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가 단식투쟁을 벌일 때 신문은 그의 이름 석 자 대신 ‘한 재야 인사’라고 썼다. DJ가 망명에서 귀국할 때 방송은 그의 얼굴 대신 뒤통수만 내보냈다.
‘1노 3김’이 할거하며 대선을 향해 치닫던 1987년 가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양김 초청 시국토론회가 고려대에서 열렸다. 먼저 연단에 오른 YS의 연설은 청중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중간중간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뒤늦게 주최 쪽의 ‘불순한’ 의도를 눈치 챈 YS는 서둘러 연설을 끝내고 뒷문으로 퇴각했다. 뒤이어 등장한 DJ는 특유의 문답법으로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연설을 마친 그는 ‘준비된’ 유세차량을 타고 “김대중”을 연호하는 학생들에 둘러싸인 채 정문을 나섰다. “계속 전진”을 외치는 군중을 무마하며 DJ는 서울 안암동 로터리 부근에서 ‘회군’한다.
고무된 DJ 진영은 고려대 집회가 “대중적 지지의 우열을 가른 중대한 사건”이라며 입소문에 적극 나선다. 하지만 고려대 집회는 다음날 신문의 정치면 가십난에 처박혔다. 방송은 9시 뉴스 끄트머리에 단신으로 처리했는데, 뜻밖에도 “우∼” 하는 야유 소리와 함께 DJ가 클로즈업되는 화면이었다. 수차례 박수에 도취된 DJ가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하며 오버하다가 받은 유일한 야유였다.
당시 선거 전술의 차이로 날카롭게 맞서던 ‘비지’(비판적 지지)와 ‘후단’(후보단일화)도 따지고 보면 DJ를 중심에 놓은 사고였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민주 진영과 생각이 더 가까운 DJ를 밀어주자는 게 ‘비지’였다면, 민주 진영의 말발이 더 먹히는 DJ를 끌어내리자는 게 ‘후단’이었다. 물론 ‘독자 후보론’은 둘 다 민중의 순결을 보수 정치권에 팔아먹는 ‘매혈 행위’라고 비난했다. 결국 단일화는 실패했고 대선 패배는 민주 진영의 분열을 증폭시켰다. 이때부터 YS는 “평민당이 천추의 한”이라고 되뇐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YS의 3당 야합과 우향우는 DJ가 재촉한 측면이 있다.
그랬던 YS가 지금 ‘화해’를 말한다. 나는 여기에서 YS의 또 다른 ‘야합’을 기대해본다. 그가 죽음의 단식투쟁을 벌인 시발점이었던 5·18 정신을 기억하며 ‘민주투사’ YS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다. 한낱 몽상이라 비웃을지 모르지만 승부사 YS만이 할 수 있는 정반합이다. ‘3김 시대’를 추억할 의도는 없다. 한 시대가 이왕이면 그렇게 저물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뒤늦게 YS보다 더 허탈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반DJ·반노무현’만으로 생계를 꾸려온 세력과 논객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이제 정신적 실업자가 되었다. 물론 ‘제2의 DJ’를 기획해 영업을 재개하겠지만 예전 같은 호황을 구가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한광덕 기자 blog.hani.co.kr/ip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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