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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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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진 낭만

등록 2010-05-19 14:25 수정 2020-05-03 04:26
찢겨진 낭만.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찢겨진 낭만.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택배 왔습니다.”

빠르게 현관문을 열면서 수고로웠을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넨다.

“무거우셨죠. 고맙습니다.”

괜찮다 하면서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든 물 한 컵을 다 마시지도 못한 채 택배 아저씨는 급히 등을 돌린다. 낯익은 포장에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주소와 이름을 쓴 글씨체가 정겹다. 그만그만하게 큰 탈 없이 잘 생활하고 있노라 하는 안부와 시골의 공기가 쌀봉지를 뜯는 내내 함께 전해진다.

한톨 한톨이 소중한 경험

시골살이 하는 지인이 벼농사를 짓는다고 했을 때 두 번 생각도 않고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기 엉덩이처럼 탱글탱글하고 차진 쌀을 그때그때 도정해서 보내주는 농사꾼을 알고 있다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참 든든하다. 1980년대 치열하게 노동조합과 문화패 활동을 하던 그들 내외가 경북 문경이라는 곳에 자리잡게 된 과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무에 그리 바빴는지 각자의 방식으로 정신없이 하루하루 살기 급급한 이유도 있거니와 자연스레 기회가 닿아 저절로 알게 된다면 모를까 시시콜콜 개인사를 묻거나 관심을 표하지 않는 내 덤덤한 성격 탓도 있다. 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모임에 어쩌다 참석한 자리에서, 아 그렇게들 사는구나, 농사꾼이 된 모습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 정착해 살면서 촌에 사는 부모·형제가 보내주는 농산물로 식탁을 꾸리는 친구나 동료들을 꽤 보았다. 고향에 다녀올 때면 그네들은 온갖 양념거리와 저장식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기 예사였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는 먼 얘기여서 산지에서 담근 짭짜름한 갖가지 장아찌와 곰삭은 갓김치 등 군침 도는 맛을 늘 부러워했다. 그러다 톡 터질 듯 힘있게 영근 쌀알을 택배로 받게 되니 시중보다 더한 가격에도 제값을 치렀다는 자족과 믿을 수 있는 쌀을 얻은 풍요로움을 느낀다. 더불어 알곡을 거둔 손길마다 감사함이 절로 생겨나는 것은 물론 한톨 한톨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게 되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 노무현, 그가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가려 결정했는지 다 알 수는 없다. 과정이야 어떠했든 고향과 쌀, 촌부로 살았던 부모·형제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은 이성이나 논리가 아닌 향수와 같은 정서와 감성으로 그의 선택을 수긍하고 존중하며 지지했다. 농부가 열심히 일군 농산물을 전해 받는 푸근하고 고마운 풍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한 공감이었을 것이다. 실현 가능 여부와 상관없이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은 기회만 된다면, 퇴직 뒤에는, 노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빼다 박은 것처럼 다 똑같은 신물 나는 도시 생활에서, 각박함과 불안에 치이는 직장 생활에서 나와 다르게 미래를 설계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신선한 기쁨이다. 찌든 도시의 삶을 어쩔 수 없이 매일 반복하는 이들에게 지방의 어디쯤에 들를 곳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위안이다.

그토록 낮은 소통 방식마저도

사람 노무현, 그가 나누려 했던 것은 원대한 무엇이 아닌 작은 그 정서의 씨앗들이었으리라. 손수 일군 땀이 묻은 수확물을 나누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소통의 기쁨을 그는 익히 알았고 그래서 꿈꾸었다. 노무현을 추종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많은 이들이 그의 부재를 슬퍼하는 이유는 그토록 낮은 소통 방식조차 허락되지 못한 야멸친 현실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구석진 촌 봉하에서 보낼 고향의 쌀알만 한 감성과 낭만조차 무참히 깨져버린 현실에 대한 절망과 허허로움이다. 작고 낮았으므로, 찢어진 그 낭만의 무참함은 더욱 깊고 진하다.

신수원 ‘손바닥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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