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사무실 유리창을 통해 강하게 내리꽂히는 주일 오후다. 서랍 정리를 하는데, 이상하게 내 코는 무슨 냄새를 좇고 있다. 코린 된장 냄새 같기도 하고, 금방 띄운 달착지근한 메주 냄새, 아니 쉰밥 냄새 같기도 하다. 아이들도 수녀들도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한마디씩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알 수 없는 냄새는 계속 잡히지 않고 휙휙 실내를 돌아다녔다.
냄새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저녁 식사 뒤였다. 지하 강당에서 아이들에게 밤인사를 마치고 올라온 원장수녀의 한마디. 누군가가 지하 강당 구석에다 똥을 싸놓았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은 TV에서나 보는 줄 알았는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5동 우리 집에서 생기다니, 기가 콱 막혔다. 웃자니 심각하고, 정신을 차리자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녀들은 일단 그룹별로 아이들을 만나 이 사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랬다.
1. 정말 짜증난다.
2.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3. 외부인은 아닌 것 같고, 우리 중 누군가가 그랬을 것이다.
4.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DNA 검사를 하면 금방 누군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얘기가 나왔는데, 나는 DNA 검사를 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귀가 솔깃했다. 범인을 잡는 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확실한 방법임이 틀림없었다. 빨리 이 방법을 써서 심각한 상태의 아이를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똥을 조금 떼어놓아야 했다. 다급한 마음으로 원장수녀를 찾으니 그녀는 지하실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양손에는 걸레가 한 뭉치씩 들려 있었다. 식당 어머니와 함께 그 똥을 치운 것이다. 순간 똥 치우는 작업에 내가 끼이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사람의 심보가 그랬다. 나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수녀님, 다 치워버렸어요? 아이들이 그러는데 DNA 검사를 하면 누군지 안대요. 조금 남겨놓아야 하는데…”라고 횡설수설했다. 그녀는 대답 대신 눈짓으로, 다 치웠으니 올라가자며 무겁게 계단을 밟았다. 수녀들은 다시 모여 앉았다. 침묵 아닌 침묵이 흘렀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원장수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수녀님들, 수고했어요. 아까는 저도 참 황당했어요. 세상에 다 큰 아이들이 이럴 수가,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을까, 그리고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똥 눈 아이를 밝힌다 해도 어쩌겠어요.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 해결책을 찾기로 하고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합시다. 그리고 새로 오신 수녀님들, 우리 집 특징은 늘 제로에서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제 그만 자러 가세요.”
나는 조금 감동을 먹었다. 누구도 그녀의 말에 이견이 없었다. 우리 모두는 집 나온 소녀, 갈 데 없는 아이들과 등 비비며 살려 이곳에 왔지 않은가. 다음날, 원장수녀는 수녀들에게 했던 비슷한 말로 아이들을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인생은 혼자 가는 길, 외로운 길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동반자를 두었다. 그를 사랑해줄 부모, 친척, 친구, 스승을. 그러나 사랑받기 전에 사랑에 상처만 받은 이가 우리 집 아이들이다. 이제 그들은 좀처럼 믿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부모도, 친구도, 스승도….
며칠이 지났다. 당직 날 밤,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조용히 지하실로 내려갔다. 의자가 쌓인 오른쪽 후미진 곳의 형광등을 켰다. 벽에 팔을 붙이고 기대서서 마룻바닥을 내려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내가 뭘?” 하고 펑퍼진 똥을 본다. 그 옆에는 외로워서 똥을 눈 다 큰 어린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손톱을 연방 물어뜯고 있다. 추운 겨울보다 사는 게 외로워 떨고 있는 그 아이에게 나는 가만히 말을 건넨다. “아가야 미안해, 울지 마. 나를 믿지 않아도 돼. 다만 내가 네 손을 잡아줄게.”
형광등 불빛마저 외로운 밤이었다.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 그날 그 사건에 대해 누구 하나 입에 올리지 않은 채.
김인숙 글라라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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