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맞아 은 ‘어린이 절대평등 선언’을 준비했다. 어린이 교양잡지 의 김규항 발행인, 황윤옥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 송경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원,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등이 이번 선언에 대한 의견을 내고 감수했다. 편집자</font>
지금도 기초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출산장려비를 주긴 하지요. 그런데 지역마다 액수가 달라요. 부자 동네에선 많이 주고 가난한 동네에선 적게 줘요. 똑같이 주세요. 엄마·아빠가 분유·기저귀·유모차 살 돈이 없어 슬퍼하지 않게 해주세요. 물론 우리는 엄마젖을 가장 좋아해요. 그런데 엄마가 제대로 먹지 못하면 젖이 나오지 않아요. 분유값 지원은 엄마젖을 잘 나오게 하는 영양비이기도 해요.
<font color="#A341B1">2. 몸이 아프면 무료로 치료받게 해주세요</font>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5살까지 영유아 건강검진을 무료로 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검진 결과 아픈 데가 발견되면 어떻게 하지요? 태어날 때부터 많이 아픈 난치병 친구들은 어떻게 되나요? 장애를 겪는 친구들은 보험 가입도 제대로 안 된다는 거 아세요? 적어도 5살이 될 때까지는 모든 치료를 무료로 해주세요. 간단한 감기 처방부터 아주 큰 수술까지, 5살 미만의 어린이들에게 모든 치료는 생명 유지와 직결되는 것이지요. 치료의 전 단계인 예방접종을 완전 무료로 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font color="#A341B1">3. 동 단위마다 ‘흙바닥 놀이터’를 만들어주세요</font>우리는 놀면서 대화하고 배려하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요. 날마다 햇빛, 바람, 물, 흙 속에서 놀게 해주세요. 김규항 선생님은 “어린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건, 가장 가공할 인권 탄압”이라고 하셨어요. 제일 좋은 건 우리가 사는 도시에 공원과 숲을 많이 만드는 것이겠죠. 그게 당장 힘들다면 흙이 있는 놀이터를 동마다 의무적으로 만들어주세요. 요즘 통폐합하고 있는 지역주민센터(옛 동사무소) 땅에 흙만 깔아도 되잖아요. 다만 우레탄이나 시멘트 바닥은 절대로 안 돼요.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기르려면 흙에 아이를 가만히 두면 된다는 말도 모르세요?
<font color="#A341B1">4. 돈 없이 만날 수 있는 어른 친구를 많이 만들어주세요</font>우리한테는 좋은 어른 친구도 많아야 해요. 날마다 우리를 안아주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 친구 말이에요. 유치원, 돌봄교실 등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이 가장 좋은 어른 친구죠. 그런 친구를 많이 만들어주세요. 다만 엄마·아빠가 돈 걱정을 하는 건 싫어요. 보육료나 유아교육비를 지원한다고 공연히 생색내지만, 엄마·아빠는 그런 일에도 눈치가 보인대요. 그냥 5살 이후 유치원 의무교육 시켜주세요. 돌봄교실이나 탁아방도 여기에 포함해주세요. 좋은 어른 친구가 될 선생님도 많이많이 늘려주세요.
일 나가는 엄마는 한 달에 하루 생리휴가를 받아요. 모처럼 쉬는 엄마가 반갑지만 그날은 엄마 몸이 힘들어서 우리랑 많이 놀지 못해요. 주말에는 엄마·아빠 모두 지쳐서 잠부터 자야 해요. 밀린 청소나 빨래도 해야 하죠. 우리한테는 엄마·아빠와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휴일이나 주말에는 엄마·아빠가 제대로 쉴 수 있게 해주세요. 대신 한 달에 하루 ‘책 읽어주기’ 휴가를 주세요. 송경원 선생님은 아예 “일주일에 하루는 오후 3시 이전에 ‘책 읽어주기 조기 퇴근’을 하도록 하자”고 말씀하셨어요. 그것도 괜찮겠지요?
<font color="#A341B1">6. 마음이 아프면 무료로 상담해주세요</font>어른들이 우리를 경쟁논리와 물질주의로 몰아넣는 바람에 친구들 가운데는 마음이 아픈 경우가 많아요. 김규항 선생님은 어린이 독자들한테 ‘살고 싶지 않다’ ‘이민 가고 싶다’는 편지를 많이 받는대요. 마음이 아픈 것을 아예 자각하지도 못하고, 친구한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는 친구들도 있어요. 인지·발달 장애나 공격성·배타성 증가와 같은 ‘마음의 병’도 무료로 낫게 해주세요. 초등학교에 양호 선생님 말고도 상담만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이 계셔야 해요. 동네 보건소에도 어린이 상담 전문가가 필요하지요. 더 많은 치료를 받으러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에도 초등학생까지는 무료로 해주세요.
<font color="#A341B1">7. 학교에선 똑같이 먹고 놀고 공부하게 해주세요</font>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건, 사회와 나라를 위한 것이래요. 우리 자신의 능력을 기르는 의미도 있지만, 나라에서 건강한 시민을 기르려고 학교를 만들어 교육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학교에서 필요한 것들은 나라에서 대주세요. 무료급식을 의무화해주세요. 연필이나 지우개, 미술 도구 등 기본 학용품도 무료로 지급해주세요. 체육 시간에 입는 운동복, 학용품 넣는 책가방도 주세요. 우리가 직접 고를 수 있게 다양한 책가방이나 학용품 모델을 제시하는 센스, 잊지 마시고요. 거리가 멀어서 버스를 타야 한다면 교통비도 주셔야지요. 아니면 셔틀버스를 대주세요. 특히 시골에선 차를 타지 않으면 학교에 갈 수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font color="#A341B1">8. 방과후 학교에서 1시간씩 다 함께 뛰어놀게 해주세요</font>매일 낮에 땀 흘리며 웃으며 어울려 뛰어노는 건 우리한테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없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을 가요. 영어·수학 학원이 아니어도 태권도니 피아노니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지요.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학교도 온통 배우고 익히는 것뿐이지요. 뛰어놀 시간이 없으니 친구를 사귈 수도 없어요. 낮에 놀 수 있게 해주세요. 학과 수업이 다 끝나면, 운동장에서 1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놀게 해주세요. 학생들이 많은데 좁은 운동장에서 어떻게 모두 모여 노느냐고요? 그러게 누가 운동장을 작게 만들라 했나요? 이번 기회에 학교당 학생 수를 줄이면 되지요. 학교도 더 많이 짓고 운동장이나 강당 같은 놀이 공간도 더 크게 짓도록 의무화해주세요.
숙제를 아예 내지 않으면 제일 좋겠지요. 그것까지 기대하진 않을게요. 그런데 왜 엄마·아빠가 거들어야 하는 숙제를 내주시나요. 엄마·아빠가 늦게 들어오시면 저 혼자 숙제를 할 수도 없어요. 이것저것 돈 주고 사야 해결되는 숙제도 많아요. 돈이 없으면 숙제도 못하는 건가요. 어떤 날에는 숙제하느라 밤늦도록 발을 동동 구르는 일도 있어요. 혼자서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숙제만 내주세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까다로운 숙제를 붙들고 엄마·아빠와 씨름하는 대신, 책 읽고 대화하고 친구들과 땀 흘리며 놀 거예요.
<font color="#A341B1">10. 우리한테도 월차·연차 휴가를 주세요</font>쉬는 일, 노는 일은 그 자체로 중요해요. 어른들은 직장에서도 수시로 휴가를 내잖아요. 법으로 정한 연·월차 휴일이 있으니까요. 우리도 그렇게 할래요. 어린이 연·월차 휴가를 주세요. 체험학습이 있다고요? 그건 학습이지 쉬는 게 아니잖아요. 몸과 마음이 아파서 학교를 쉬고 싶은데, 공연히 체험학습을 핑계 삼는 건 거짓말만 느는 일이지요. 방학과 주말이 있다고요? 방학 때도 학원 다니잖아요. 당당하고 떳떳하게 친구랑 아니면 혼자서 쉬고 뒹굴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우리한테 휴일을 주세요.
<font color="#A341B1">11. 성적이 나쁘다고 꾸짖는 어른을 벌 주세요</font>어린이를 학대하는 어른은 법으로 처벌을 받지요? 그런데 학대란 건 아이의 몸과 마음을 함부로 다루는 일이잖아요. 황윤옥 선생님은 “오직 시험 성적을 이유로 함부로 꾸짖는 부모·교사·어른이 있다면 그것도 어린이 학대”라고 말씀하셨어요. 공부를 잘 못한다고 차별하는 행위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경쟁이 싫은데, 지금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데, 공연히 어른들의 기준으로 못살게 구는 거잖아요. 아이를 때리는 일, 아이를 가두는 일이 모두 처벌 대상이듯이, 학교 성적을 이유로 공연히 차별하고 폭언하고 매를 드는 어른은 처벌해주세요. 어린이라고 해서 어른들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는 건 이제 한국에서도 상식으로 자리잡아야지요.
<font color="#A341B1">12. 꽃으로 때려도 벌 주세요</font>물론 그것보다 더 큰 어른들의 폭력이 있어요. 지금도 처벌 규정이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우리를 지켜주세요. 모든 형태의 체벌을 금지해주세요. 사람이 사람을 때려서는 안 돼요. 옛날 노예 시대에나 있었던 일이죠. 그런데 동물 학대도 금지하는 요즘, 오직 어른이 어린이에게 매를 드는 일만 ‘합법적’이에요. 말도 안 돼죠. 우리도 사람이고 생명이에요. 학교 선생님이나 엄마·아빠라고 우리를 때려도 좋은 이유는 전혀 없어요. 덧붙일 게 있어요. 어린이를 학대하는 부모가 있으면 어린이를 데려다 보호시설에 맡기잖아요. 싫어요. 우리는 집에 있고 싶어요. 낯선 보호시설에 가기 싫어요. 우리를 학대하고 괴롭히는 어른을 다른 곳에 가두세요.
<font color="#A341B1">13. 우리 모두를 똑같이 대해주세요 </font>여자와 남자를 옷과 놀이와 말로 구별하지 말아주세요. 외국에서 온 엄마 또는 아빠를 둔 친구들과 충분히 어울려 놀 수 있게 해주세요. 이 땅에서 태어났거나, 몇 년 이상 살고 있거나, 앞으로 이곳에서 살려는 모든 친구들에게 한국인의 국적을 주세요. ‘부모의 나라’와 상관없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어린이들이 쫓겨나거나 차별받을 걱정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게 해주세요. 몸과 마음이 불편한 친구들과도 같은 곳에서 어울려 놀고 공부하게 해주세요.
<font color="#A341B1">14. ‘어린이 영향평가’를 해주세요</font>어른들이 뭘 하건, 우리한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미리 조사하고 판단해주세요. 도로 하나를 만들어도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따져서 계획을 세우잖아요. 우리는 나무·바위·노루와 같아요. 어른들이 결정하는 일의 결과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지요. 이젠 어른들이 우리를 배려해주세요. 배경내 선생님은 “어린이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를 고려해 우선적인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른들이 결정하는 모든 일에 이 기준을 적용해야죠.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마련하듯, 모든 공공시설이 우리 몸과 마음에 맞는 기준을 갖추도록 해주세요. ‘어린이 건물 인증’ ‘어린이 도시계획 인증’ 같은 걸 도입하는 것도 좋겠지요.
<font color="#A341B1">15. ‘어린이 시민위원회’를 동마다 만들어주세요</font>우리가 고민하는 일의 대부분은 가정·학교·지역·계층 등의 요소가 두루 혼합돼 있어요. 어린이 한 명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러 어른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러니 그런 일을 논의하는 위원회를 만들어주세요. 교사·학부모·사회복지사·의사·상담사 등이 두루 참여하면 좋겠지요. 한 명의 어린이를 위해 여러 어른들이 지혜를 모으는 일이, 미래를 위해 오늘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심하는 일이 이젠 한국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제발 보여주세요.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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