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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 물먹다

등록 2010-04-06 15:32 수정 2020-05-03 04:26
천안호 침몰사고 5일째인 30일 UDT전우회 회원들이 어선을 이용해 사고해역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안호 침몰사고 5일째인 30일 UDT전우회 회원들이 어선을 이용해 사고해역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물먹다.

기자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

술 마실 배도 충분치 않아 그런 건 아니라는 게 중평.

‘낙종했다’를 속되게 빗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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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 뉴스거리를 놓쳤거나 어쨌건 속았을 때 쓴다.

종일 삽질했더니 남의 밭이고, 그래서 노임 한 푼 받지 못한 청년이

“물이라도 먹겠다” 외친 데서 유래했다는 게 부글부글의 주장.

낙종했다, 는 살다 보면 이것저것 먹을 수도 있다는 겸양의 말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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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먹었다, 는 결국 배가 터지고 말 것이라는 자학의 말투다.

국방부, 물먹다.

해군 대신 민간 어선이 침몰한 천안함을 찾은 건 물먹은 축에도 안 낀다는 게 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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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33분 이전의 (침몰 장면이 녹화된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은 없었다”고 하다가

이틀 뒤 전 시간대 분량을 추가 공개하며 “(영상) 앞부분의 존재를 몰랐다”고는 해야

물 좀 먹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게 부글부글의 주장.

없었다, 는 살다 보면 이것저것 감출 수도 있다는 뻔뻔의 말투이지만

몰랐다, 는 “가감 없이 진상을 공개하라”던 이명박 대통령까지 물먹이려는 건 아니었다는 자복의 말투.

청와대는 화답하여 “초기 대응 잘했다” 말을 한다.

결국 국민만 물먹다.

사건 발생 꼬박 일주일인 3월27일

세계 5위의 군사대국에서

구조된 생명 전무하고, 밝혀진 진실 거의 없어 그런 건 아니라는 게 중평.

“침몰 전후 북 잠수정이 움직였다” “함장 ‘피격당했다’ 첫 보고” 따위 보수 언론의 마구잡이식 보도도 물먹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보아야 할 뿐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리 될 수 있다. 높은 파도에 배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과정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부러질 수 있다”는 이 대통령까지 물먹이려는 건 아니라는 게 부글부글의 주장.

다만 “배를 만들어봐서 안다”는 실용 정부의 말투 대신

“내가 군대를 갔다와서 아는데” “내가 자식을 군에 보내봐서 아는데”로 시작해, 왜 지금 실종자 가족과 국민은 절규하는지 공감해주는 감성 정부의 말투가 아쉽다는 게 부글부글의 주장.

그를 듣지 못한 이들, 자꾸 헛배만 불러온다. 물 먹은 건가.

그사이 물은 장병들을 삼킨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의 장례식장에서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군 장성과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일본이 국가검정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전 종에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새긴 지도를 실을 때도

물은 장병들을 누른다.

적막, 한기, 질식, 아주 깊고 낮은 외로움으로 삼킨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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