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한 가지에 매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고3도 아닌 것이 수험생처럼 죽어라고 공부를 했다. 날마다 새벽 5시에 맞춰놓은 자명종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기를 게 눈 감추듯 끝내면, 책만 가득 들어 있는 가방을 메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렸다. 학원 강의가 끝나면 광화문에 있는 4·19 국립도서관으로 뛰었다. 라면으로 점심을 때운 뒤, 2층에 있는 지정석에 죽치고 앉아 저녁 8시까지 공부를 했다. 화장실에 갈 때 잠깐씩 바깥공기가 필요한 순간 외에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내 나이 스물일곱 살을 그렇게 보냈다.
때론 외롭고 처량하고 바보짓이 아닌가 하는 유혹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세운 목표를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자존심이란 방패로 맞서 이겨냈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열심히 하고 싶었다. 나는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게 되었다. 정말 무식하게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공부했으며 나는 후회 없이 끝냈다.
홀로 사막을 걷는 것처럼 막막하고 목이 타는 삶의 순간이 올 때, 나는 그때 그곳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그러곤 다짐한다. ‘내가 그때도 이겨냈는데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해?’라고. 샛별을 바라보며 별처럼 홀로 지냈던 그때를 되돌아보면 지금도 나는 혼자 즐거워지고 당당해진다. 그 시절은 언제까지나 내 삶의 오아시스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어느 해 여름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곳, 4·19 국립도서관을 찾았다. 건물은 현대식으로 거의 개조돼 있었다. 사람들도 예전처럼 학생이 아닌 어른들로 가득했다. 나는 내가 앉았던 구석진 곳을 찾아 학생처럼 소설책을 한나절 동안 읽고 도서관을 나왔다. 지금도 나는 버스를 타고 광화문 쪽을 지날 때면 유리창 밖을 기웃거리며 4·19 도서관을 찾는다.
우리 아이들에게 센터는 어떤 곳일까. 학교 부적응자로 온 아이, 재판을 받고 온 아이, 어른 손에 붙들려 억지로 온 아이…. 자의로 온 아이는 드물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을 하루 24시간 ‘뺑뺑이’를 돌린다. 아침 6시20분에 깨워 바쁘게 살게 한다. 컴퓨터반·학습반·미용반에 들어가 ‘빡세게’ 공부를 하고, 음악 시간에는 랄라라 노래를 부르며, 악기 시간에는 삐삐 소리내어 불고, 상담, 가족회의, 각종 모임, 글쓰기, 구석구석 쓸고 닦고 청소하기 등등을 하다 보면 하루가 어느새 뚝딱, 또 내일이 시작된다.
이런저런 시험도 많다. 정보기술자격(ITQ), 파워포인트, 워드, 네일아트, 필기, 실기 시험에 한식·양식 요리사 시험 등등 눈만 뜨면 시험 준비에 며칠이 멀다 하고 시험장으로 달린다. 시험 합격률은 100%.
난 가끔 아이들에게 묻는다. “센터에서처럼 열심히 산 적 있니?” 하고. 그러면 대답은 한결같다. “아~니요? 내가 생각해도 참 기특해요. 제가 자격시험이라는 걸 칠 줄 정말 몰랐어요. 내가 공부라는 걸 하다니….”
하루살이처럼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하던 아이들이 공부가 점점 좋아진다느니, 앞날이 걱정돼 요즘 고민이라는 것도 좀 하게 된다는 심각한 소리까지 서슴지 않는다.
며칠 전, 미주가 퇴소를 했다. 미주는 살면서 이런 말을 자주 했던 아이다. 어차피 나가면 이곳 사람들과는 남이니까…. 그런데 퇴소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미주는 열심히 청소하고 남을 도와주고 혼자 공부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깍쟁이 미주가 남긴 말, “나가더라도 못 잊을 거예요. 놀러올게요. 많이 배웠어요”.
미주에게 아이들도 한마디씩 해주었다. “나가서 열심히 살아. 이곳에서 배운 것 잊지 말고.” “여기서 살던 것처럼 살아. 나쁜 짓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그리고 어려운 일 있으면 수녀님께 연락해서 해결해.”
미주는 눈물을 흘렸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웃으면서 나가리라 생각했는데….
센터는 울고 왔다 울고 가는 곳. 오기 싫어 울면서 왔다가 아쉽고 섭섭해서 눈물 흘리며 떠나는 센터는 아이들이 가장 열심히 살았던 곳으로 그들 기억에 남아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그래서 어느 날, 버스가 이 근방을 지나칠 때면 나처럼 어느 아이도 고개를 기웃거리며 센터 건물을 보려고 유리창 밖을 기웃거리지 않을까.
나는 떠나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디서든 센터에서 살 때처럼만 살라고. 그럼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너의 몸에 밴 무질서한 습관 때문에 또 쉽게 무너지려 할 때 이곳 생활을 떠올리며 다시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기를. 센터의 모든 수녀들이 센터가 아이들 가슴에 ‘삶의 오아시스’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김인숙 글라라 수녀·마자렐로 센터
*‘마자렐로의 소녀들’은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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