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다문화 시대임을 우리 센터에서도 실감한다. ‘니엔티마이투’는 희재의 베트남 이름이다. 희재는 아기 때 친아버지를 잃고 엄마·오빠와 어렵게 생활하다가, 국제결혼으로 재혼을 하게 된 엄마를 따라 이 땅을 처음 밟았다. 희재는 지금 대학생이다.
희재는 2004년, 그러니까 희재 나이 열다섯에 엄마와 함께 우리 센터를 찾았다. 한국말을 못해 학교에서는 왕따에, 공부 못한다고 야단치는 한국 아버지와 하루 종일 식당일을 나가는 엄마 사이에서 희재는 늘 방문을 잠그고 혼자 지냈다. 그래야 숨이라도 편히 쉴 것 같았기에.
희재는 센터에서 햇수로 6년을 살면서 고입 검정고시 합격, 미용고등학교 졸업에 이어 대학 합격까지 쑥쑥 통과했다. 그뿐인가. 미용자격증 취득에 미용경진대회 입상, 대학에서는 장학금까지 받아왔다. 희재는 자식 키운 뿌듯함을 수녀들에게 원없이 안겨줬다. 현재 강원도에 있는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희재는 종종 주말이면 센터에 와서 리포트를 쓰기도 하고 피곤을 풀고 간다. 희재가 오면 아이들은 ‘큰언니’ 왔다고 소리치고 수녀들은 친정집에 찾아온 딸처럼 맞이한다.
베트남인 희재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 땅에서 겪은 어려움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짜증나고 화가 나도 말로 표현하지 못해 속으로 참아야 했는가 하면, 서서히 말을 하게 됐을 때는 자기 입장을 천방지축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가 황당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후자의 일이 미용고등학교 때 자주 일어났는데, 여기서 두 가지 사건을 소개하겠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희재는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주관식 시험이기에 한국말을 한 자라도 틀리지 않으려 딴에는 완벽하게 문장들을 외웠다. 그러나 시험 결과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희재 말을 빌리자면 이랬다.
“제가요, ‘아’ 인데 ‘야’로 쓴 게 한 개 있고, 또 글씨 한 개가 빠졌던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제가 외국인이라 한국인처럼 쓸 수 없으니 정답으로 인정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선생님은 희재의 심정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결과는 마이너스. 어디서 ‘싸가지 없이’ 따지냐며 선생님은 희재가 가져온 시험지에서 잘못 쓴 글씨를 더 찾아내 감점했다.
또 한 번은 올림픽 공원으로 야외 수업을 갔을 때다. 담임 선생님이 반장한테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오라 했다. 반장은 희재에게 1천원을 빌렸다. 희재는 반장에게 물었다. 이 돈 누가 갚느냐고. 반장은 선생님에게 말씀드리라고 했다. 다음날 희재는 선생님을 쫓아갔다. 그런데 선생님은 반장한테 가라고 했다. 반장은 또 선생님에게 가라고 했다. 돈 꿔주고 바보가 된 희재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채무자인 담임 선생님과 맞섰다. 그러나 결과는 희재의 KO패.
“어느 날 반에서 2천원씩을 거뒀어요. 그래서 나는 그 돈 1천원을 생각하고 1천원만 냈어요.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저를 불렀어요. 그래서 제가 저번에 빌려준 돈을 뺐다고 하니 선생님은 오히려 화를 내셨어요. 기분 나빠서 그 돈을 안 받고 그냥 내 돈 1천원을 더 냈어요.”
나는 희재에게 만약 베트남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어땠을지 물었다. 희재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거기서 학교 다닐 때에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커피 뽑아오라고 하지 않았고요, 만약 선생님이 돈을 빌렸으면 학생에게 꼭 갚았을 거예요”라며 흥분했다.
희재의 딱딱한 말투와 조목조목 따지는 듯한 태도가 선생님의 감정을 건드렸겠구나 하면서도, 나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 학생에 대한 아우름이 겨우 이 정도인가 하는 서운함이 들었다. 혈연·지연·학연 등 무슨 ‘연’ ‘연’ 하며 자기들끼리 뭉치길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타민족이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다문화 역사가 좀더 쌓이면 이런 벽을 허물 수 있을까?
다행히 희재는 센터 생활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이곳 친구들이 희재를 잘 받아주었다는 뜻이다. 아무리 수녀들이 잘해줘도 아이들이 희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희재는 없었을 것이다. 10대에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아이들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단순함이 있다. 타인을 받아들이는 넓은 포용력. 웬만하면 문제 삼지 않는 우리 아이들의 열린 마음을 칭찬해주고 싶다.
김인숙 글라라 수녀·마자렐로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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