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인류가 죽음에 대해 예의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죽음을 사이에 두고 산 자와 죽은 자가 갈라짐을 깨닫고, 살아 있는 자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아챈 현생 인류의 조상인 네안데르탈인이 주검을 매장하기 시작한 이래로 산 자가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은 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가 되었다.
뭐든지 반대로 하는 아들을 둔 어미는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긴다. 나 죽거들랑 물가에 묻어달라고. 평생 한 번도 어미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 불효자도 이 말은 외면할 수 없어 어미의 속셈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어미를 물가에 묻는다. 그리고 비만 오면 개굴개굴 운다던가. 죽음과 장례에는 그만큼의 힘이 있다. 평생의 불효자도 어미의 말에 복종하도록 만들 만큼의.
네안데르탈인 시절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원수인 트로이의 헥토르를 죽이고 나서도 성이 풀리지 않았다. 헥토르의 아버지의 간청에도 주검을 돌려주지 않고 매장도 해주지 않는다. 신들은 크게 분노하면서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를 불러 경고한다. 헥토르가 그리스의 적군이고, 아킬레우스의 많은 동료를 죽였지만, 이미 삶의 경계를 넘어 다른 세계로 간 그를 매장하는 일에 예의를 갖추는 것은 그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던 것이다.
통치자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주검을 매장했다는 이유로 동굴에 갇혀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안티고네도 있다. 그는 아버지인 오이디푸스가 추방됐을 때,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는 유랑의 길을 동행할 만큼 의리 있는 사람이었다. 쌍둥이 오빠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가 선왕의 추방으로 비어 있던 왕좌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였다. 폴리네이케스는 아내의 나라인 아르고스에서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전쟁을 벌였다. 승자는 없었다. 두 형제는 모두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뒷자리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은 안티고네의 외삼촌인 크레온이었다. 왕이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시신을 정성껏 거두어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주었지만, 외국의 군대를 이끌고 테바이를 침략한 폴리네이케스는 조국을 배신한 자이기 때문에 장례를 치러주지 않았다.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굶주린 새들과 개들의 먹이가 되도록 들판에 그대로 내버려두도록 명하고 그의 명령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죽음이라는 중형을 내릴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명령 때문에, 주검을 매장하지 않고 지상에 방치함으로써 우주 질서를 교란시켰다는 이유로 크레온은 저주를 받게 된다.
매장의 안식을 찾지 못한 주검이 오늘 대한민국에도 있다. 용산 참사의 철거민 5명은 참사가 일어난 때로부터 6개월이 다 되도록 순천향대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권을 지키려 나섰던 소박한 투쟁이 목숨을 버려야 하는 초강경 진압과 만났다. 생목숨 다섯이 졌는데도 관련자들은 요지부동이다. 1월20일 참사 이후 정부는 ‘용산철거민 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와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단 한 차례의 대화도 하지 않았다. 세상의 관심도 잠깐이었다. 범대위는 “이 싸움을 마무리하면서 장례를 지내고 싶”은 소망을 말하면서 “갈 곳 없는 시신들과 막다른 길에 내몰린 우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은 시신과 함께 거리로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생목숨 다섯 잃고도 대화조차 거부하이몬이 아버지 크레온에게 부당한 명령을 거두라고 요구했을 때 크레온은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뜻에 따라 이 나라를 통치해야 하나”라고 소리친다. 하이몬이 답한다. “폴리스는 단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독재자는 혼자 사막에서 통치하는 것이 어울릴 것입니다.” 명령을 위반하고 오빠의 주검을 매장한 안티고네에게 사형을 선고한 크레온에게는 어떤 일이 생겼을까? 안티고네의 약혼자였던 아들 하이몬은 자살하고 아들의 죽음에 절망한 아내는 아들의 뒤를 따랐다. 그는 모두를 잃고 ‘사막’과 같은 곳에 남았다.
네안데르탈인 시절부터 시작된 인류의 오래된 전통, 죽음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5명이 죽었다. 그 죽음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는가. 유가족들이 주검과 함께 거리로 나오는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제발 대화를 시작하라.
박현희 서울 구일고 사회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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