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6년 만에 발령을 받았다. 지난 4월이다. 어머니는 다른 인사 때와는 달리 많이 걱정을 하시는 눈치였다. 하지만 별다른 내색은 없으셨다. 며칠 뒤 이유는 밝혀졌다. 어머니는 ‘주간지 ’로 간다는 아들의 설명에 “ 같은 거냐”고 물으시는 거다. 한참을 웃었다. 을 종종 보아오셨는데도, 같은 기사를 쓰게 될까 걱정이 크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오자마자 쓴 게 결국 ‘성접대의 속살’이다. 애를 많이 먹었다.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내부고발자를 찾듯, 접대여성부터 마담, 사장, 지배인, 접대가 잦은 건설사 쪽 인사까지 모두 수소문했다.
시작이 팔자를 결정한 건지 이후 난 계속 힘들었다. 오만 가지를 알아도 기사로 쓰지 않으면 알지 못한 것이고, 써도 독자가 읽지 않으면 쓰지 않았다 하는 게 기자질의 숙명이라, 힘들다 말하지 않으면 그 또한 힘든 것이 아니 되어, 난 계속 힘들다, 죽겠다 노래를 불렀다. 한 달 새 200자 원고지 40~60매 분량의 표지이야기 기사를 두 번 쓰고, 저녁 먹고 트림 좀 할라치면 ‘낭중지수’ 출고 지시가 내려왔고, 수면제 가루처럼 쏟아지는 봄볕에 정신 좀 내놓을까 하면 인터뷰 지시가 이어졌다.
에는 편집장까지 모두 20명의 기자가 있다. 다들 병이 하나씩 있어 보이고, 주벽이 하나씩 있으며, 장기가 또 하나씩 있다. 나만 힘들다, 티를 내도 묵묵히 들어주는 가공할 ‘무관심’이 또 하나씩 있다. 일주일의 시작은 일요일부터다. 대개 일요일 오후가 되면 ‘아이템’ 없는 자신을 미워하고, 화요일이 되면 뜻대로 취재되는 게 없는 세상을 욕하다, 목요일에 날 새워 기사를 썼더니 발만 날을 샌 모양인가, 자신을 증오하다, 금요일이 되면 용케 기사는 나와 있더라, 자신을 대견해하고 세상은 아름답다 말하다, 이틀 뒤 또다시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매주 목요일, 여럿 회사에서 밤을 새우고, 사내 휴면실에서 잔다. 그런데도 모처럼 할당 기사가 적어 5월7일 목요일에 개념 없이 민방위 훈련을 받았다. 쉴 요량이었다. 강의받는 4시간여 줄곧 잤다. 심폐소생술은 지난해에도 배웠고, 또한 지진대처법은 동사무소 공익근무요원에게 해상침투법을 가르치는 것처럼 여태껏 써먹을 일이 없었다. 대원은 의자에 몸을 접어 조는 일에만 참으로 낑낑댔다. 민방위 훈련조차 시역이 되는가, 괴로워했다.
허리를 주무르며 집에 들어오니 저녁 6시가 다 돼갔다. 동료 기자들, 고생하겠군, 슬쩍 미안함도 들었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쉬자, 쉬어, 하던 찰나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말랑말랑하게 재밌게 쓸 만한 기사 없냐, 기사 계획이 좀 바뀌어서. 2쪽짜리 기사 책임지고 써라.” 좀 이따 동료 기자한테도 전화가 왔다. “선배, 제가 일이 너무 많아서요, ‘부글부글’을 대신 좀….” 말랑말랑과 부글부글 사이 해는 이미 저물었고, 오던 잠 확 달아났다. 아 그래, 민방위 훈련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거구나.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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