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 어떤 상황에서 시작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2. 관련 지식을 제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막상 닥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3. 가족이나 친구 등 도와줄 누군가를 찾게 된다. 4. 이게 정상인지 끝없이 의심하게 된다. 5. 그 시기가 지나면 죽을 때까지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이 다섯 가지는 세상 사람들의 절반인 여자가 모두 겪는 ‘초경’에 관한 사실이자 진실이다.
비밀도 금기도 아닌 축하할 일지금의 딸들은 이전의 딸들보다 더 빨리 초경을 맞는다. 보건교육포럼이 2009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초경 연령은 11.98살이다. 지금 딸들의 어머니 세대인 40대의 평균 초경 연령 14.41살과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아직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에 채 적응하기도 전인 초등학교 5~6학년 때 초경을 겪지만 조사 결과 이들이 생리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시기는 평균 초경 연령보다 늦은 초등학교 5학년 이후였다. 초경에 관한 정서적 반응은 당황스러움(63.3%)·걱정(35.3%)·당연함(30.4%) 순으로 나타났다. 초경 시작 연령이 낮을수록 부정적 정서가 더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의 딸들은 초경을 시작하면 축하하는 의미로 ‘초경파티’를 열어주는 부모도 많고, 생리 등 신체 변화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여전히 대다수는 초경을 맞이할 때 당황한다. 자신의 몸에서 뚝 떨어진 한 방울의 피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여성의 몸에 대해 쉬쉬하던 1980~90년대를 살아온 여성에게 초경은 더욱 먼 기억이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초경이나 생리를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서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흥미로운 책 한 권이 출간됐다. 미국 예일대학 학생인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가 100명의 초경담을 모아 엮은 책 (부키 펴냄)이다. 이 책은 100명의 여성에게는 저마다 다른 100개의 초경담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생리를 시작하고 자신이 죽어간다고 여겼던 라피아, 맹장수술 중에 초경을 한 헬마, 더 극적이길 원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실망한 테이텀, 팬티에 묻어 있는 피가 크랜베리 소스라고 생각했던 바클리, 여동생보다 늦게 생리를 시작해 자존심이 구겨질 만큼 구겨진 낸시 등 평범한 여성들의 유쾌발랄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초경에 관한 기억은 역사와 궤적을 함께하기도 한다. 뉴욕에 사는 니나는 1942년 나치를 피해 폴란드를 빠져나가다가 독일 경비대의 몸수색을 당하던 중 생리를 시작했다. 미국 버몬트에 사는 에이미는 2001년 9·11 테러 당일 삼촌이 테러로 인해 사망했을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초경을 맞았다. 특별한 초경 이야기도 있다. 뉴욕에 사는 시각장애인 소녀는 계속 왜 소변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여성의 X염색체를 두 개가 아닌 한 개만 갖고 태어나 터너증후군을 판정받은 킴벌리는 프로게스테론 처방을 받은 다음에야 생리를 시작했다. 킴벌리는 “여자가 되는 것을 불평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게 생각보다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썼다.
100개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묘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누가 입을 막은 것도 아닌데 그동안 한 번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팔다리가 쭉 펴지는 기분이다. 동시에 잊혀졌던 자신의 초경이 떠오른다. 그때의 상황과 감정 등이 하나씩 되살아나고, 글로든 말로든 엄마나 언니, 친구, 그리고 딸과 자신의 초경담을 나누고 싶어진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면 레이첼이 책에 썼듯이 “개인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여성들 사이에 의사소통의 채널을 열고 금기를 축하해야 할 일로 바꿀 수 있다”.
우리에게 초경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여기 네 개의 또 다른 이야기를 모았다.
<hr>조물주는 여자를 대충 설계했구나!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의 마지막 날이었다. 방에 쪼그리고 앉아 물감을 뿌리며 방학숙제로 낼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다. 문득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게 느껴졌다. 치마 아래를 쳐다보니,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종이를 물들인 물감처럼, 거무스름해진 피가 얼룩덜룩한 그림을 팬티에 그려놓은 것. “아! 올 게 왔구나.”
바로 화장실에 가지 않고, 태평스럽게 계속 그림을 그리며 초경을 맞는 내 감정을 살폈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불쑥 다가와 속옷을 적셔놓은 초경에 대해 좋은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소변처럼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팬티를 완전히 적셔버린 상황을 접하며 들던 첫 생각은, ‘조물주는 완전 여자를 대충 설계했구나!’.
이던가, 아빠가 매달 사오셨던 청소년 잡지에 있던 ‘어머, 어쩌면 좋아’라는 상담 코너에서 초경을 치르는 소녀들의 경험담을 수없이 보았기에, 당황하진 않았다. 최대한 늦게 시작되기를 바랐을 뿐. 두 살 연상의 언니가 월경을 하고 있었는지 어쨌는지 모를 정도로, 집에서 월경에 대한 대화는 금기였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야 화장실에 가서 끔찍한 상태에 처한 팬티를 찬찬히 보았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생리대를 건네셨다. 혼나지도, 그 어떤 격려를 받지도 못했다. 그저 입 다물 일이었을 뿐이다. 다음날 학교에서 한 친구에게 생리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뜻밖에도, 그 아이가 내게 “축하해”라고 말했다. 여드름이 많던 옥경이의 축하가 야릇한 울림이 되어 내 안에 퍼졌다. 유일하게 내 초경을 장식해준 한 송이의 꽃이었다.
그러곤 16년 뒤, 홀로 파리의 작은 다락방에서 새 삶을 꾸미며,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마시던 커피 필터에서, 난 내 초경의 풍경을 다시 보게 되었다. 몽글몽글 엉겨붙은 커피 알갱이, 하얀 필터를 물들이던 커피가 그려놓은 무늬는 내 초경의 팬티 모습과도 같았다. 모든 것에서 해방된 그 시절, 난 초경을 다시 따뜻하게 떠올렸고, 마술처럼, 그것은 여자로서의 내게 건네는 친근한 화해의 시작이었다.
목수정 작가<hr>몸으로 달의 주기를 경험하는 신비
나의 초경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에 시작됐다. 이미 학교에서 또는 엄마나 언니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거라, 나도 얼마 안 있으면 하겠구나 싶었다. 초경이 있기 얼마 전부터 가끔씩 몸에서 뭔가가 흘러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 곧 초경이 있을 거라고 당황하지 말라며, 당시의 담임 선생님은 패드 사용법을 가르쳐주셨다.
선생님의 그런 가르침과 몸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도 좀 멍청하게 초경을 맞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또래에 비해 비교적 일찍 초경이 시작된 셈인데, 다들 그 무렵 겨울이나 중학교에 들어와서 시작되는 것을, 나는 여름을 다 보내기 전에 시작했으니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슨 오긴지,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발견이 됐음에도 팬티만 갈아입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히려 엄마와 언니가 걱정하고 나설 정도였다. 그래도 난 “아냐. 그럴 리 없어. 내가 벌써? 말도 안 돼” 하며 팬티는 금방 피로 얼룩져 다리를 타고 흘러나올 지경인데도 쉬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언니가 킥킥대고 웃었다. “빨리 조치해” 하면서. 너도 별수 없이 여자임을 인정하라는 눈치였다. 그때는 나도 더 이상 버틸 수만은 없었던지라 언니의 말이 떨어지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때의 황당함과 허망함이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내 어린 시절은 영영 가버린 건가? 그리고 진짜 여자가 되어버리는 건가? 내 유년 시절이 새삼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딸 있는 집안에서는 초경을 축하해주는 분위긴가 본데, 내가 초경을 했을 때만 해도 우리 집 가풍으로 그런 건 언감생심이었다. 엄마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셨고, 언니라고 하나 있는 것이 다독거려주지 못할망정 메롱 하며 약이나 올리는 형국이니 말이다. 여자가 뭐 어때서? 하지만 그땐 참 우울했다. 역사 이래로 여자의 월경은 뭔가 우울하고 음습한 것으로 인식돼왔다. 초경 이후에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건강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축하도 해주는 것이고.
연극 연출가 오태석씨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차오르고 나면 기우는 달처럼 자신의 몸에서 달의 주기를 체험하는 위대한 분들, 어떻게 이런 분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나.” 그렇다. 여자에게 월경은 그런 것이다. 그 옛날 내가 초경 때 이 말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우울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 서서히 폐경을 앞두고 이 말을 들으니, 새삼 내 월경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고맙다, 월경. 네가 있었기에 나는 여자일 수 있었고, 신비로울 수 있었다.
김현정 스토리텔링 작가<hr>엄마와 따뜻한 유대를 가지다
1985년 1월,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기간이었다. 사춘기 소녀인 나는 방학 생활이 괜히 공허해서 밥만 먹으면 곧장 방 안에 틀어박혀 FM 라디오만 주야장천 청취했다. 가 좋았고, 이 좋았다. 가 좋았고, (특히 공개방송)가 좋았다. 라디오에 사연을 써서 빨간 우체통에 부치기도 했다. 조용필만 나오면 “용필이 오빠!”를 외치던 내 또래 아이들의 무리에서 난 열외였다. 같이 유명세를 탔던 전영록과 이용도 난 그냥 그랬다. 특별히 좋아하는 연예인은 없었지만 라디오 사연만은 늘 나를 가슴 설레게 했고, 거기서 나오는 노래들이 좋았다.
그날도 난 을 들었다. 어쩐 일인지 낮잠도 안 잤는데 새벽 방송까지 내리 듣고 나서도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날의 컨디션은 다른 날과 조금 달랐다. 부족한 잠 탓인지 나른했다. 팬티에 소변을 지린 느낌에 일어나 눈을 떠보니, 엷은 갈색을 한 젤리 타입의 액체가 묻어 있었다. 엄마는 이미 아침밥을 짓고 계셨다. 주방 옆이 내 방이라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생리인 것 같아.”
중학교 1학년 가정 시간에 들은 풍월도 있었고, 엄마나 언니, 주위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들을 조합해보니 딱 그것이었다. 엄마는 따뜻하게 웃으셨다. “안 하던 걸 하려니 불편하지? 이젠 너도 어른이 됐구나”라는 말로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다. 마치 이날을 위해 준비해두셨을, 평소 하얗게 삶아놓은 순면의 천으로 내 은밀한 곳에 두껍게 대주셨다. 엄마는 이미 폐경기에 접어든 상태였기에 집에는 붙여서 쓰는 생리대도 없었거니와 탐폰은 구경한 적도 없었다.
그날은 하필, 친구와 돈암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생리 첫날은 추워서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두 번째 날부터는 복통이 심해졌고, 넓적다리 쪽으로 갈기갈기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분열을 느꼈다. 콸콸 흘러나오는 어마어마한 출혈이 열흘 이상 지속되면서 외출할 엄두를 못 냈다. 엄마는 내 배를 둥글게 마사지해주셨고, 진통제를 사주셨다. 입맛까지 잃은 내게 죽까지 쑤워주셨다. 그 기간에 나는 완전히 환자였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더니 소녀는 이렇게 여자가 되나 보다.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 고통이었지만, 엄마와 긴밀하고도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졌던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
조옥희 회사원<hr>
“왜 나만 줄줄 새?”
내가 초경을 한 건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끝 무렵이다. 새침하고 똑똑한 척했던 나는 엄마에게 알리지도 않고 이 초경을 멋지게 넘겨보리라 생각했다. 학교에서 나눠주었던 생리대를 떡하니 붙이고 시침 딱 떼고 있는 그 순간, 이상하게도 얼마나 희열이 넘치던지. 그런데 어이없게도 엄마는 금방 내가 생리를 하는 것을 알아버렸다. 바지에 선명하게 얼룩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걸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뭐 좋다고 벌써부터 하는 거야.” 초경을 중학교 1학년에 시작한 것이 내 잘못도 아닌데, 그 말을 들으니 얼마나 서러운지. 어쨌거나 내 초경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걸로 끝이면 얼마나 해피엔딩이겠느냐마는, 어찌된 영문인지 피는 생리대를 아무리 갈아도 계속 겉옷에 묻어났다. 낮은 그렇다 치고, 밤에는 어쩔 수 없이 이불에 누워야 하는데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피얼룩이 가득해서 칠칠치 못하다고 엄마에게 야단맞느라, 동생 몰래 속옷 갈아입고 겉옷 갈아입고 그 옷 얼룩 빼느라 정말 진이 다 빠졌다. 나는 너무 걱정됐다. 지금은 방학이라 괜찮지만, 개학한 뒤에는 이를 어쩌지?
제발 초경한 뒤 아주 오래 생리를 하지 않았으면 빌었다(초경 뒤 몇 달간의 휴지기가 있다고 배워서). 그렇게 초경이 끝나고, 나는 학교에 갔고, 다음달 어김없이 생리는 찾아왔다. 몇 번을 망설이다 언니 같은 친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생리를 해.” “아, 그래? 생리대 빌려줄게.” “근데 생리대를 해도 나는 계속 줄줄 새.” “잘하면 괜찮은데?” “아무리 잘해도 그래.” “어떻게 하는데?” 그제야 비밀이 풀렸다.
나는 팬티에 붙여야 할 접착 테이프를 내 몸에 붙이고 있었던 거다. 생리혈이 새지 말라고 비닐까지 갈무리된 바로 그 부분을 몸에 붙이고 있었으니 무슨 재주로 생리혈이 안 새나! 친구는 내 실수를 절대 비밀로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지금까지 그 일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가 야속하다. “뭐 좋다고 벌써 시작하는 거야” 퉁바리 주지 말고, 칠칠치 못하다고 잔소리만 하지 말고, 이상하다 싶으면 생리대 사용법 좀 알려주지. 잘난 척하고 싶어서 엄마에게 안 묻는 딸이나, 그렇다고 안 알려주는 엄마나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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