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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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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문청’을 초대합니다

등록 2009-09-09 10:14 수정 2020-05-03 04:25

후배는 물었다. “왜 선배들이 읽고 쓰는 시에는 짱돌, 불, 피 같은 단어들이 많나요?” 매캐한 최루가스 기운이 가시지 않은 교정에서 선배는 ‘문학’과 ‘시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암울한 ‘시대’를 앞세워 아름다운 ‘문학’을 탄핵하는 그 장광설은 간혹 아귀가 맞지 않았다. 여고생 티를 채 벗지 못한 신입생 후배처럼 선배도, 되도록이면 마음 깊숙한 곳에, 아름다운 문학에 대한 연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문청’들은 그렇게 자신의 문학을 버리고 시대의 문학을 택해야 했다. 대학의 문학서클은 대개가 문학을 동경하는 신입생들을 받아서 시대를 고민하는 선배로 키우는 곳이었다. 물론 앞서서 동시대의 문제에 천착하고 이를 아름답게 형상화하는 문인도 많았다. 그들과 문청들은 때로 교감하고 때로 다투며 한 시절의 문학적 풍경을 빚어냈다.
지금은 어떤가. 세상은 다시 그 시절로 회귀한 듯 암울한데, 문학은 그때보다 좀더 원색의 옷을 걸치고 있는 듯하다. 용산 참사를 다룬 부조리극 의 연출자 기국서씨의 인터뷰(54~55쪽 참조) 내용이 새삼스럽다. “연극은 시대상을 반영해야 한다. 요즘 그렇지 않은 게 너무 많다. 괜히 웃기려고만 하기도 하고. 이런 일이 있으면 책도 영화도 현실과 연결해야 하지 않나? 그나마 연극은 제작이 (상대적으로) 쉬우니까….” 제작이 상대적으로 쉬운 걸로 치면 소설도 못지않을 터다.
다행스런 것은 요즘 소설 쓰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38~43쪽 참조). 굳이 전업 작가를 꿈꾸지 않더라도, 글쓰기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시대와 호흡하려는 평범한 글쟁이들이다. 이들이 시대와 삶을 파고드는 성취로 새로운 ‘소설의 시대’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이 문학작품 공모에 나선 까닭이다. 그들의 건투에 박수를 보내는 뜻에서, 손바닥 장(掌)자의 장편소설을 공모하는 뜻에서, 세상과 때로 악수하고 때로 뺨을 후려치는 문학을 기다리는 뜻에서 ‘손바닥 문학상’을 공모한다(44쪽 참조). 더 많은 이들에게 열려 있고 시대와 숨차게 부딪치는 공모전을 지향한다.
다음과 같은 분들의 응모를 특별히 권장하는 바이다. 서울 용산의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 진입했던 경찰특공대원,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투입됐던 구사대원, 국가보안법 혐의자의 인터넷 서핑과 전자우편을 실시간 ‘패킷 감청’했던 국가정보원 요원, 과거 남산에서 운동권 학생을 고문했던 경험이 있는 전직 안기부 직원, 떡값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검사, 삼성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던 직원, 보노짓 후세인에게 인종차별적 욕설을 했던 아저씨, 현직 청와대 관계자, 여성 연예인에게 성상납을 강요했던 유력 인사들…. 문학을 통해 눈을 씻고, 마음 깊은 곳의 목소리를 들어보았으면 한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삶을 허투루 대하지 않을 것 같다. 눈앞의 이익이나 값싼 욕망에 사로잡혀 인생에 오점을 찍는 막바지 선택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늘 선명하고 묵직한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준비하며 살 것 같다.
후배도 그런 열정을 지녔음이 틀림없다. 군대에 갔다 와서 남들처럼 회사에 취직하고 간혹 문청 시절을 추억하며 살고 있는 선배는 후배가 오래전 공장에 들어갔고 아직도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가끔씩 듣고 있다. ‘손바닥 문학상’ 응모작 중에서 그 낯익은 이름을 보았으면 좋겠다.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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