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블로거21] 훗날 후배들은 오늘 신문을 보며 뭐라고 할까

등록 2009-07-23 11:39 수정 2020-05-03 04:25
훗날 후배들은 오늘 신문을 보며 뭐라고 할까.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훗날 후배들은 오늘 신문을 보며 뭐라고 할까.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얼마 전 출판사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를 저녁 자리에서 만났다. 박 대표가 “이번에 나왔다”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제목은 . 5월에 761호 표지이야기 ‘호남의 정체성을 묻다’ 기사를 쓸 때 책의 서문을 받은 기억이 났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읽다가 한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곧추세우고 읽었다.

“본격적인 작업은 해방 이후 나온 일간신문들을 읽는 일로 시작되었다. 국회도서관에 가서 하루 종일 신문철을 뒤졌다. …지역주의와 관련된 기사를 찾기는 힘들었다. 기존 연구는 1971년 김대중과 박정희의 대결 과정에서 엄청난 지역주의 동원이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면서 당시 정황을 보여주는 신문기사들을 인용하곤 했는데, 찾아보니 그게 전부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이상을 찾기가 어려웠다.” 지역주의에 대한 그간의 연구가 다분히 과장됐다는 발견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교훈을 얻었다. 지역주의에 대한 연구는 지역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지역주의 때문에 큰일이다’는 해석이 한국 정치를 지배하게 됐다는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나도 호기심이 생겨 과거 신문 찾기에 들어갔다. 국회도서관이 아닌 인터넷으로. 아쉽게도 검색은 1976년 1월1일까지만 가능했다. 1976년부터는 지역감정을 언급한 기사를 찾기 쉬웠다. 총선 관련 기사에서는 지역감정에 기댄 선거운동 양태들을 따로 모아놓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지역감정이란 것이 색달랐다. 1978년 10월9일치 에서는 “김천·금릉과 상주의 지역감정이 팽배해서 공화와 신민 양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난립”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영·호남의 갈등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역 간의 갈등에 대한 기사였다. 과거 신문을 훑어보니 옛 일기장을 들춰보는 것처럼 재미가 쏠쏠했다. 뭔가 스쳐가는 것이 있어 1980년 5월19일로 향했다. 와 그리고 의 1면은 모두 “김대중·김종필씨 등 26명 연행”이었다. 광주에 대한 보도는 21일에야 나왔다. 에는 1면 하단에 “광주 일원 소요”로, 에는 1면 왼쪽에 “광주 일원 데모 사태”로 나왔다. 22일에는 광주 소식이 모두 톱이었지만, “외부 지역에서 온 불순분자들과 고정 간첩들의 소행”이라는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의 살벌한 경고로 뒤덮여 있었다.

초년병 시절, ‘이게 기자라는 거구나’라는 실감을 처음 했을 때 옆에 있던 다른 신문사 선배가 “우리는 지금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는 거야”라고 비장하게 말했던 기억이 났다. 먼 훗날에 오늘의 신문을 보면서 후배들은 뭐라고 할까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먼 뒷일도 아니다. 앞으로 4년쯤 뒤 요즘 신문을 천천히 보면서 “이날은 이런 ‘듣보잡’이 저런 사고를 쳤구나 하고” 보게 될 것 같다. 지금의 이 터무니없는 현실들을 만든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서.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