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문화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따돌림’이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는 10대의 ‘집단 괴롭힘’ 문화에 우려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괴롭힘 문화를 대하는 우리 태도에는 예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있다. 시쳇말로 인이 박여 감각이 무뎌진 것일까.
흥미로운 사실은 따돌림 문화를 상징하던 ‘왕따’라는 표현이 이제는 점점 구시대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언어가 생명력을 잃는다는 것은 그에 준하는 사회적 사실이 이미 바뀐 데 이유가 있을 터이다. 실제로 오늘날 10대들 사이에서 따돌림 문화는 왕따보다는 이른바 ‘빵셔틀’이라는 새로운 언어·현상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빵셔틀은 주로 ‘일진’에 해당하는 친구들이 자기보다 약한 친구에게 매점으로 빵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일컫는다. ‘셔틀’이란 말은 청소년 사이에서 보편화된 게임인 에서 따왔다. 일꾼 캐릭터가 자동적으로 자원을 채취하도록 지정한 경우를 이른다. 그러니까 학내에서 빵셔틀이란 또래 안에서 일꾼에 해당하는 친구들을 지칭하는 것이자 그들을 부려먹는 행위인 셈이다. 일진이 “야, 빵셔틀!” 하면 빵셔틀 아이는 “응, 알았어” 하고 다녀온다.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우리가 익히 알던 괴롭힘이란 또래 안에서 사회화가 덜 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따돌림, 놀림, 때림 등의 형태를 지녔다. 그런데 지금의 현상은 괴롭힘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약자를 노골적으로 압제하진 않는다. 오히려 (일부 일진은) 빵셔틀과 같이 놀아줄 정도로 포용력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또래 내 사회화’란 말도 내용이 많이 달라진 듯하다. 이제 괴롭힘의 대상으로서 약자는 그저 남들과 달라서 싸가지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 아니라, 공부를 잘 못하고 어수룩한 아이들로 표적화되고 있다.
이것은 10대가 맺는 사회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있음을 암시한다. 10대는 더 이상 물리적 폭력을 동반해 약자를 차별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의미화하진 않는다. 누군가를 노골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는 처벌이라는 보상이 뒤따를 뿐더러 또래 사이에서도 개념 없는 짓이라는 게 상식이다. 좀더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가 익히 알던 학교 폭력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일까. 가만 보면 물리적 폭력 자리에 슬그머니 기입되는 것이 있을 뿐인데, 이를 두고 착취관계와 유사한 것을 연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컨대 왕따와 빵셔틀 사이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억압은 피억압자를 필요로 하지 않아 눈에 안 보이면 그뿐이지만, 착취는 피착취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일진과 빵셔틀 사이에는 이 상호의존적 공모관계가 존재한다. 원리적으로 보면, 일진은 빵셔틀의 노동력이 필요하고 빵셔틀은 일진에게서 비폭력·인정·보호 등을 보상받는다. 단지 둘의 권력관계가 비대칭적일 뿐이다.
10대 문화에서 폭력의 지양이 착취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그 대상이 공부를 못하고 또래 안에서 약소한 문화자본을 가진 이들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는 증폭된다. 그렇다면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일선 교사들도 이 상황을 단속하기 쉽지 않다. 10대가 10대를 착취한다? 가시적인 폭력이 아닌 이상, 이것은 규제 대상이 되기 어렵다. 그저 물리적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개의 교사들은 안도하며 쉬쉬한다.
그럼에도 빵셔틀을 문제 삼는다면 이는 진정한 뇌관을 건드리는 일이 될 수 있다. 10대 내 착취관계를 문제라 여긴다면, 원칙적으로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착취관계를 통해 구성된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문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오늘날 10대의 빵셔틀 문화는 우리 시대가 당면한 한계 지점을 보여주는 셈이다. 모두의 묵인, 방조, 혹은 공모하에서 빵셔틀이 지극히 지배적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김성윤의 18 세상’은 10대 청소년의 하위 문화를 이리저리 요모조모 분석하는 칼럼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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