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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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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경은 귀신이다

등록 2010-03-30 16:33 수정 2020-05-03 04:26

2009년 한국이 낳은 문제작 이 끝났다. 종영은 되었지만, 여전히 ‘예상 밖’ 결말로 여러 가지 논란이 일어나고, 결말을 둘러싼 갖가지 ‘음모이론’이 횡행하고 있다. 그동안 이 누렸던 인기를 실감하기 어렵지 않다. 이 드라마에 대한 호평들은 대체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지점에서 합의점을 찾는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경의 대사는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현실 인식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준다.

‘몫 없는 자’의 시선

신세경은 귀신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신세경은 귀신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신분의 사다리’를 기어오르려던 세경은 드라마에서 중요한 시선을 제공한다. 이 시선은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지워버린 ‘몫 없는 자’의 것이다.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 세경의 사랑은 비관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과장 없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지탱하는 이야기 구조가 세경이라는 ‘발견된 존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은 세경에서 시작해서 세경에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병욱 PD는 어차피 을 ‘허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허구를 떠받치는 것은 흥미롭게도 세경이라는 과잉의 존재다. 부르주아의 세계로 갑자기 진입한 ‘전자본주의적 존재’인 세경은 완벽한 타자의 시선이었다. 이 타자는 자본주의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이전의 한국 사회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과거다. 이 과거가 현재로 귀환한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반복강박적인 과잉을 전제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식모살이라는 위악적 설정이 바로 이런 과잉을 드러낸다. 반복강박은 기본적으로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것을 다시 반복해서 해결하려는 충동의 산물임을 감안한다면, 이 드라마의 설정은 확실히 의도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세경이라는 과잉의 기입을 필요로 한 까닭이 밝혀지는 지점에서 세경의 의미를 무화해버린다. 세경의 임무는 그 지점에서 끝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경의 진입으로 시작되었던 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처럼 소멸해버린다. 결국 남은 것은 드라마에 감정이입하며 동일화의 정서에 휩싸였던 시청자의 혼란이다. 충격이 대단했는지, 결말에 대한 괴담이 떠돌아다닐 지경이다. 세경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귀신이었다거나, 죽음에 대한 복선이 드라마 시작부터 깔려 있었다는 추측들은 이런 혼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경이라는 타자의 시선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말은 파격적이긴 하지만 이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랑을 이루고자 ‘고백’했던 세경의 죽음은 ‘사랑 없음’이라는 현실을 강렬하게 환기한다. 세경의 눈에 비친 부르주아의 세계는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정작 그토록 갈구하는 사랑이 없는 곳이다. 순재와 자옥은 서로 사랑하기보다 ‘소유’하기를 원할 뿐이고, 지훈과 정음도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다른 것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하고자 할 뿐이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부르주아 세계의 구성원이다. 오직 세경만이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르시시스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분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남을 짓밟아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는 세경은 강박적 부르주아의 세계에서 다른 욕망을 가진 주체다.

‘지붕킥’이 남기고 간 2010년의 현실

세경을 죽인 것은 사랑 따위는 필요 없는 냉정한 ‘자기계발’의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초식남’이니 ‘건어물녀’니 하는 기표들이 말해주듯이, 치열한 ‘스펙 쌓기 경쟁’에서 사랑은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하다. 이런 결말에 대한 시청자의 불편함은 외설적 현실이 솔직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신세경 귀신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은 처음부터 ‘사랑의 매개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김병욱이라는 집요한 회의주의자는 이런 현실을 내버려두고 그럴듯한 해피엔딩으로 진실을 위장하는 허위의식에 만족하지 못한 것 같다. 그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드라마의 효과는 현실을 환기하는 그 지점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현실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없는 2010년을 산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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