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기자 J는 참 올곧다. 너무 올곧은 나머지 아주 간혹 고지식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 J가 ‘위장전입’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올 무렵, 어머니가 잠시 주소를 옮기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셨단다. 길 하나만 건너면 배정되는 학교가 달라지는데, 어머니는 길 건너편 학교가 마음에 드셨던 거다. 그 동네에 가본 동료의 말에 따르면, 길 건너편 동네는 재개발이 끝나 아주 번듯한 시가지가 들어선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J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이름하여 ‘위장전입’인데, 그런 구차한 짓을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J의 성품이 올곧았던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장관이라도 되려고?’ 그런 우스개 생각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김대중 정부 이후 인사청문회가 본격화한 이후로는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도 그런 자기 성찰을 하게 됐다. 고위 공직에 오를 경우 주민등록 이전 기록은 낱낱이 드러나게 될 터, 애당초 불씨를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시답지 않은 농담이 술자리에서 오가곤 했다. (진지하게 말해서 언론계에 종사하다 고위 관직으로 진출하는 건 썩 바람직하지 않은 진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J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어김없이 ‘자녀 진학을 위한 위장전입’이 등장하고, 또 어김없이 면죄부를 받게 될 판이다. 투기도 아니고 자녀 교육이 목적이었다니 참작할 만하다는 논리인데, 사실 전자보다 후자가 더 위험한 동기라고 생각한다(공직자로서 취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투기를 했다면 그건 한층 높은 형사처벌 대상으로 논외의 쟁점이 된다). 더 위험하다고 한 것은 그들이 고위 공직자 자리에 들어설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녀를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가르치고 싶어 불법을 마다한 이라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관심을 덜 가질 게 뻔하다. 이는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자기 것으로 여기는 민주사회의 평범한 ‘시민’ 자격에 못 미칠뿐더러, 정책을 책임지는 고위 공직자로서는 부정적 정책 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고위험군의 자질이다.
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불평등이 깊어질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은 점점 더 괴리된다. 풍족한 사람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또는 부유한 교외 지역의 공립학교에) 보내고, 그 결과 도심 공립학교에는 대안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만 남는다”고 미국의 교육 양극화 실태를 묘사했다. 그는 학교 이외에도 공원, 운동장, 시민회관 등 계층을 초월해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공시설이 줄어들면서 “민주시민 의식의 토대가 되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가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다행히 하버드·예일 등 유수 대학에서는 인종·계층 등에서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을 뽑음으로써 그들 상호간의 교류를 통해 다원화한 사회를 이끌 지도자의 자질을 키우려 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어떤 사람일까. 자기 아이들만큼은 차별화된 교육을 해 남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선점시키려 위장전입을 불사한 이들일까. 아니면 J 같은 사람일까. (높은 자리에 오를지 말지 아~무 생각 없이 위장전입에 투기에 온갖 지저분한 짓을 다 한 이들이나, 어차피 우리 사회는 기득권·불법 집단이 장기 집권할 테니 청문회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이런 식으로라도 자기 몫부터 챙기자고 덤벼든 이들은 논외로 치자.)
박봉에 힘겨운 생계를 꾸리면서도 칼날 같은 기자 정신을 놓지 않는 J는 장관감이다. 그리고 우리 주위엔 그런 J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현 정권이 장관감으로 골라잡은 이들은 유독 저 모양들이다. 그러니 부디 더 이상 ‘공정한 사회’니 ‘친서민’이니 말하지 말라. 구더기를 씹은 것처럼 역겹다.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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