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3~14일 전국적으로 치러진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에서 시험을 안 본 학생이 769명으로 집계됐단다. 이 아이들을 위해 대체 프로그램을 시행한 학교와 교육청에 대해 불법 딱지가 붙고, 아이들이 시험을 보지 않도록 꼬드겼다는 혐의로 교사들을 윽박지르는 살벌한 분위기가 장맛비처럼 전국을 적시고 있다. 그래도 ‘최악의 파행’은 피했다고들 한다. 지난 6·2 선거에서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많이 당선돼서 걱정들이 많았나 보다. 그럼 된 것 아닌가. 왜 이토록 호들갑인가.
769명은 전체 응시 대상 190만여 명의 0.04%에 해당한다. 1만 명에 4명꼴이다.
기자는 총 22명인데, 회식을 하면 보통 서너 명이 빠진다. 13~18%에 해당한다. 취재 약속이 있거나, 집안 사정이 있거나, 편집장이 보기 싫거나, 갑자기 아프거나… 이유는 다종다기하다. 사람 사는 게 그렇다. 군복무 시절, 내무반장이 기합을 주기 위해 ‘집합’을 시켜도 내무반원 중 두세 명은 꼭 빠졌다. 내무반장보다 높은 사람이 불러서 일을 시키면 그 땀내 나는 ‘집합’에서 ‘열외’가 됐다(행정병의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5~10%에 해당한다. 전군을 대상으로 비상소집을 해도 결원이 0.04% 이하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군인도 사람이고, 사람 사는 데는 다종다기한 사정들이 있기 마련이다.
0.04%의 열외도 인정할 수 없다는 기세의 일제고사 강박증, 순도 100%의 획일화가 교육의 목표라도 된다는 듯한 태도에 섬뜩한 느낌이 든다. 1만 명에 4명꼴의 ‘다름’도 인정할 수 없다는 건 아무래도 전체주의국가, 그것도 완벽에 가까운 전체주의국가에서나 통할 논리이기 때문이다.
일제고사는 아이들의 학력이 고르게 향상되고 있는지 평가해 뒤처진 아이들을 부축하려는 뜻에서 치러지는 시험이다. 이런 취지에 따르자면 사실 모든 아이들에게 시험을 보라고 할 필요도 없다. 표본을 골라 시험을 치르게 해서 해당 지역이나 학교의 전반적 학력 실태를 점검하면 된다. 만약 대다수 학생들이 시험을 거부함으로써 이런 취지마저 살릴 수 없는 사태가 온다면 모를까, 0.04%에 기겁하는 지금의 사태는 차라리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미국에서는 학부모에게 시험 거부권은 물론 자녀의 시험 점수가 표본으로 선택되는 것을 거부할 권리까지 보장한 결과, 캘리포니아주 같은 곳에서는 거부권을 행사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아 시험 결과의 통계적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하지 않는가.
정작 눈에 쌍심지를 켜고 추궁해야 할 것은 충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났다는, 교감 선생님이 일제고사 시험감독을 하면서 답을 가르쳐줬다는 의혹 같은 게 아닐까. 일제고사 성적이 공개되는 만큼 여러 학교에서 어떻게든 시험 성적 높이기에 나섰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게 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해타산이 작동해 규칙을 어기는 건 분명 일탈이요, 교육의 차원에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반면 이해타산 없는 아이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택이 어른들이 부여한 틀을 벗어난 경우라면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볼 일이다. 0.04%에 우리가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마음, 우리가 모르는 큰 비밀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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