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난 마이클 잭슨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의 춤과 노래를 들으면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분됐고, 비디오가 있는 친구 집에 가서 아직 우리나라 TV에선 안 틀어주던 해적판 뮤직비디오도 열심히 봤다. 워낙에 몸치인지라 엄두도 못 냈지만 제법 그를 흉내내며 춤을 추던 친구들을 보면 ‘난 왜 저렇게 못 출까’ 하면서 마냥 부러워했다. 그랬던 그를 사진기자가 돼서 만날 줄이야. 공항을 담당하고 있던 시절,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를 내가 찍게 된 것이다. 현장에서 일로 만난 것이어서 감흥을 느낄 여력은 없었지만, 이후 가끔 TV나 인터넷으로 본 그의 공연 장면은 영원히 늙지 않는 전성기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둘.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던 고교생이 대학생이 됐다. 시위와 수업 거부가 계속됐다. ‘이 땅의 민중’ 운운하며, 사랑 타령이나 하는 유행가를 멀리하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동시상영 극장에서 본 영화가 최진실이 주연한 였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며 혜성처럼 등장한 최진실. 그 영화 속 최진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저렇게 귀여운 마누라랑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고 있는 내 자신을 상상했다. 최루가루를 뒤집어쓰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한구석엔 어려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래서 정말 갖고 싶었던, 포근한 가정의 꿈이 꿈틀거렸는지 모른다. 그 아이러니한 20대의 기억에 있던 그녀도 역시 사진기자가 되자 여러 번 보게 됐다. 수습기자 시절, 대종상 영화제에서 정말 한 발짝 앞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렌즈에 비친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셋. 1987년 그 폭염이 지나가고 국회에서 5공 청문회가 열렸을 때, 기성 정치인을 혐오하던 내가 본 그 사람. TV를 통해 보다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저 사람 정도면 괜찮겠다 했다. 모든 기성 정치인들의 이름을 친구 부르듯 하거나 욕을 호칭처럼 붙여가며 말했지만, 이상하게 정치인 노무현을 얘기할 땐 친구들과 암묵적으로 ‘무현이 형’이라 불렀다.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지만 술자리에선 항상 ‘무현이 형‘이라 칭했고 그가 고등학교만 나왔다는 사실이 더욱더 그를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사진기자가 되자 그는 앞서 두 사람보다 더 많이 보게 됐다. 파업 현장에서 중재하던 모습, 선거판에서 내리 물먹던 모습, 국회에서 대통령 선서를 하던 모습. 그리고… 서울시청 앞에서 노란 풍선 사이로 웃고 있던 영정까지.
앞서 말한 사람들이 멀리 떠나버렸다. 너무나도 친근해서 언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사람들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지금도 TV를 켜면 나올 것 같다. 드라마에서 누군가의 아내로 나올 거 같고, 화려한 스텝으로 나를 여전히 흥분시킬 것 같고, 최고의 권위를 버리고 우리네 이웃같이 사는 그의 선한 얼굴도 나올 것 같다. 그들과의 기억이 있어 행복하다. 다시 보고 싶다. TV를 켜도 더는 없는 그들을. 잘 가라, 진실아. 안녕, 마이클. 그리고 편히 쉬세요, 무현이 형!
윤운식 기자 blog.hani.co.kr/y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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