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자전거가 운하를 건너면?

등록 2010-07-20 21:46 수정 2020-05-03 04:26

학술대회 참석차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왔다. 일 때문에 오긴 했지만,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대로변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골목마다 숨어 있는 보석 같은 노천카페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호사를 부리기에 좋은 곳이 암스테르담이기 때문이다.
 
자전거·운하를 이식하면 암스테르담이 될까?

자전거가 운하를 건너면?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자전거가 운하를 건너면?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그러나 여행자의 심정으로 도시의 정서를 느끼기만 하기엔 암스테르담에서 목격하는 것들은 현실의 무게감이 강했다. 과거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이 내가 떠나온 곳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겹치면서 현재 경험하는 현실이 오히려 ‘초현실’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거리에 가득한 자전거 대열과 평화로운 운하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상징이라는 자전거와 운하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쟁점이 아닌가. 사실 여기에 와서 보면 이명박 정부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왜 자전거와 운하에 집착하는지를 알 만도 하다. 확실히 자전거와 운하만을 놓고 본다면, 환경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고 아름다운 관광자원을 확보할 훌륭한 방편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겉모습만 본다면, 당장이라도 자전거나 운하가 한국을 암스테르담처럼 만들어줄 것 같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이 엄연히 다르다는 건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안다. 이런 암스테르담의 장점을 한국과 서울이라는 ‘다른’ 조건으로 이식하는 데 필요한 것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나 오세훈 시장이 자전거길을 만들고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정착시키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서울 시내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 만들어진 자전거도로라는 것의 모양새를 보는 순간 그 모든 말이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한때 논란이 되었다가 흐지부지 사라져버린 자전거터널이라는 발상에서 알 수 있듯, 이 정책들에 담긴 생각은 기본적으로 ‘분리’다. 이런 분리 정책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이 아니라 레저 활동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운하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 국가가 몇백 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풍경을 몇 년 사이에 그대로 옮겨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무가내는 제쳐두더라도, 복지나 문화에 투자해도 모자랄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들이부어서 운하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수였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 사업들 역시 생활과 관광이라는 영역을 서로 분리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왔다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대자들에 따라서 이명박 정부나 오세훈 시장이 아무런 철학이나 심각한 고민 없이 입 발린 소리로 이런 정책들을 추진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이나 시장이라는 개인의 자질 문제로 간단하게 환원하기에는 복잡한 내력이 이런 ‘밀어붙이기’에 숨어 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뭔가 확신이 있고, 거기에 현실이 응답할 때, 집요한 추진력이 나오는 것이다.

유럽 도시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한국도 이런 도시들처럼 살기 좋은 환경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러기 아빠’라는 21세기형 한국의 부권 상징은 이런 열망이 파생시킨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정상 국가에 대한 요청이 교육 문제로 내려앉았을 때 가족 전체가 일시적 이산을 과감하게 결행하는 모습에서, 민족을 위해 영어로 수업해야 하고 금의환향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 하는 기이한 한국 사회의 역설을 읽어낼 수 있다.

 

분리와 배제의 주홍글씨, 블랙리스트

유럽에서 발견한 ‘좋은 것’을 한국에서도 실현하겠다는 생각을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좋은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선행해야 할 것이다. 유럽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함께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철학이다. 극단적 배제의 논리를 보여주는 블랙리스트와 권력다툼으로 시끄러운 한국 사회에서 언제쯤 공존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아직도 먼 이야기이기만 한 걸까.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비평가

*이택광 교수는 이번호로 ‘노 땡큐!’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