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밭에서 갓끈 맨 흔적이 지면에 남아 있다. OCI(옛 동양제철화학) 관련 기사 가운데 야릇한 내용들이 있다. 를 제외한 다른 신문에 등장하지 않은 기사가 있고, 다른 신문은 썼는데 유독 만 쓰지 않은 기사도 있다.
OCI가 주식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2007년 1월부터 이번 주식 불공정거래 의혹이 불거지기 직전인 2009년 6월까지 30개월 동안의 보도를 검색했다. 는 한국언론재단 기사 검색 서비스인 ‘카인즈’(KINDS)를 활용했고, 나머지 두 신문은 각 언론사 홈페이지의 기사 검색 서비스를 이용했다. 다른 주요 일간지와 달리 와 는 한국언론재단에 기사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는다.
‘동양제철화학’을 검색어로 입력했더니 이 기간 동안 는 68건, 는 63건, 는 66건의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부음·동정·인사·연합뉴스 전재 기사 등은 제외했다. 참고로 같은 기간 의 관련 보도는 31건, 은 46건이다.
유일하게 OCI 최고경영자 인터뷰 실어대부분의 기사는 주식 시황, 유력 업종 등을 전하면서 동양제철화학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런 흐름에는 매체 간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2008년 1월24일 경제 섹션에 실린 기사는 조금 다르다. 동양제철화학 신현우 부회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태양전지 핵심 원료(의) 상업화(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뷰 가운데는 “앞으로 우리 회사가 100년은 더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신 부회장의 말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7개 회사만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사업인 만큼 기술을 이전해주는 업체도 없다”는 해설도 곁들였다.
이번 의혹이 불거진 뒤 는 7월11일치 지면을 통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했다는 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해당 종목(동양제철화학)을 처음으로 매입한 것은 (동양제철화학 주식에 대한) 호재가 이미 투자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2008년 1월25일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쪽의 해명대로라면 주식 매입 하루 전날에 ‘호재로 알려진 업체’ 최고경영자에 대한 호의적 인터뷰 기사를 내보낸 셈이다. 미공개 정보 이용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사주가 투자하는 회사의 장밋빛 전망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 윤리에 어울리는 일인지는 상식적으로 판단할 대목이다.
등도 태양광 관련 업종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보도하긴 했지만, 이 시기에 동양제철화학의 최고경영자를 직접 인터뷰한 것은 가 유일하다.
사주가 관련 주식을 매입한 2008년 1월 이후 6개월 동안 의 동양제철화학 관련 기사는 모두 18건으로, 2007년 1~6월(9건), 2007년 7~12월(12건), 2008년 7~12월(11건)보다 많다. 반기 단위로 구분해보면, 2009년 1~6월(18건)과 함께 가장 많은 기사를 2008년 상반기에 집중했다. 같은 기간, 는 10건, 는 15건의 관련 기사를 실었다. 이 시기 에 실린 주요 기사로는 △글로벌 인플레 위기? 철강-에너지주엔 기회(2008년 3월5일) △태양광주 뜰까 질까(2008년 3월11일) △그린에너지, 고유파 파도 이젠 두렵지 않다(2008년 6월23일) 등이 있다. 모두 동양제철화학의 미래를 낙관하는 내용들이다.
조선·중앙은 비판하는데 동아는 침묵반대로 거의 모든 신문이 보도했는데도 에만 등장하지 않은 기사가 있다. 는 2008년 12월15일 경제 섹션 표지 기사로 ‘15조원 태양광 대박에 빛바랜 상생’이라는 내용을 실었다. 태양전지 기초소재를 만드는 벤처기업인 소디프신소재와 이 회사에 자금을 댄 동양제철화학 사이에 벌어진 경영권 분쟁을 다뤘다. 도 같은 사건을 2009년 2월25일 ‘소디프신소재, 1대·2대 주주 경영권 분쟁 가열’ 기사에서 다뤘다. 2008년 10월 말 발생한 이 사건은 2009년 2월 말까지 계속됐는데, 와 는 물론 대부분의 종합일간지와 경제전문지 등이 비중을 두어 사건의 추이를 지속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는 이 사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다만 2009년 2월27일 ‘경영권 분쟁 해결, 동양제철화학 3.32% 상승’ 기사에서 분쟁 해결 이후 주가가 상승했다는 내용만 짧게 보도했다. 독자들은 경영권 분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오직 분쟁 해결로 주가가 올랐다는 것만 알았을 것이다. 한 증권 전문가는 “대주주로 참여한 대기업과 벤처기업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 대기업의 인수를 의식한 투자자들의 매수로 벤처기업의 주가는 뛰어오르지만 대기업의 주가에는 특별한 변동이 없고, 오히려 분쟁의 당사자인 대기업의 평판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동양제철화학의 주식을 보유한 처지에선 경영권 분쟁 사건이 ‘호재’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주식투자에 직접 뛰어드는 작풍에서 는 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뚜렷이 대비되는 기사가 있다. 2009년 1월2일 동양제철화학은 미국 자회사인 컬럼비안케미컬 보유 지분 전부를 매각했다. 는 다음날 신문에서 ‘동양제철화학 밑진 장사’ 제목의 기사에서 “인수한 지 3년도 안 된 해외 자회사를 거액의 손실을 보고 되팔”았다고 보도하면서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큰 손실을 초래”했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반면 는 1월3일과 1월7일 기사에서 “시장에서는 동양제철화학이 폴리실리콘 등 신성장 동력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돼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보도하면서 “이번 매각은 적절한 시기에 이뤄진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는 동양제철화학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같은 사안을 완전히 다른 프레임으로 다룬 것이다.
일련의 보도와 사주의 주식투자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에 대해선 아직 밝혀진 바 없다. 기자들이 ‘독자적인 뉴스 판단’ 아래 관련 기사를 보도했을 수도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호의적 기사가 우연히 동양제철화학에 집중됐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기사의 ‘배경’을 공연히 의심받는 일을 피하려고 세계 언론사들이 채택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 언론계 종사자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윤리가 그것이다.
이해관계 갖는 주식·증권 정보 보도하면 안 돼는 1991년 기자윤리강령을 제정·발표했다. 그 가운데는 “권력 및 금력의 간섭을 거부하고… 개인적·집단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언론인의 양심에 따라 오직 진실만을 추구한다”는 내용도 있다. 모든 회원 기자들이 준수해야 하는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에도 “취재보도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 추구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강령 실천요강 14조는 더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기자는 본인, 친인척 또는 기타 지인이 이해관계를 갖는 주식 및 증권 정보에 관해 보도해서는 안 된다” “기자는 주식 및 증권 정보에 관해 최근에 기사를 썼거나 가까운 장래에 쓰고자 할 때 그 주식이나 증권의 상업적 거래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은 취재 및 기타 언론 활동에서 얻은 정보를 부동산 거래 등 기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 등이다. 적어도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의 동양제철화학 관련 보도는 신문윤리강령 실천요강에 위배된다.
외국 언론에선 이를 더 엄격히 금한다. 의 윤리강령을 보면, 무려 13조항에 걸쳐 회사 모든 구성원의 개인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200자 원고지 30매에 달하는 세부 제한 규정의 핵심은 “의 모든 구성원들은 보도 내용과 관련해 주식의 매수·매도를 포함한 어떤 투자 행위도 해선 안 된다”는 데 있다.
이 규정이 기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최진봉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외국에서는 사주나 경영자가 보도 내용 및 내부 정보를 이용해 금전적 이익을 얻는다는 발상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며 “그런 일이 일어날 개연성 자체가 적으니까 각종 윤리강령에서 ‘모든 구성원’에 대해 규정하면서도 사주나 최고경영자에 대한 언급을 따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2006년 4월 대법원 판결1999년 5월, 경제부 길아무개 차장이 비공개 정보를 동생에게 알려주고 주식거래로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당사자는 혐의 내용을 부인했으나, 신문사는 그를 파면했다. 기자가 비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된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사주 또는 언론사가 주식투자를 했다는 이유로 법적 제재를 받은 적은 없다. 다만 2006년 4월 대법원 판결이 주목할 만하다. 2001년 문화방송은 “가 언론사의 힘을 이용해 한통프리텔 주식을 싸게 사서 재테크했다”고 보도했다. 는 관련 보도에 대해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부는 의 패소를 확정판결하면서 “언론사가 특정 회사 주식에 투자할 경우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8년 만에 는 같은 의문에 휩싸였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뉴진스 “29일 자정 어도어와 전속계약 해지…광고·스케줄은 그대로”
[영상] 명태균 “조은희 울며 전화, 시의원 1개는 선생님 드리겠다 해”
한동훈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불법정차 뒤 국힘 점퍼 입어”
러, 우크라 전력 시설 폭격…영하 날씨에 100만명 단전 피해
친한, 김건희 특검법 ‘불가→유보’ 기류 변화…친윤 공세 방어용인가
명태균 처남의 이상한 취업…경상남도 “언론 보도로 알았다”
이명박·박근혜가 키운 ‘아스팔트 우파’, 현정부 언론장악 전위대 노릇
포근한 올 겨울, 축축하고 무거운 ‘습설’ 자주 내린다
의사·간호사·약사 1054명 “윤석열 정책, 국민 생명에 위협”
전쟁 멈춘 새…‘이스라엘 무기고’ 다시 채워주는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