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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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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타 골든벨

등록 2009-10-21 10:35 수정 2020-05-03 04:25

새벽까지 전쟁 같은 마감을 한 뒤 파김치가 되는 토요일, 오후 늦게 나른한 몸과 마음에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이 한국방송 이다. ‘레드 기획’에서도 다룬 바 있는 니콜의 4차원 한글 퀴즈보다는 그 전에 김구라씨의 아들 동현이가 진행하던 ‘눈높이를 맞춰라’ 오리지널판이 더 좋기는 하지만, 은 요즘 새 코너도 선보이며 재미를 잃지 않고 있다. 소파에 기대어 왁자지껄한 스타들의 난장을 지켜보다 어느새 스르르, 모자란 잠의 유혹에 빠지기도 하는 행복한 토요일 오후.
오늘은 ‘대한민국 스타 골든벨’이란다. 무슨 특별 편성인가?
‘스’ 라인에는 지난해 깜짝 데뷔해 온 나라를 들었다 놓은 뒤 지금은 잠시 활동을 쉬고 있는 10대 아이돌그룹 ‘촛불소녀시대’가 자리했다. 시청자를 위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며 를 잠시 공연해준다. 여전히 풋풋하다. ‘타’ 라인에는 ‘미네르바 박’과 ‘경방고수’가 함께했다. 지난해 말 사이버 공간에서 정부 당국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며 절정의 인기를 누린 이들은 아직 죽지 않은 입담으로 좌중에 웃음을 준다. ‘골’ 라인의 손님은 ‘M본부’에서 활약을 펼치는 인기스타 팀. 시청자의 궁금증과 정의감을 통쾌하게 만족시켜줌으로써 정통 시사 PD가 예능 프로에서도 통한다는 걸 보여준다. ‘든’ 라인에는 살아 있는 시민운동의 역사 박원순 변호사와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지존 손석희 교수 등 중량감 있는 스타들이 포진했다.
세대와 성별, 직군은 다양하지만 이렇게 입심 좋고 대중의 주목을 받는 스타들이 웃고 떠들고 화내고 소리치는 난장이 의 맛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맛이다. 서로 어긋나는 생각을 터놓고 얘기하고, 그래서 서로 이해하고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민주주의는 한바탕 시끌벅적 유쾌한 토크쇼다.
그런 토크쇼의 사회는 역시 김제동이 맡아야 제맛이다. 재치와 유머감각은 기본. 스타들 개개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토크의 흐름을 막힘 없이 뚫어주는 진행이 일품이다.
그런데 ‘벨’ 라인이 문제다. 박정희 전 대통령, ,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흘러간 스타, 아니 흘러간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찬 스타들이 눌러앉았다. 평소 이 자리를 채우던 나이 지긋한 또는 ‘자학’ 캐릭터의 스타들은 자기를 희생해가며 웃음이라도 줬는데, 이번 ‘벨’ 라인 구성은 영 아니다. ‘스타’와 ‘골든’ 라인의 눈부신 스타들이 뿜어내는 열정과 희망에 심기를 상한 듯 구겨진 표정으로 도끼눈을 뜨고 앉아 있다. 난데없이 사회자를 탓하며 ‘김제동 퇴출’을 외치는 이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에 초대된 손님들은 ‘벨’ 라인을 제외하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민주주의의 토크쇼에서 한 번씩 설화를 당한 이들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벨’ 라인의 독한 눈초리가 거세지면서 다른 라인의 웃음소리는 잦아들었다.
끝내 사회자 즉석 교체의 살풍경 속에 최종 골든벨 퀴즈 도전자는 이명박 대통령. 문제가 나온다.
“우리나라 헌법 제21조가 보장하고 있는 권리이자,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제19조와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19조가 천명한 인간의 대표적 권리인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가 되는 권리로서,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제1조에 이를 규정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쓴 답안은 ‘친서민 중도실용??’
막판의 허무 개그가 약간의 억지 재미를 줬지만, 모자란 잠마저도 놀라 달아날 만큼 엽기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게 꿈인지, 생신지…. 마저 이런 식이면, 한국방송 안 본다.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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