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사오정’이라는 전설의 인물이 계셨다. 그는 일찍이 살아 들어오는 모든 언어를 제 입맛대로 씹어 삼키고 날벌레로 바꿔 내뱉으며, 찰나에 상대의 ‘어이’를 적출해내는 무공을 지니셨다. 세상의 분노는 허탈이 되고 정의 또한 생트집처럼 무색해지는 것이, 개가 달을 보고 컹컹거리는 일처럼 낯설 게 없었다. 중원의 고수들은 속절없이 무너졌으니, 그렇게 죽어나간 자를 검시해보면 하나같이 가슴속 소중히 간직해오던 ‘어이’를 빼앗긴 채, 진정 새까맣게 타죽었더라는 전설만 바람 따라 전해졌다. 여전히 온라인에 전설로 도는 그분 스타일이 이러하셨다.
선생님이 들어온다. 쓰레기가 많다. 주번을 부른다.
사오정이 나온다. “교실이 더럽다”며 몽둥이로 맞는다.
뒤늦게 급우가 와 사오정은 주번이 아니라고 한다.
선생님이 매질을 멈추고 묻는다. “왜 네가 나온 것이냐?”
사오정이 말한다. “전 9번인데요.”
여기서도 물론 피해자는 ‘어이’를 빼앗긴 선생님이다. 게다가 이 교사는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찍혀 파면까지 당한 것으로 ‘부글부글’ 추적 결과 확인됐다.
‘어이’의 상실감은 이성과 합리가 지배하는 21세기에 더 커진다. 어이는 당초 ‘어처구니’의 다른 말이다. 맷돌의 손잡이를 뜻한다. 제 손으로 콩 갈 이 없는 2009년 7월 마지막 주, 도처에 ‘어처구니 도난 사건’ 차고 넘쳤다.
1. 영등포경찰서 접수사건: 언론 관련법 통과를 이끌었던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어이 도난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다. 이 부의장은 의결정족수가 차지 않았는데 투표를 종료했다가 과감히 재투표를 시도했다. 통과시켰다고 ‘여론 매질’ 당하고,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했다며 또 매질당한 배경이다. 하지만 저간엔 ‘사오정의 주술’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국회사무처 이종후 의사국장은 “투표를 종용하시라고 말했는데, ‘투표를 종료합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최초 ‘어이 도난 피해자’는 이 의사국장이지만, 가해자와 함께 재투표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나저나 ‘종용’을 ‘종료’로 삼켜 뱉은 무공은 사오정도 시도 못한 것이다.
2. 강남경찰서 접수사건: 지난 6월 ‘알몸 뉴스’를 시작하며 큰 관심을 불러모았던 ‘네이키드 뉴스’ 경영진이 여성 앵커들의 옷만 벗겨놓고 날랐다. 이달 월급도 주지 않고, 서울 역삼동 본사까지 말끔히 정리한 채 출국했다. 한 앵커는 “급여일 하루 전인 7월24일부터 본사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며 “27일 본사에 갔더니 편집기 등 값나가는 물건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사라졌다”다. ‘아무것도 숨길 게 없는 뉴스’(이 회사 슬로건)는 사실 ‘아무것도 줄 게 없는 뉴스’였다. 가족과의 불화 등을 무릅쓰며 카메라 앞에 섰던 여성 앵커들은 울었다. 유료회원 3만여 명도 어이를 잃었다.
3. 종로경찰서 접수사건: 청와대 하명 수사다. 전 국민이 ‘어이 도난사건’의 용의선상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부 국민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찌질하게 통과된 언론 관련법을 지지하며 한 말이다.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게 아니라 친정부 신문을 장려하기 위한 일인데, 국민들이 ‘사오정 주술’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앙 일간지는 방송뿐만 아니라 지방신문 잠식도 가능한데, 그 대목은 왜 주목하지 않는지, 어이없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이런 선입견을 깨기는 쉽지 않으므로, 결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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