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부른다〉 한국방송 제공
나는야 텔레비전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테순이’. 그중에서도 드라마 좋아하기로 치면 대한민국에서 1등, 은 아닐지라도 우리 회사에서 1등은 된다고 ‘자부’한다. 은 16회 전부를 다섯 번도 넘게 봤고, 에서 미실이 숨을 거둔 날은 ‘닥본사’(닥치고 본방송 시청 사수)해야 했기에 미실의 팬인 취재원들로만 저녁 약속을 ‘세팅’해 술집에서 함께 봤더랬다. 머리 속에 온통 만 가득해 도저히 아무 일도 할 수 없던 어떤 날은 인터넷으로 몰래 보며 훌쩍이다 앞자리 I와 눈이 마주쳐 민망해 죽을 뻔한 적도 있다.
얼마 전 종영한 도 제법 챙겨보던 드라마였다. 제목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환상적인 김상경과 환하게 웃는 모습만 봐도 유쾌해지는 이수경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않던 류진의 ‘망가진’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런데 마지막 회를 보다가 문득 소름이 끼쳤다.
이 드라마는 국가 정보기관 직원들이, 류진이 마약 밀수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품고 그를 비밀리에 수사해 성공을 거둔다는 얘기다. 류진의 회사에 위장 취업한 이수경은 그의 사무실에 몰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하고, 매일 송수신기와 카메라를 장착한 채 출근해 류진의 동태를 놓고 김상경 등과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컴퓨터와 전화 도청, 미행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증거’를 찾으려고 류진의 집에 잠입해 곳곳을 뒤지기도 한다. 허걱! 국가기관의 민간인 불법 사찰이 바로 이 드라마의 줄거리였던 거다.
두어 달 동안 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내내 이수경의 비밀이 탄로날까 조마조마하기만 했지, 이게 얼마나 엽기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인지 생각조차 못했다. 마지막 회를 볼 무렵 마침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김종익씨 불법 사찰을 취재해 기사를 쓰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끝까지 이 드라마를 재밌었다고만 기억했을지 모른다. 더구나 불법 사찰 사실을 알아차린 정보기관에서 정직 등의 징계를 받고도 또다시 국회의사당을 가리키며 ‘첩보’를 입수했으니 한 번 더 일을 만들어보자며 등장인물들이 의기투합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통쾌함까지 느꼈을지 모른다.
이런 유의 첩보·스릴러물이 넘쳐나기에 ‘인권 감수성’이 무뎌진 걸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뭐가 됐든 창피했다. 뻔히 보이는 황당한 폭력에도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지 못하는 미련함이 너무도 창피했다. 이런 미련함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을 만드는 건 아닐까?
(김상경 오빠, 이수경 언니, 앞으론 이런 드라마에 출연하지 마세요~.)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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