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분위기가 저녁까지 수녀원을 맴돌았다. 아침 미사를 다녀온 우리를 바라보는 아이들 눈동자가 평소와 달리 냉소적이면서 어딘지 힘이 들어가 있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수녀들을 화성에서 온 사람 대하듯 했다. 의구심과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딱 물어보기도 뭐하고, 또 그럴 만한 일도 없는데… 몇몇 아이들 눈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남이가’ ‘언제 우리가 뭐, 아는 사인가요?’ ‘흥, 믿을 놈 하나 없어.’
눈길이 스칠 때마다 우리는 점점 소심해지면서 아이들보다 더 많은 말을 속으로 했다.
‘아니, 왜 그래? 우리가 뭘 어쨌다는 거지? 뭘 잘못 했나? 잘못이라면 이 한 몸 다 바쳐 너희와 살겠다고 하늘에 맹세한 것밖에 없다, 없어.’
안 되겠다 싶었다. 이런 분위기를 내일까지 끌고 가면 우리 집은 안 된다. 초전에 잡지 못하면 감정은 불길보다 더 빠르게 번져 걷잡을 수 없다. 우리는 수색 작전에 나섰다. 어이없게도 원인은 ‘닭뼈’였다. 사건의 전말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설거지 팀이 아침에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뒤뜰에 있는 쓰레기통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그 안에 웬 닭뼈가? 그것도 수북이 버려져 있었다. 순간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주지 않고 맛있는 닭을 수녀님끼리 몰래 먹었을 테니까.
그래서 직접 말은 못하고 눈으로 우리를 고문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눈 고문, 코 고문을 한들 우리는 결백했다. 그렇다면 닭뼈가 스스로 쓰레기통을 찾아 걸어 들어갈 리는 없는데 어찌된 영문인가? 누군가가 센터 쓰레기통에다 버린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수녀원 안에 있는 세 공동체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우리 집의 ‘닭 사건’을 알린 뒤 즉시 신고를 부탁했더니 생각보다 빨리 신고가 접수됐다. 윗동네에서 운영하는 주부학교에서 어머니들이 책거리 파티를 끝낸 뒤 우리 집의 큰 쓰레기통이 인심 좋게 보였던지 닭뼈를 안심하고 버리고 간 것이다.
센터 수녀들은 매일 점심·저녁 두 끼를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먹는다. 아침은 미사 때문에 수녀원 식당에서 따로 먹는다. 생각해보라. 30대에서 50대 후반의 수녀들이 십대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 순대, 김밥, 어묵, 튀김, 돈가스, 국수, 라면 등을 언제나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올 초에 한 수녀님이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에 당뇨와 고혈압으로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나 또한 건강진단 결과 콜레스테롤이 높으니 조심하고, 체중을 줄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센터 수녀들은 불어나는 게 몸무게요, 높아지는 게 콜레스테롤 수치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듯 센터 아이들도 고기를 환장할 정도로 좋아한다. 고기 뷔페에 데리고 가면 고기 맛을 처음 보는 아이들처럼 변한다. 고기는 물론이고 아이스크림 통도 바닥까지 긁으며 끝장을 봐버린다. 정말 부끄러워 죽겠다. 그러니 수북이 쌓인 닭뼈를 발견하는 순간 눈이 뒤집히지 않으면 우리 집 아이들이 아니다.
어느 고기 뷔페 주인장은 우리 아이들에게 “너희는 간장만 먹었느냐?” 하고 쏘아댔다. 5대 영양소인 탄수화물·지방·단백질·비타민·미네랄을 골고루 분배시키는 마자렐로 센터 식단을 ‘간장 한 사발’이라니…. 우리는 그 주인장과 한바탕 붙을 뻔했다.
올봄에 이상한 현상이 내 몸에서 일어났다. 계속 허기가 지고 매가리가 없었다. 뭔가를 먹고 기운을 내야 했다. 채소만 먹고는 힘낼 수 없을 것 같아 식사 시간 외에 쇠고기 몇 점을 구워 먹는데, 그 전 준비와 후속 마무리가 편치 않았다. 추운데도 창문을 열고 빨리 먹어치워야 한다는 조급함에 보신은 둘째 치고 체할 뻔했다.
얼마 전에는 소화기능에 이상이 생겼는지 계속 설사를 했다. 나는 밥을 끓여 조용히 수녀원 식당에서 먹고 있었다. 몇 숟가락을 입에 갖다 대는데, 그날따라 옥빈이가 타이밍을 맞춰 큰 소리로 나를 찾았다.
“글라라 수녀님, 식사하세요. 글라라 수녀님, 빨리 오세요.”
친절한 옥빈씨! 친절도 하셔라. 아, 여기서는 죽도 맘대로 먹기 힘들다.
김인숙 글라라 수녀·마자렐로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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