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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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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좋아요, 판사님”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던 두 소녀의 다른 선택…
진이는 소년원 독방으로, 현이는 몇 번 고비 넘기고 열공 중
등록 2010-06-18 16:08 수정 2020-05-03 04:26
“이곳이 좋아요, 판사님”.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이곳이 좋아요, 판사님”.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법원 동관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758호실로 올라간다. 재판받은 아동을 넘겨받기 위해 인수증을 쓴 다음 재판기록 카드를 가지고 다시 지하실로 내려간다. 좁은 복도 오른쪽 창살 너머에는 아이들이 훔친 오토바이를 비롯한 물건들이 수북하다. 물건마저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 범죄인처럼 갇혀 있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간다. 가운데를 복도로 하여 오른쪽 창살 너머에는 남자 청소년들, 왼쪽 창살 안에는 10대 소녀들이 있다. 모두 수갑을 찬 채…. 분류심사원에게 아동 인수 서류를 건네면 아이의 이름을 불러 확인한 다음 손목의 수갑을 풀어준다.

진이와 현이도 이런 절차를 밟고 우리 집에 왔다. 오는 도중 우리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누누이 당부한다. 정말 센터에서 잘 살기를 바란다고, 그래야 소년원에 가지 않는다고.

그러나 진이는 온 지 이틀 만에 일을 벌였다. 시력이 아주 나쁜 진이를 위해 안경을 맞추러 가자고 했더니 가지 않겠단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막무가내로 가기 싫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러나면 이 아이를 센터에서 데리고 있을 수 없다. 골롬바 수녀가 다시 권하니 진이는 나가겠다고 침실로 올라가서 짐을 쌌다. 세상에 기가 막혀서….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벌린 입이 닫히지 않는다. 짐을 들고 내려온 진이는 자기가 맡긴 사진기와 지갑을 달랜다. 그걸 가지고 튈 생각이다. 튀긴 어딜 튀어? 법원으로부터 진이를 위탁받은 우리는 사고가 나면 신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가출 신고를 하면 즉시 잡힐 몸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진이가 하는 행동이 이렇다.

진이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자기 부모보다 훨씬 나이 많은 원장 수녀에게 ‘존나’를 비롯한 ‘십원짜리’ 쌍욕을 거침없이 토해낸다. 진이의 눈동자가 옆에 칼이라도 있으면 휘두를 것 같은 기세다. 경험 많은 원장 수녀는 직감한다. 진이는 우리 집에서 보호할 능력 밖의 아이라는 것을. 그날 오후 진이는 다시 재판을 받고 소년원으로 직행했다.

처음 만난 현이는 차 안에서 계속 울었다. 재판을 받다니…. 억울했나 보다. 며칠 동안 현이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말도 하지 않았다. 이틀 뒤, 현이는 가출을 했다가 다음날 들어왔다.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현이는 두 번째 가출을 시도했다. 다시 돌아왔다. 아니 여기가 자기네 안방인 줄 아는감? 제 처지를 모르고 돌발 행위를 밥 먹듯 하다니…. 현이는 규칙에 따라 여러 처분을 받았으며, 우리는 의식적으로 현이를 냉랭하게 대했다. 참 그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 현이는 처분을 다 치렀다. 그런 사이 아이들 틈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왜 들어왔는데? 정말 살려고 들어왔어? 그럼 보여줘’라는 눈빛 언어로 진이를 힘들고 외롭고 무섭게 했던 아이들 속으로.

5월15일 스승의 날, 현이는 자신을 재판했던 판사님께 편지를 썼다.

“판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3월24일에 재판받았던 현이라고 합니다. …그때는 판사님이 밉고 그랬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드려요. 계획도 목표도 없이 살았던 제가 이곳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또한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모두 값지게 여기고 있고요. 하루하루 즐겁고 바쁘게 생활하는 이곳이 좋아요. 판사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똑같은 실수 두 번 다시 하기 싫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숙명과 운명이 있다. 사람에게 숙명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는 없다. 진이와 현이의 가정 형편, 자라온 환경은 거의 오십보백보였다. 이것은 두 소녀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반면 운명은 선택의 자유가 있다. 인생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보다 선택할 수 있는 운명의 기로에 놓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자신의 현실 앞에서 진이와 현이의 선택은 달랐다.

한 달 뒤, 우리는 진이를 만나러 안양 소년원을 찾아갔다. 면회를 신청했으나 만날 수 없었다. 그 안에서도 폭력을 휘둘러 독방에 구금된 상태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진이는 청주소년원으로 이송됐단다.

현이는 몇 번의 아리랑 고개를 넘었지만 계속 센터에 머물면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컴퓨터와 미용 자격증을 따고 8월에 있을 대입 검정고시 합격을 향해 현재 열공 중이다.

김인숙 글라라 수녀·마자렐로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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