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불행한 일은 일이 터진 뒤 슬퍼하기보다 미연에 막아내는 게 좋다. 일이 터진 뒤 분노를 쏟아부을 대상을 찾아내 복수하는 것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비책을 두텁게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이런 일들이다.
천안함이 침몰했다. 군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침몰’이라고 당당하게 발표했다. 그런데 민·군 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할 때 제시한 자료들과 내놓은 설명들이 하나, 둘, 셋, 넷 거짓으로 밝혀지고 있다. 군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에 감탄하게 만들었던 실물 크기 어뢰 설계도는 사고 해역에서 건져냈다는 어뢰와 다른 기종의 설계도였다. 군은 실무자의 착오였다는 말을 해명이랍시고 아주 뻔뻔한 표정으로 내뱉는다. 발표 광경을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 입장에서는 사기극에 당한 느낌인데도 말이다. 어뢰가 북한제라는 결론을 뒷받침했던 북한의 무기소개책자도 실은 없었다. 섬광(물기둥)을 봤다는 초병의 진술도 왜곡됐다. 천안함 선체와 어뢰 부품의 흡착 물질을 분석한 결과도 ‘과학적 반박’에 부딪히자 힘을 잃었다. 이렇게 되면 천안함의 침몰 원인 자체가 바다안개 속에 갇힌 형국이다. 군은 객관적인 공개 실험을 하자는 과학자들의 제안도 일축한다. 이렇게 원인 규명부터 미스터리에 빠진다면 어떻게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정부는 유엔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데만 힘을 쏟고 있다. 그마저도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국제정치의 복잡다단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 문제를 유엔으로 끌고 갔는지도 의문스럽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노력이 제2의 천안함 사건을 막을 수나 있느냐는 의문이다. 정부의 결론대로 북한의 공격에 의한 침몰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또 다른 공격을 사전에 막을 대응 방법은 없어 보인다. 정부는 앞으로 서해상이 안전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어떤 근거도 제시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을 자극해 또 다른 도발을 부를 수 있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이나 대북 심리전 카드만 꺼내든다. 한반도 평화 정착이 가장 확실한 재발 방지책이라는 데는 귀를 닫는다. 그리고 만약에 천안함이 북한 공격이 아닌 다른 이유로 침몰했다면… 재발 방지의 ‘재’자도 우리는 꺼내지 않은 셈이 된다.
어린이들이 성범죄에 희생당하고 있다. 그런 일이 터질 때마다 사형 집행 부활이 거론된다. ‘화학적 거세’라는 살벌한 처방이 법률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잔인한 범죄자를 아무리 잔인하게 처벌해도 범죄는 계속돼왔다. 그러니 아이를 둔 부모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문제는 아이들이 혼자 있을 때 성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점이다. 맞벌이로 바쁜 저소득층 부모들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애가 탄다. 이런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 지역아동센터(공부방)다. 아직 공부방이 없는 저소득층 동네도 부지기수인데, 정부는 오히려 공부방 지원 예산을 깎았다.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겁을 주고 그래도 범죄를 저지르면 붙잡아 화학적으로 거세를 하고 그대로 또 범죄자가 나오면 또 처벌하는 무한대의 순환이 나을까, 아니면 아이들이 홀로 방치되지 않도록 미리 잘 돌보는 방법이 나을까. 답은 너무나 뻔한데, 정부는 애써 다른 답을 찾고 있다.
정부가 사전 예방에 철저한 분야도 있기는 하다. 경찰은 오는 2014년까지 방송·조명용 다목적 차량, 특수 차벽차량, 영상채증 장비, 진동감지형 무전기 등 야간집회 관리 장비를 보강하는 데 564억원을 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7월1일부터 야간집회가 허용된 데 따른 대비 태세다. 그런 발빠른 대응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안보 분야에서나 보여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돈이 있으면 공부방 지원에나 보태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어쨌든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이 글의 취지에 맞는 행보가 아니냐고 묻고 싶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맞다. 하지만 전제가 하나 틀렸다. 야간집회는 미연에 꼭 막아야 할 불행한 일이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불행하다면, 사람들이 야간에까지 집회에 나와 무언가 토로하고 싶도록 만드는 상황이 불행한 것이다. 정부의 대비 태세는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여 그런 상황을 막는 데 집중돼야 한다. 역시 정부는 헛다리를 짚고 있다.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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