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돼지 삼형제가 독립을 하게 되었다. 이들의 첫 번째 과업은 집짓기. 첫째는 짚으로 1시간 만에 집을 지었다. 둘째는 나무로 2시간 만에 집을 지었다. 셋째는 첫째·둘째가 집을 다 짓도록 여태 땅만 파고 있었다.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벽돌집. 돌연 늑대가 아기 돼지 삼형제를 공격해온다. 짚으로 만든 첫째의 집은 한 번 훅 부니까 싹 날아가버리고, 나무로 만든 둘째의 집도 좀더 힘을 주어 불어버리니 다 날아가버렸다. 급히 셋째네 집으로 대피. 묵묵히 공들여 지은 벽돌집은 늑대의 공격에도 안전했다. 이들이 그 뒤 어떻게 힘을 모아 늑대를 물리쳤는지는 너무나 다양한 분파들이 존재하고, 여기서는 별로 중요한 부분도 아니므로 생략.
왜 견고한 집만 좋은 집일까
이 이야기의 교훈은? 공든 탑이 무너지랴. 원칙을 지켜 사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라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더디 가도 제대로 가기’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왜 하필 아기 돼지들이 지은 집을 평가하는 유일한 가치 기준이 그 ‘견고함’에 있을까?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이야기가 구전의 세월을 견디고 벽돌집 문화권도 아닌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세계 명작 시리즈의 하나로 굳건히 자리잡은 배경은 ‘좋은 집=견고한 집’이라는 생각에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인류는 1년 내내 비가 오는 열대우림부터 1년에 200mm도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까지, 뜨거운 사바나에서 차가운 툰드라까지, 정말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살아가는 모습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지구별 어떤 곳에서는 ‘견고하지 않은 집’을 짓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 유목민들의 경우에는 빠르게 해체하고 재조립할 수 있는 집이야말로 좋은 집이다. 만약 이들이 견고한 벽돌집을 짓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으리라.
덥고 습기가 많은 지역의 사람들은 흔히 나무로 집을 짓는다. 통나무만이 아니라 나뭇가지나 나뭇잎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견고함이 아니라 더위와 습기, 야생동물의 습격을 이겨내는 것이다. 남태평양의 어떤 사람들은 바다 위에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원두막 같은 집을 짓는다. 이들은 육지에 오면 ‘땅멀미’를 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볏짚을 이용해 초가집을 지어왔다. 견고함은 벽돌집만 못했을지 몰라도 초가지붕은 다량의 공기층을 형성해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데 유리하다. 게다가 해마다 새로 지붕 갈이를 하니 해로운 곤충들이 장기적으로 서식하는 것도 막아주고, 필요한 재료는 벼농사를 짓기만 하면 공짜로 얻을 수 있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오직 견고함으로 아기 돼지들이 지은 집을 평가해 첫째와 둘째 돼지를 게으름뱅이로 낙인찍는 것에는 무리가 따르지 않겠는가. 아마도 이 이야기는 서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이리라. 서유럽인들의 생각에 나무로 집을 짓거나 짚으로 집을 짓는 것은 게으름의 산물이다. 그 따위 엉성한 집을 짓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태평양 등지에 사는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고, 이들의 가난 혹은 ‘비문명’은 게으름 탓이 된다. 이후 이어지는 식민지 지배의 살벌한 역사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공정한 세계 명작, 공존의 길필리핀, 몽골, 베트남, 방글라데시… 다양한 이주민들이 속속 우리나라에 다양한 형태로 정착해가고 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교실에서 이주민의 자녀를 만나면 나는 그 아이들과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견고함’이 지구별 어떤 지역에서 집이 갖추어야 할 미덕이라면, 쉽게 허물 수 있는 집이 미덕인 지역도 많이 있음을 깨우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 어떤 견고함도 적을 막아내기에는 충분치 않다. 이번에는 셋째 돼지의 집이 늑대를 막아냈지만, 더 강한 적이 나타난다면? 진실로 적을 막아낼 수 있는 건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며, 적이 될 수 있는 자들과도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구별의 다양한 사람살이를 보여주는 ‘공정한 세계 명작’은 우리 아이들이 공존의 길을 찾는 걸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박현희 서울 구일고 사회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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