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열두 살에 언니와 함께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오바진 고아원에 맡겨졌다. 깡마르고 고집 세며 자유분방한 검은 머리 소녀는 고아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엄격한 규칙적인 생활은 더더구나 싫었다. 훗날 샤넬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열두 살에 모든 걸 빼앗겼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때 나는 죽은 거나 다름없었지요.”
그러나 세계적인 디자이너로서의 인생은 수녀원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녀가 선호하는 검정과 짙은 색, 흑백 대비, 단순하며 중후한 디자인은 어린 시절 오바진 수녀원의 수녀가 입은 수녀복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명한 샤넬 로고도 그 시절의 경험에서 탄생한다. 어린 샤넬은 수녀원에서 미사를 드리는 동안 촛불이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며 머릿속으로 어떤 형상을 그렸다. C라는 철자 두 개가 교차된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 그녀의 눈에 강한 인상을 남긴 이 형상이 바로 두 개의 C가 교차하는 샤넬 로고가 된 것이다. 향수 이름 대신 번호를 붙이겠다는 생각도 그랬다. 오바진 수녀원에서 자랄 때 2층 회랑의 모자이크에서 읽은 숫자들이 마치 비밀 문자라도 되는 양 소녀의 눈에 신비스럽기만 했다. 훗날 그녀는 향수 이름을 짓는 대신 과감하게 번호를 붙였다. 그녀는 ‘샤넬 N˚5’의 ‘5’가 행운의 숫자가 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샤넬은 수녀원 생활을 싫어했으나 그때의 체험을 자신의 사업에 모두 이용했다.
열여섯 살 애랑이는 네 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우리 센터에 왔다. 두 곳 모두 수녀원에서 운영한다. 명랑한 성격의 애랑이는 머리도 좋은 편이라서 기죽지 않고 지낸다. 그런데 애랑이는 너무 꾀가 많아 자기 꾀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방청소는 물론이고 자기가 맡은 구역 청소도 늘 대강 헤엄치고는 다 했다고 큰소리치다가 현장 검증에 나서면 씨익 웃으며 “안 했는데요” 한다. 그 순간에는 약이 오르지만 밉지는 않다. 붙임성이 많아 언니들과도 잘 어울리는데, 동시에 싸움도 잘한다. 며칠 전에도 “메롱, 약 오르지?”라며 지은 언니 마음에 불을 지르면서 잽싸게 이층으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이곳 센터에 오기 전까지 애랑이를 돌봐주던 고아원의 이모도 사춘기 소녀 애랑이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가떨어졌단다.
‘로즈마리’라는 본명을 가진 애랑이는 현재 내가 맡은 신자반의 반장이다. 언니들을 제치고 스스로 반장 완장을 차고선 내 애간장을 녹이는 중이다. 그런데 지난주 신자반 시간에는 웬일일까, 다른 아이들은 다 꼬꾸라져 깊은 잠을 자는데 애랑이만은 반장이랍시고 시든 배춧잎 모양이긴 했지만 그래도 앉아 있었다.
나는 애랑이를 보며 늘 샤넬을 생각한다. 엄마 젖가슴도 모르고 자란 그 아이의 뒤통수를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실 주님께 나는 힘껏 기도를 한다. 그리고 덧붙여 이런 주술을 읊는다. ‘애랑아, 코코 샤넬을 닮아라. 그 세계적인 여인도 너처럼 어린 나이에 고아원에서 수녀님들과 살았단다. 바느질을 배우는 시간이면 바늘에 찔리거나 바늘을 찾아 탁자 밑을 헤매는 시간이 더 많았대. 청소도 너처럼 하기 싫어했어. 그러나 샤넬은 정말 탁월한 꾀순이였어. 어린 시절 수녀원에서 배우고 체험한 것을 자신의 사업에 모두 이용했으니까. 그곳에서 익힌 청결함, 자연스러움, 간소함까지 샤넬은 자기 작품의 독특한 이미지로 사용했단다. 애랑아, 너도 그런 샤넬을 닮아라. 그래서 지금 이곳 센터 생활을 너의 인생에 모두 이용해. 그것이 진정한 꾀란다.’
말년에 샤넬이 별장을 지을 때, 건축가가 가져온 설계도를 보고 그녀는 단 한 가지만 수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어릴 적 오바진 수녀원에서 오르내리던 커다란 돌층계를 그대로 만들어달라고. 그녀는 돌층계 이름을 ‘수도사의 층계’라고 붙였다. 너무나 싫어했지만 소중한 그 시절. 그녀는 날마다 향수에 젖어 돌층계를 오르내리며 노년을 보냈다.
이번달 애랑이의 청소 구역은 양쪽 계단이다. 한칸 한칸 계단에 코를 박고 걸레질을 하며 내려온다. 통통한 두 다리가 귀엽고 믿음직하다. 아무데서나 섣불리 써먹는 애랑이의 그 잔꾀가 걱정이지만 어디서 살든 제 밥그릇은 챙길 것 같다. 오늘도 애랑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나는 또 주술을 읊는다. ‘꾀순이 애랑아, 더도 덜도 말고 샤넬을 닮으렴.’
김인숙 글라라 수녀·마자렐로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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