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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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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 사용법

등록 2009-05-20 11:29 수정 2020-05-03 04:25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문화사에서 특별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의 새로움과 사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미지의 생산에 참여한 때는 없었다. 편리함에서 ‘디카’는 전례 없는 발명이다. 촬영하고, 확인하고, 저장하고, 발송하고, 게시하는 과정에는 기다림이나 불편함이 없다. 회화 시대에는 상당한 수련을 쌓았던 소수에게 이미지 생산이 맡겨져 있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쉽게 거기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일상에 새로운 회로를 가져오다

디카 사용법.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디카 사용법.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더 나아가 디카는 시선의 공유를 가능케 했다. 디지털 이미지가 인터넷과 결합되면서 우리는 몇천km 떨어진 곳에서 다른 사람이 본 것을 함께 볼 수 있게 되었다. 80년 광주를 담은 몇 장의 참혹한 사진이 시민권을 얻기까지 10년 남짓의 시간이 걸렸던 것을 돌이켜보면, 촛불 집회는 전혀 다른 디지털의 네트워크 안에서 진행됐던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특정한 시공간에 위치한 한계를 뛰어넘어 디지털의 사진과 동영상을 타고 유동한다. 모든 사물을 볼 뿐만 아니라, 모든 시선 안에 위치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이 누군가의 관점 안에 있게 해주는 것처럼, 디카는 누군가의 시선을 체험하게 해준다. 라이프니츠 식으로 말하자면, 디카는 ‘시선점들’(points of view)의 공존이며 중첩이다.

둘째로, 디카는 새로운 도구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각 방식을 몰고 온 듯하다. 앞서 말했듯이, 디카의 매력은 미니홈피나 블로그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사진기가 기념촬영용으로 가끔 등장하던 때와, 일상이 포스팅에서 다음 포스팅으로 연결돼 있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블로깅하기 좋은 방식으로, 주위 환경을 프레임을 통해 절단해보는 것에 익숙해져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일상의 동선이 미니홈피에 적합한 것으로 짜이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경우, 역으로 온라인에서 형성된 시각적 회로를 모방하는 데 오프라인의 활동이 바쳐진다. 그 회로에 연예인의 사생활 사진과 의류 쇼핑몰 사진이 따라해야 할 모델로 삽입된다면? 디카의 도래는 일상의 새로운 회로를 가져온 것인지 모른다.

셋째로, 디카는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익히 알다시피, 오늘날 예술을 뜻하는 ‘아트’(art)라는 말은 원래 라틴어에서 예술과 기술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었다. 기술과 예술이 급속도로 분화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부터다. 디지털의 잠재성 중 하나가 바로 분화된 것들의 재수렴에 있다.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숫자로 고속으로 변환해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예술의 새로운 환경을 선사하고 있다.

모든 디카 사용자가 예술적 창작을 의도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특정한 사물들의 배열을 프레임에 담기 위해 응시하는 행위에는 다소간의 예술적인 정신이 담겨 있다. 이것이 주는 순수한 쾌감 없이 디카가 이토록 대중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디카가 예술에 걸쳐 있는 그만큼, 예술의 문제에 디카의 사용법을 비춰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동시에 우리의 지각 방식을 변화시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레임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잘못된 선별과 배제는 우리를 실재계로부터 분리시킨다.

디카 시선의 타락

파울 클레는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위대한 예술은 형태의 배치를 통해, 보이지 않는 사회적 힘, 조형적 힘들을 드러낸다. 그러나 곧바로 예술품들은 유한계급의 과시적 취미로 포획되곤 했다. 그것은 어쩌면 예술이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운명일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디카의 시선이 무가치한 장식에 집착하고 카페의 케이크 위에 놓여 있을 뿐이라면, 그것은 시선의 타락이다.

이찬웅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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