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의 하나로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을 꼽는다. 을 쓴 미국 텍사스주립대 역사학과 르박 교수에 따르면, 공식적 재판기록상으로 확인된 처형만 6만 명 이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녀재판에서의 처형 비율이 48% 정도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마녀’에게도 항변의 기회를 주었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살아남았다는 소리다.
하지만 항변 기회도 없는 처형 100%의 마녀사냥이 있다. 바로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21세기판 마녀사냥’이 그것이다.
최근 벌어진 ‘패륜녀’ 사건에도 누리꾼의 일방적 공격만 있었다. 개인 신상은 물론 문제가 된 대화 내용까지 녹음돼 인터넷상에 뿌려졌다. 어머니뻘 되는 환경미화용역 직원에게 반말과 욕설을 한 것은 틀림없는 잘못이다. 하지만 그런 대화가 녹음되는 동안 주변의 누구도 그 상황을 말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철없는 대학생의 욕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방관’과 ‘몰래 녹음’이다.
‘몰결남’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한 남자의 연애담을 두고 벌인 누리꾼의 ‘사냥’은 도가 지나쳤다. 사건을 요약하면 한 남자가 세 여자를 동시에 사귀었고, 나머지 둘은 모른 채 다른 한 명과 몰래 결혼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도 확인 안 된 이 ‘치정극’은 일파만파로 퍼지며 한 남성을 ‘매장’시켰다. 포털에서는 아직도 실명이 ‘유사검색어’로 뜬다. 이 남성 이름의 검색 결과로 나오는 ‘사건과 무관한’ 한 자동차 판매상은 어떤 상황일까.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이정국 기자 한겨레 오피니언넷부문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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