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이가 담배를 피우다 발각됐다. 간이 부은 행동이다. 이 말끔하고 청정한 집에서 담배 연기를 겁없이 뿜어대다니…. 가족회의 결과, 효이는 한 달 동안 주방 설거지, 주방 도우미, 식탁 닦기에 한 달 동안 매일 감정일기 쓰기와 묵주 기도를 30분씩 바치라는 벌칙이 내려졌다. 아이들이 보통 때보다 벌을 아주 과하게 때렸다.
효이는 지난겨울 부모의 강한 손에 이끌려 센터에 입소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효이는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서구적인 마스크가 탤런트는 저리 가라다. 듣자하니 한때 연기 학원도 다녔단다. 그런데 센터에 입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저히 못 살겠다고 퇴소를 하더니만 다시 ‘굳세어라 효이’가 되어 살겠다고 재입소한 것이다.
일주일도 채우지 못하고 고요한 한밤중에 종을 울려도 분수가 있지, 그것도 나이 어린 자영이까지 꾀어서 말이다. 아이들이 효이에게 화가 난 이유는 두 번씩이나 들어와서 왜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느냐에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설득해 한 달 벌칙은 너무하지 않느냐며 통사정해 벌칙 기간을 15일로 조율했다.
감정일기는 반성문 겸 그때그때 주어진 주제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쓰는 작업이다. 나는 15일 동안 효이와 자영이에게 감정일기를 쓰면서 자신들의 마음을 정리하게 했다. 분량은 A4용지 한 장 이상, 글씨는 10포인트 크기로 정해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늙은 호박덩이만큼의 글씨 크기로 몇 자 찍 갈기고 만다. 나도 보통 생각을 굴리는 게 아니다.
어느 날은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쓰고 암기하고, 또 이 시가 나에게 뭘 전하는지를 적게 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효이는 다음날 사색에 빠진 표정으로 이 시를 내 앞에서 암송했다. 그리고 시 감상을 이렇게 적어왔다. “이 시에서 말하는 ‘흔들리는 꽃’과 ‘젖은 꽃’은 꽃이 완전 개화하기까지의 과정이다. 나 또한 꽃을 피우려면 흔들릴 수도 있고, 젖을 수도 있다. 나의 흔들림도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좌절하지 않겠다. 더욱더 힘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꿋꿋이 버티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성취될 것이다. 파이팅!”
며칠이 지났다. 그날은 두 아이에게 감정일기 주제로 자기를 상징하는 꽃과 그 꽃에 대해 쓰게 했더니 효이는 암송했던 시를 그럴듯하게 인용해 쓴 일기를 내 앞에 내밀었다.
“나의 세례명은 로사(Rosa)다. ‘장미꽃’이란 뜻이다. 장미는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까지 지니고 있다. …내가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열심히 견뎌내고 잘해내서 장미꽃으로 개화하면 되지 않는가. 나는 다시 한번 순수하고 예쁜 장미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개화하기까지? 파이팅!”
머잖아 우리 센터에서 시평론가에, 인생 승리자가 탄생할 조짐이 보였다. 그날 나는 효이의 감정일기장을 덮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효이야! 시평론가도, 인간 승리도 다 좋다. 그런데 네가 그 담배 녀석을 또 입에 물까 겁난다. 담배의 ‘담’자도 듣기 싫다고 손사래 좀 쳐봐라, 응? 효이, 파이팅!’
김인숙 글라라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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