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가 된 등록금.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1989년 가을, 한 학기를 마치면 졸업이었다. 집에 전화도 하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등록금을 보내셨다. 마지막 등록금이어서일까. 매번 어렵게 마련해 가까스로 등록을 하곤 했는데 맘이 든든하고 배가 불렀다. 안 먹어도 배부르단 얘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대학생활 내내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6월항쟁 등 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끈질기게 비리재단 이사장 퇴진 싸움을 계속했다. 학교 쪽은 아마 민주화·통일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예뻤을 거다. 수업 거부, 시험 거부, 단식투쟁에 이어 마침내 등록 거부까지 벌이게 됐다. 후배들에게 등록 거부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내가 속한 회화과의 등록 거부 참여는 그야말로 열정적이었다. 다른 과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등록금 거부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학교 쪽은 협박성 가정통신문을 부모님 앞으로 보내 회유에 나섰다. 등록금을 안 내면 제적시키겠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난 등록금을 내지 않고 졸업도 하지않겠다는 맘을 먹고 동참했다. 학교 쪽에서는 계속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교내 게시판에 전교 등록 현황을 알렸다. 우리 과는 당당하게 등록 거부 상위권에 있었다. 70~80%가 참여한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후배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선배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하며 당장 주먹이라도 날릴 자세를 하고 나타났다. “왜?” “기회주의자! 선배, 어떻게 등록할 수 있어요?” “뭔 소리야? 나, 안 했어. 내가 미쳤니? 등록금 내 통장에 있거든!” “제가 명단 봤는데 무슨 소리입니까?” 곧바로 본관 게시판을 찾았다. ‘예체능대 회화과 4학년 류우종’이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학교에서 장난치는 줄 알았다. 류우종도 냈는데 너네들 안 낼래? 그러나 학교 쪽에 확인해보니 진짜 등록금을 냈다는 것이다. 혹시 해서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학교에 가서 널 찾다 찾다 못 찾고, 등록금만 내고 왔다”고 했다. 형제들과 지내는 자취방이 있었으나 나는 4년 내내 학교 실기실에서 먹고 자며 보냈다. 부모님이 사는 시골은 그야말로 명절 때만 갔던 것 같다. 그땐 삐삐와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이다.
이를 어떻게 수습하나. 후배들에게 통장을 보여주고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다. 별수 없었다. 곧 65만원을 깨 막걸리를 푸짐하게 샀다. 다음해 ‘우스운’ 성적으로 무사히 졸업을 했다. 몇 해 전까지 아버지는 가족이 모이면 둘째아들이 등록금을 까먹은 얘길 하곤 했다. 1989년, 사립대학의 수업료와 기성회비 책정이 대학 자율에 맡겨졌다. 65만원은 20년 전 얘기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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