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여기엔 ‘개인’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가끔씩 절망한다.
예컨대 를 보다가 기분이 상한다. 이른바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받는 사람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한다. “다음엔 살을 빼고 와라.” 안 그래도 유명하신 연예인에게 심사를 받느라 잔뜩 주눅 든 ‘일반인’은 다급히 답한다. “네에에….” 그래도 합격만 시켜주면 언감생심 감사할 따름이다. 오디션 받는 그 일반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그 유명한 분의 ‘넘치는 애정’이 순간 이해는 되지만, 곱씹어볼수록 노골적인 외모차별 발언이라 갈수록 기분이 상한다. 만약 주변에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즐겨 건네는 농담, “인권위에 진정하삼”.
노래는 노래고, 몸매는 몸매다여기에 외모차별 죄인이 아닌 자가 있으면 나와보라. 쓰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그런 실수를 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제작진이 그 부분을 편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노 땡큐’를 쓰면서 필자는 잘못된 문장을 쓰기도 했지만, 독자가 보는 글에는 실리지 않게 삭제 자판을 눌러 지웠다. 이처럼 방송도 편집 과정을 거치니 그 부분을 내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 발언에 이어서 판단의 문제도 더해진 것이다. 아니,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 감성의 필터가 ‘우리’에겐 있다. 그토록 민감한 네티즌 사이에서도 “살 빼라”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우리’란 말을 썼다. 최근 후보들이 합숙을 하는데, 통통한 후보의 닭가슴살 위주의 식단이 소개됐다. 아무리 합의의 형식을 거쳐도 강권에 가까울 터. 비슷한 프로그램인 미국 은 합숙할 때 (하나?) 다이어트를 ‘시키진’ 않는다. 다이어트도 후보들에게 ‘슈퍼스타’가 될 기회를 주려는 배려일 수 있지만, ‘착한’ 한국에서는 ‘배려’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가 자주 침해된다. 노래는 노래고, 몸매는 몸매다.
여기 다시 지극한 배려의 문장이 있다. “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지난호 목수정씨의 ‘노 땡큐!’ 칼럼이 보수 일간지에 실린 이 광고의 ‘게이’와 ‘AIDS’에 주목했다면, 얼마 전 제주에서 만난 지인은 ‘아들’에 천착했다. 여성운동을 하다가(혹은 하면서) 시민자치 ‘달리 도서관’을 운영하는 제주도의 ‘아마조네스들’ 사이에서 강연 비슷한 것을 하다가 이 문장을 말하자, 한 아마조네스의 촌철살인 해석이 돌아왔다. “아, 그러면 그 아들이 책임져야지, 누가 책임져?” 벼락 같은 ‘맞다’. 그건 부모가 뭐라든 결국 아들의 문제다. 그런데 부모의 이름으로 아들이 불행해진 이유도 남에게 전가한다. 비유라도 그런 문장이 통하는 나라다. 심지어 ‘아들’이란 단어가 너무 자연스레 문장에 녹아들어 여기서 ‘아들’을 문제적으로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지극히 자식을 위하니 특혜 취업도 나온다. 이건 자식의 이름을 빌린 타인의 인권침해다. 그는 내 아들이기에 앞서 독립된 개인이다. 부모는 부모고, 자식은 자식이다. 제발.
자식의 일은 자식에게 맡겨라지지난호, ‘노 땡큐!’에 썼던 ‘조니 위어를 부탁해’가 포털 사이트 첫 화면에 떴다. 글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기회이나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조마조마하고, 혹시 글에서 어떤 부분이 논란에 오르지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물론 무차별 댓글을 읽을 만큼 용자도 아니다. 이렇게 글조차 유명해지는 것이 부담스럽다. 이런 이에게 ‘타블로 논란’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타블로가 스탠퍼드대학을 다녔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타블로의 이력을 이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집요하게 파고드는 네티즌 수사대의 집념 혹은 집착이다. 네티즌이 결과적으로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와 별도로 서로에게 지나치게 ‘파고드는’ 사회가 두렵다.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한 무례한 관심을 배려로 포장하는 사회, 부모란 이유로 자식의 이름을 도용하는 사회가 불편하다. 과잉 보호, 과잉 관심, 노 땡큐!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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