거나 독이거나 VS 이것은 저잣거리 서민들의 이야기
등록 2011-10-13 05:14 수정 2020-05-02 19:26
나꼼수, 독보적이거나 독이거나

디지털화한 구술 콘텐츠로 MB 정권에 대한 불만 표출의 통로 역할…
팩트에 가미된 픽션이 사실화되는 건 위험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와의 인연은 아주 불쾌하게 시작됐다. 하도 주위에서 ‘나꼼수, 나꼼수’ 하길래, 그저 ‘네 사람이 모여서 뭔가 재미있는 방송을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에 방송분을 요약한 도표가 나돌고, 그 도표 속에 내 얼굴이 검찰·한나라당·와 한통속으로 분류돼 있는 것을 보고,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문제를 다룬 나꼼수 17편을 들어보았다. 그게 전부. 어차피 내 취향도 아닌데다, 첫 인연이 이런 식으로 시작됐으니 굳이 시간 내서 다른 편들까지 들을 기분은 안 난다.

검열·심의 시대의 대안방송

나꼼수가 인기를 끄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을 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대중이 이명박 정권에 화가 단단히 나 있다는 것이다. 집권 4년 동안 분노와 실망은 쌓일 대로 쌓인 상태다. 특히 젊은 세대는 형편없는 것으로 드러난 자칭 ‘최고경영자(CEO) 대통령’의 실력의 직접적 피해자다. ‘747’의 화려한 공약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과 고용 사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특히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 물가상승률의 몇 배의 비율로 치솟아온 등록금은 대학생들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불만이 쌓이면 표출될 통로가 있어야 하나, 정권은 방송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정권이 임명한 두 방송사의 사장은 프로그램에 깊이 관여하며 정권에 대한 비판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그뿐인가? 그나마 대중에게 숨통을 터주던 프로그램들도 이미 망가져 버렸다. 정관용씨는 한국방송의 심야토론을 떠나야 했고, 손석희씨는 문화방송 을 떠나야 했다. 김미화, 김제동, YB와 같은 이들 역시 석연찮은 이유로 프로그램에서 물러나야 했다. 한마디로 정치적 담론과 놀이의 장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 정권 들어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실상 검열기관의 역할을 해왔다. 가령 과 같은 탐사 프로그램이 이들에게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생각해보라. 인터넷마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특히 미네르바 사건 이후 네티즌들 역시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며 무의식적으로 자기검열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나꼼수를 독보적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통제와 검열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각하를 까대는 방송이 나왔으니, 당연히 인기가 하늘로 치솟을 수밖에.
다른 하나의 요인은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거대한 방안을 가득 차지하던 컴퓨터가 책상 위(데스크톱)로 올라오고, 무릎 위(랩톱)로 올라오더니, 이제는 손바닥 위(팜톱)로 올라왔다. 이른바 ‘스마트폰’은 그저 휴대전화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컴퓨터다. 과거에는 가상의 세계에 접속하려면 하드웨어(데스크톱)가 있는 곳에 가야 했으나, 스마트폰 덕분에 이제는 어디서라도 가상의 세계를 손바닥 위로 불러올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은 당연히 새로운 콘텐츠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컴퓨터의 크기가 작아지면 화면도 작아지기 마련. 화면이 작아질수록 이미지 콘텐츠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모바일이라는 환경에서는 감각기관 중에서 ‘눈’을 컴퓨터가 아닌 다른 데에 돌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거나, 작업을 하며 스마트폰을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환경에서는 당연히 사운드 콘텐츠의 중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정치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의 텍스트를 통해 얻었으나, 나꼼수가 그것을 사운드를 통해 얻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미 마셜 맥루언은 전자매체(라디오·텔레비전)와 더불어 ‘구텐베르크 은하’가 종언을 고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꼼수는 이 새로운 전자 구술문화의 디지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나꼼수의 이른바 ‘발랄함’과 ‘분방함’은 이 매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말과 글은 다르다. 말로 전달되는 정보는 강하게 구술문화의 성격을 띤다. 구술문화에서는 로고스보다는 뮈토스가 중요하다. 즉 상황의 객관적 기술보다는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 냉철한 논리의 정합성보다는 뜨거운 정서적 공감대가 더 잘 어울린다.

논리보다는 공감, 진리보다는 승리
또 하나의 요인은 멤버들의 배합에 있을 것이다. 전직 국회의원은 정치권에 끈이 닿아 있으니 이리저리 주워듣는 얘기가 많을 게다. 현직 기자는 언론계에 있으니 역시 보도에 앞서 미리 가진 정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전직 방송진행자이자 현직 칼럼니스트는 프로그램의 진행자 역할을 하며 동시에 그 정보들에 적절한 정치적 논평을 가미한다. 딴지의 총수는 이 정보와 논평에 픽션과 개그를 가미해 나꼼수를 높은 대중성을 가진 일종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변화시킨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드림팀인 셈이다.
나꼼수 4인방은 디지털 구술문화의 논객들이다. 한때 ‘키보드 워리어’라 불리던 인터넷 논객들은 그 뜨거움 속에서도 문자문화를 통해 얻은 소양을 바탕으로 ‘논리’의 싸움을 벌이려 했다. 하지만 구술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공감’이다. 여기서는 객관성보다 철저한 당파성이 요구된다. 그들에게 ‘진리’보다 중요한 것은 ‘승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사태에 냉철하게 과학적인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태를 영웅이 등장하는 스토리로 바꿔놓음으로써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꼼수에서는 상상력을 통해 사실과 픽션이 자유롭게 결합한다. 이른바 파타피지컬(Pataphysical)한 태도, 즉 어떤 것이 픽션인지 뻔히 알면서도 마치 사실인 척해주는 놀이는 디지털 문화의 일반적 특성이다. 가령 허경영에 열광하던 젊은이들을 생각해보라. 허경영의 말이 모두 거짓임을 알지만 정말로 믿는 척해주지 않던가. 문제는 이 놀이가 ‘As if’(~인 듯이)의 성격을 벗어날 때 발생한다. 즉 픽션인지 알고도 사실인 척해주는 게 아니라, 아예 픽션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놀이를 넘어 선동이 된다.
곽노현 교육감 사태는 그 위험을 잘 보여준다. 이 사태를 나꼼수가 혼자서 일으킨 것은 아니다. 대중은 노무현·한명숙 사건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와는 성격이 다름에도 곽노현 사건에 거의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황우석·심형래 사건으로 스타일을 구긴 딴지의 총수가 여기서 명예회복의 좋은 기회를 봤다. 그는 새로운 미디어의 위력을 활용했고, 결과는 그들이 자화자찬하는 대로 과연 성공적이었다. ‘진보 진영의 도덕적 순결주의 때문에 겁을 먹어 적에게 동지를 떠넘긴 이적행위를 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윤리적·사법적 정의에 관한 합리적 논의는 이 한마디로 졸지에 나꼼수가 방영하는 드라마 속의 한 플롯으로 전락했다. 적에게 동지를 팔아넘기는 이적행위자들. 분노한 대중은 즉각 배신자들에 대한 복수에 나섰다. 더 황당한 것은 진보 진영의 문자문화를 대표하는 이들마저 홀라당 분위기에 넘어가서 이 가당치도 않은 시나리오에 단역으로 출연했다는 것. 법학·정치학·역사학, 전공도 다양하다. 여기서 우리는 발흥하는 뉴미디어 앞에서 몰락한 문자문화의 초라한 몰골을 본다.

구술문화의 부활, 문자문화의 몰락
구텐베르크와 더불어 시작된 문자문화는 한때 구술문화의 비논리를 비웃었다. 디지털로 부활한 새로운 구술문화는 복수라도 하듯이 문자문화의 논리를 비웃는다. 이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다. 탄탄하게 형성된 문자문화를 가진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 문자문화의 역사는 매우 짧았다. 이 때문에 파타피지컬이라는 제2차 구술문화가 (‘As if’의 성격을 망각한 채) 픽션을 사실로 혼동하는 제1차 구술문화로 전락하기 쉽다. 그 유혹을 더 강하게 자극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어떤 정치적 욕망이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 일러스트 김중화

» 일러스트 김중화







이것은 저잣거리 서민들의 이야기
풍자와 해학의 전통에 가치전복적 사유 더하고 ‘우리 편 철학’으로 대중 공감 일으켜


요즘 의 팟캐스트 오디오 프로그램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열풍이다. 총수 김어준, 서울 노원구 공릉동·월계동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17대 국회의원 정봉주, 시사주간지 기자 주진우,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하는 이 프로그램은 ‘국내 최초의 가카(각하) 헌정 방송’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인의 이익, 가족의 이익, 친인척의 이익을 위해 국가권력을 어떻게 악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이권 개입이나 잇속 챙기기를 감추려고 어떤 정치적 꼼수를 부리는지를 풍자와 해학의 입담으로 노골적으로 희화화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세계 팟캐스트 부문 청취율 1위를 넘보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인터넷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열성적인 마니아층을 형성할 만큼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이 돼가고 있다.

분노와 혐오, 관심과 배려 사이
한번 듣기 시작하면 이어폰을 뺄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이 방송의 인기를 주류 언론은 한동안 애써 무시해왔으나, 박경철·박원순·박영선·홍준표 등이 출연하고 김어준의 책 (푸른숲 펴냄)가 출간 전 예약 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에 등장하자 ‘다루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한 감자’가 됐다.
사람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아이폰을 중심으로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며 팟캐스트 시장이 활성화된 것을 꼽을 수 있다. 팟캐스팅(Podcasting)이란 개인이 동영상이나 오디오 파일을 MP3와 같은 미디어 파일 형태로 만들어 RSS 파일의 주소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배포하고, 사람들이 애플의 아이튠즈와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통해 검색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재생해서 듣는 방송 형태를 말한다. 사람들이 찾아 듣는 ‘개인방송’(Personal On Demand broadcast)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과 인력으로 무장한 매스미디어에 비해 콘텐츠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개인미디어 콘텐츠가 기존 언론시장의 상품을 능가할 수 있는 파괴력의 핵심은 주류 언론이 다루기 힘든 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 풍자와 해학, 그리고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정보와 위험하리만치 매혹적인 음모론이다. 구독층, 광고, 국가권력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주요 언론사들(심지어 조차 삼성은 욕해도 절대 구독층인 전교조는 비판할 수 없는 현실ㅜㅜ)이 다루지 못하는 내용이라도 용기 있는 개인미디어는 반정부적인 사실 폭로, 신랄한 풍자와 해학이 가능하다. 나꼼수는 그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 만든 콘텐츠이며, 나꼼수 신드롬을 주목하는 이유는 개성적이면서도 불온한 콘텐츠로 가득 채워질 팟캐스트 시장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식된 첫 신호탄이어서다.
마이클 샌델의 (김영사 펴냄) 열풍, 안철수 현상, 반값 등록금·무상급식 시위, 도가니 신드롬과 나꼼수 인기는 무관하지 않다. 정부·정치·기업·언론이 모두 제 본분에 충실하지 않고 집단의 이익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정의를 다시 묻고, 국가가 챙겨주지 않고 언론이 관심 가져주지 않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자발적 관심과 배려를 가지며 만들어진 현상이다. 나꼼수 인기도 현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혐오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
나꼼수 인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출연자인 네 캐릭터들의 절묘한 조화다. 듣는 사람도 유쾌하게 만드는 호탕한 웃음소리,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잘난 척과 ‘싫으면 듣지 마’ 식의 객기, 주류 언론에선 절대 들을 수 없는, 권력층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와 교묘히 얽힌 정치권력 관계, 뉴스 보도 너머에 담긴 정치적 의미에 대한 통찰, ‘우리 가카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말로 대변되는 풍자와 뒷담화가 주는 재미, 아마추어적이지만 성의 있는 편집에 청취자가 만들어주는 창의적인 로고송까지, 나꼼수는 그 옛날 저잣거리의 마당극이 가진 매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21세기 스마트시대의 마당극’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나 주류 언론이 나꼼수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나꼼수를 무책임하고(‘아니면 말고’ 식의 사실 확인이 안 된 정보를 마구 내뱉고), 위험하고(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인신공격과 풍자가 난무하고), 불온한(반정부적 태도와 반기업적 정서를 선동하는) 콘텐츠라고 평가할 것이다. 대중을 현혹하고 현 체제를 뒤흔드는 이 프로그램을 앞으로는 심의하겠다는 발상이 나온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저잣거리의 서민들이 풍자나 해학의 방식으로 거대권력에 맞섰던 옛 전통을 계승한 나꼼수를 정색을 하고 바라보거나 그 영향력을 고려해 방송 심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만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소설가 이외수 선생의 트위터 팔로어 수가 100만 명이 넘는다는 이유로 그의 트윗글들을 심의하겠다는 발상과 같다. 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에서 각색 작업을 인정하지 않고 ‘사실 왜곡’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염려해 소설 심의를 하겠다는 것과 유사하다. (실제로 인화학교 청각장애인 성폭행 사건을 다룬 에 등장한 담당 형사와 변호사 등이 영화가 실제 사건을 왜곡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발언을 한 바 있다.) 개인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마당극 나꼼수의 폐해는 현존하는 ‘명예훼손 등에 관한 법률’로 규제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꼼수 발언 내용의 정확성은 나꼼수 신드롬을 장수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나꼼수 인기 비결의 핵심은 김어준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매력과 통찰력, 개똥철학이 주요했다. 1998년 를 창간한 이후 지난 13년간, 어느 기업이나 권력에도 손 벌리지 않고 아쉬운 소리 안 함으로써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얻은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모든 집단이나 개인이 갖기 어려운 자유이며, 이 자유로운 관계에 기반해 통렬한 비판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어준은 황우석 사태 때 ‘황빠’라고 불릴 만큼 황우석 교수 편에 선 사실이나, 2002년 월드컵 오심 논란 때 우리나라 편을 들어 객관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전력처럼 ‘우리 편’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건에서 진보 진영(진중권·조국)과 날을 세우며 곽 교육감 편을 든 것은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의 ‘우리 편 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그리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논리이며, 나꼼수 인기 밑에 깔린 정서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 민주당, 그리고 기독교 등을 ‘저들’이라 칭하고 ‘우리들’끼리 깔깔거리고 즐기는 술자리 뒷담화 같은 유쾌한 시간이 바로 나꼼수니까. 김어준의 ‘우리 편 철학’은 앞으로도 진보 진영 내에서 합리적인 진보 진영이나 이념적인 진보 진영과 계속 각을 세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꼼수 현상 관전 포인트
앞으로 우리가 나꼼수 현상을 재미있게 관전하는 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 먼저 향후 팟캐스트 시장이 어떻게 다각화되고, 장르와 내용, 구성 등이 어떻게 다양하게 확대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스마트 디바이스들과 맞물려 어떻게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드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둘째, 2012년 대통령 선거의 박근혜-문재인 구도에서 나꼼수가 얼마나 파괴력 있는 역할을 할 것인가도 관전 포인트다. 만약 안철수, 나꼼수 등이 문재인을 측면 지원할 경우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 될 테니까.
셋째, 정부는 향후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 교묘하게 나꼼수를 방해하고 심의하고 관련자를 법의 심판대 앞에 세우려 안간힘을 쓸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프로그램 폐지를 위해 치졸한 꼼수를 부릴 것이다. (이미 를 해킹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앞으로 어떤 꼼수를 부릴 것이며, 김어준 일행이 그것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끝으로, 가카가 퇴임하는 그날까지 계속된다는 나꼼수의 진화 또한 궁금한 대목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시절 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네티즌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으나 13년이 지난 지금 다소 주춤한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나꼼수는 포스트 MB 시대에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기를 이어나갈지 궁금하다. (나꼼수 처지에선 문재인보다는 ‘풍자와 해학의 대상’이 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흥행엔 도움이 될 것이다.)
가치전복적이고 불온한 팟캐스트 대세의 신호탄, 나꼼수에 대한 글을 오늘 ‘우리 시대 가장 경이로운 인물’ 스티브 잡스의 부고를 들으며 쓴다는 것은 우울하고 고통스런 경험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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