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자렐로의 소녀들] 은희야, 다시는 오지 마. 마자렐로 센터 제공
“야, 드디어 해방이다. 해방.”
아침 식사가 시작되기 전이다. 평상시에도 목소리가 큰 은희(가명)가 갑자기 만세를 부르며 소리를 지른다. 아이들 중 몇 명이 은희에게 몰려와 한마디씩 한다.
“잘됐다, 그럼 오늘로 끝난 거야. 축하해 은희야, 좋겠다.”
아이들은 은희의 함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낌새다. 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은희가 ‘6호 처분’ 기간이 오늘 아침으로 끝났단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한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돼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조처다. 그러니까 은희는 보호관찰 대상자가 돼 청소년 위탁 보호기관인 우리 마자렐로 센터에서 6호 처분 기간 6개월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이런 낯선 축하는 우리 집에서나 있을 수 있는 광경이다.
열여섯 살 은희. 170cm의 큰 키에 하얀 피부의 소녀다. 은희는 인사성이 참 바르다. 하루에도 여러번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명랑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수녀님!” 하고 인사한다. 요즘 은희는 고입 검정고시를 앞두고 책을 한 보따리씩 가슴에 안고 돌아다닌다.
우연의 일치랄까. 점심 식사에 두부 반찬이 나왔다. 감옥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면 두부를 먹는 전통을 하느님께서 어찌 아셨을까. 나는 얼른 은희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살짝 장난을 쳤다. “은희야, 축하해. 오늘 두부 많이 먹어라 잉.”
은희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며 킥킥 웃는다. 그러고는 감사하다며 꾸벅 인사까지 한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공부방 이삿짐을 날랐다. 릴레이로 서서 수레에 물건을 옮겨 실었다. 은희는 계단 맨 아래쪽에서 나에게 물건을 전달하며 “수녀님, 힘드시죠? 이렇게 들면 덜 무거워요”라고 말해준다.
겨울바람이 정원의 나뭇가지에게 심술을 부리고 있다. 지난겨울, 나무들은 자기 몸에서 최소한의 수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 그 물을 가지고 있으면 얼어죽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은희에겐 날마다 추운 겨울이었다. 은희가 쓴 ‘인생 이력서’는 슬픈 얼룩으로 가득하다.
“내가 3살 때 엄마와 아버지는 이혼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했는데 나는 공부 못한다고 맞고, 왕따를 당했습니다. 3학년 때 수원으로 전학을 했습니다. 거기서는 좀 버틸 수 있었습니다. 4학년 때 또 군포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는 더 무서웠습니다. 왜냐하면 시도 때도 없이 때리는 선생님과 욕을 해대는 애들…. 눈물을 꾹 참고 살았습니다. 또 전학을 갔습니다….”
은희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세상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에서 물을 버리듯.
“중1 때,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런 내 모습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중2 때부터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남의 물건을 뺐고 마음에 안 든 아이들을 때렸습니다.”
은희가 든 돌은 점점 크고 과감해졌다. 오토바이를 훔쳐서 무면허 운전을 하고, 돈이 필요하면 인터넷 채팅으로 소녀의 성을 갈구하는 비열한 어른에게 자신의 성을 팔고, 친구들에게 강제로 성매매 알선까지 했다. 은희는 자신이 받아야 할 처벌을 순순히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 은희는 잘 먹고, 자고, 놀고, 열심히 공부하는 소녀다. 그러나 은희는 잦은 자살 충동과 심한 우울증으로 하루에 두 번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 철없이 대범했던 소녀는 자신이 던진 돌이 두려워 지금도 떨고 있는 것이다.
화창한 꽃의 계절 5월이 되면, 소원대로 은희는 엄마와 함께 살고자 집으로 간다. 나는 만발한 꽃들 속에서 은희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때마다 은희가 보고 싶어질 것이다. 생활보호대상자인 궁핍한 가정 형편. 밤에 일을 나가시는 엄마와 열여덟 살 나이에 벌써 미혼모가 돼버린 언니가 과연 은희를 제대로 붙잡아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마지막 짐을 수레에서 내리자마자 은희는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빈 수레에 올라탄다. 나는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엄마 마음으로 수레에 은희를 태워 정원을 돈다. 깔깔거리는 은희의 웃음소리가 왠지 그리움처럼 아파온다. 나는 서서히 이별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은희야, 잘 가. 다신 처분 같은 것 받고 여기 오지 마. 너를 떠난 아버지, 시도 때도 없이 때린 선생님, 너를 희롱한 아저씨 모두… 어른이라는 게 참으로 부끄럽다. 꽃처럼 예쁜 우리 은희, 잘 가….”
김인숙 글라라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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