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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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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완] 채무자의 눈물을 사고 팔며…

등록 2001-05-15 00:00 수정 2020-05-02 04:21

‘붉은 딱지’ 노리는 동산경매업자들의 세계… 막다른 골목에 몰린 채무자,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그는 끝내 오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싱겁게 끝나고 마는가.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붉은 압류딱지가 붙은 살림살이를 놓고 동산경매업자들이 안방에 들어와 흥정을 벌이는 모습을, 아니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서민 빚쟁이들의 처절한 풍경을 담아보자. 사흘 전, 동산경매라는 낯선 세상의 한복판에 뛰어들 때만 해도 그렇게 나름대로 거창했는데…. 애가 탔다. 걱정에 휩싸인 나의 손은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그의 부재를 걱정하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 혼자라도 경매에 나서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3만원. 물론 이 돈으로는 턱없다. 게다가 그는 “덥석 잘못 물었다가 이빨만 콱 빠지고 만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 그러니까 이날(5월11일) 아침 9시에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집행관실에서 만나기로 한 동산경매사 양원준(28·한국동산경매정보주식회사 대표)씨는 10시50분이 다돼서야 통화가 됐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몸살이 나서 지금 집에 누워 있어요.” 일이 꼬이려는 것인가. 어쩔 수 없었다. 때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현실은 쉽게 마음을 비우게 해준다. 그래 동산경매 세상의 절반만 뛰어든 것으로 마감하자.

“법이 약자를 보호한다는 건 거짓말이야”

“초야, 초.” 5월8일 오전 9시30분, 서울지방법원 집행관사무소. 양씨와 얼굴을 트고 지내는 법원 직원이 우리에게 외쳤다. 동산경매업자 체험을 위해 이날부터 나는 양씨 회사의 직원으로 행세했고, 그렇게 양씨와 나는 ‘우리’가 됐다. 초(初)란 오늘 예정된 여러 건의 동산경매 물건 중 첫 시작이란 뜻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된 셈이다. 양씨는 “동산경매시장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 세계를 알고 뛰어드는 사람은 소수”라며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에 매력이 있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초로 잡힌 물건은 서울 중구 신당동 남산타운 아파트에 있는 한 채무자의 집으로, 경매시간은 10시30분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내가 양씨에게 ‘붉은 딱지’ 운운하자 택시기사가 내 말 허리를 끊고 느닷없이 끼어들었다. “나도 그런 일을 당했어요. 몇해 전에 전화가 왔는데 누구 맞느냐고 하더니 끊어버리더라구요. 그런데 며칠 지나 집에 법원 집달관들이 들이닥쳐 마구 빨간 딱지를 붙이고 가더라구. 카드회사에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압류까지 들어온 거야. 독촉장 한번도 안 보내다가 말이지. 연체료까지 붙어서 100만원이 넘더라구. 몇십만원 때문에 저항하기도 뭐 해서 결국 다 물어주고 말았지.” 점차 반말투로 바뀐 그는 “법이 약자를 보호한다는 건 거짓말이야. 강자나 집행자 입장에서 만들어지거든” 하며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서둘러 도착한 남산타운 아파트는 40평은 넘어보였다. 다른 경매업자들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채무자 김아무개(41·여)씨 집에 있는 경매품목 감정가는 에어컨 60만원, 소파 7만원, 식탁 5만원, 냉장고 12만원, 옷장 5만원 등 총 172만원이었다. 아파트 입구 벤치에서 잠시 기다리자 차 한대가 들어왔다. 우리처럼 경매에 참여하러 온 업자였다. 환갑을 넘긴 듯한, 점퍼차림의 그가 채무자의 집을 힐끔 올려다보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가 꺼낸,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에는 경매품목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이 일 몇년이나 했습니까?” 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한 20년 됐지. 옛날에 남들 따라다니면서 배우다가 혼자 개인플레이로 나섰지.” “사들인 물건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야 채무자가 다시 사면 좋고, 안 되면 텔레비전, 냉장고, 장롱 다 나한테 물건을 사는 거래선이 따로 있어.”

법원 집행관실에는 `열쇠쟁이'가 있다

그 사이에 각자 법원에서 출발한 업자들을 태운 차들이 속속 들어왔고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는 업자는 대여섯명으로 늘었다. 채권자와 법원 집행관(옛 집달관)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다 되자 채권자가 나타났다. 삼성캐피탈에서 나온 채권회수 담당자였다. 아파트 동으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 있는 것을 확인한 그가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이 집은 받을 채권이 얼마입니까?” 양씨가 물었다. “일부는 변제했는데 아직 한 1천만원 남았죠.” 순간, 내 옆에 앉아 이런저런 말을 나누던 점퍼차림의 업자가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아니 그럼 당신들도 상인이네, 내가 적과 동침을 한 거잖아”라며 저만치 비켜섰다. 우리를 채권자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법원 집행관이 직원 2명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했다. “아파트 문이 잠겼는데 채무자가 지금 집안에 있는지 없는지 전화를 안 받아요. 열쇠를 불렀는데 아직 안 오네요.” 채권자가 집행관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그래요”라고 한마디 던진 집행관은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금방 결정을 내렸다. “오늘은 안 되겠습니다. 돌아갑시다.” 불능(경매가 이뤄지지 못한 것)처리다. 법원 차가 되돌아가자 업자들도 각자 차를 타고 자리를 떴다.

‘열쇠’가 나온 김에 동산경매절차를 짤막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동산은 말 그대로 ‘움직일 수 있는 물건’으로, 쉽게 말해 가정집 살림살이나 사무실 집기 등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빚을 갚지 않으면 채권자는 법원에 채권회수를 위한 가압류 및 본안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은 강제집행에 들어가 동산에 압류딱지를 붙인다. 딱지는 3가지로, 흰색은 가압류, 파란색은 채권자가 2명 이상인 경우, 붉은색은 본압류다. 딱지가 붙었더라도 채무자가 그 물건을 계속 사용할 수는 있다.

압류대상 물건은 밥솥 등 꼭 필요한 생필품은 제외되고 채무자의 방에 있는 것만 가능하다. 다른 사람 방으로 물건을 옮겨놓으면 집행관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압류 이후에도 여전히 채무자가 빚을 해결하지 않으면 채권자는 법원에 경매를 신청하는데, 경매는 신청한 당일 이뤄진다. 특히 1차 경매 시도 때 채무자의 집이 잠겨 있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보통 불능처리하고 되돌아가지만 2, 3차 경매 때는 열쇠를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간다. 간혹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법원 집행관실에는 늘 ‘열쇠쟁이’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채권자가 부르면 즉각 달려온다.

첫 동산경매 물건이 불발로 끝나고 두 번째 경매물건이 있는 도곡동으로 급히 향했다. 도곡동쪽 경매시간은 11시30분. 1시간쯤 남았다. 가는 도중 전철 안에서 양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그의 안색이 안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도곡동쪽도 불발이었다. 애초 아침에 법원에서 경매에 뛰어들어보자고 잡아둔 건 두건뿐이었다. 결국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물건은 남이 보지 못하게

동산경매는 업자들이 채무자의 방에서 현금을 깔아놓고 포커치듯 한장씩 던지며 가격을 부르는 식인데 2∼3분이면 끝난다. 부동산처럼 거액이 거래되는 건 아니지만 위험도 뒤따른다. 압류된 PC방 컴퓨터를 사고 나서 보면 어제까지 멀쩡하던 컴퓨터 내장부품이 새벽에 빼돌려지거나 갈아치워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켜보지 않고 겉만 보고 사면 덤터기 쓰기 일쑤인 셈이다. 양씨는 “며칠 전까지 경매업자로 함께 나서던 사람이 갑자기 안 보일 때가 있는데, 돌아다니다보면 그 사람 집의 살림이 압류물건으로 나온 경우도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는 업자들도 거의 가지 않는다. 가봤자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물건에 압류딱지를 붙여 털었을 때 나오는 감정가는 대개 평수의 절반 정도로, 24평은 120만원, 40평은 200여만원쯤 나온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서울지법 동부지원 집행관실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우선 동산경매 게시판에 붙은 목록을 뒤졌다. 목록표가 군데군데 볼썽사납게 찢겨져 있었다. 좋은 물건이다 싶으면 남이 아예 못보게 떼버리는 것이다. 동산경매시장이 ‘그들만의 리그’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놀라울 게 못된다. 방금 창구에서 경매신청을 끝낸 채권자들은 등짝에 ‘000열쇠’라고 적힌 조끼차림의 열쇠쟁이에게 경매물건이 있는 집 주소와 경매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채무자가 눈치를 채고 집을 비웠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를 대비해 미리 열쇠를 예약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온 물건을 죽 훑어본 뒤 압류물건의 감정가가 100만원 이하인 4곳을 가보기로 했다. “가락동 시영아파트는 몇시예요?” 내가 묻자 감색 양복차림의 법원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한다. “뭔 일로 그러는데요.” “그야 물론 경매에 참가하려는 거죠. 왜요?” 그러자 그가 지나가는 말처럼 “못보던 얼굴인데…” 하더니 “그쪽은 개털이야. 가봤자 재미볼 거 없어”라고 툭 던지듯 말했다. 사실 그렇게 별게 없다고 말하는 물건일수록 좋은 물건이라 한다. 다른 업자에게 물건을 넘기기로 약속한 뒤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일부러 개털이라고 속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날 가볼 4곳의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 뒤 집행관실을 나오는데 입구에 담배를 피워문 3명의 중년 남자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 105만원에 물건을 잡았잖아. 그 채무자한테 130만원을 불렀는데 도로 살 것 같더라고.” 동산경매업자가 낙찰받은 물건을 처리하는 방식은 3가지다. 대부분은 물건을 채무자한테 비싸게 되팔거나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물건을 집안에서 빼내 다른 데로 팔아넘긴다. 반면 양씨 회사인 한국동산경매정보주식회사는 임대료를 받고 채무자한테 다시 넘겨주기도 한다.

고스톱 빚 10만원 때문에…

낙찰받은 물건을 채무자한테 되판다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니다. 빚을 갚지 못해 살림살이를 뺏긴 채무자가 도대체 어디서 돈을 마련해 살림살이를 되살 것인가. 그래서 업자들은 한 사람이 낙찰받으면 즉석에서 채무자들을 다같이 협박하기도 한다. “물건을 빼내면 동네가 시끄러워질 텐데”, “우리는 가구는 다 바깥으로 내던져버리는데”, “그러니 험한 꼴 보기 전에 다시 사라”는 식으로 같이 온 업자들이 부추기는 것이다. 이른바 ‘견제 속의 협조’다. 채무자에게 하루이틀 말미를 준 뒤, ‘친절히’(?) 고리 사채업자를 소개시켜주면서 급전을 융통해 되사라고 몰아세우는 업자도 있다. 특히 채무자가 여자라면 업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십상이다. 남편이 웃돈을 주고 물건을 되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전날 여자가 채무자인 신당동 아파트에 대여섯명의 업자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물론 그런 업자들 못지않게 아예 드러누워버리는, 만만찮은 채무자를 만나면 업자들도 물릴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9시30분께가 되자 법원 집행관 사무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텅 빈 파장이었다. 채권자, 업자, 법원 집행관 모두 경매현장으로 이미 다 뜬 것이다. 우리도 12시로 예정된 가락동 시영아파트로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집행관 창구에서 서성거리던, 얼룩덜룩 체크무늬 와이셔츠를 받쳐입은 한 노인과 마주쳤다. “저, 성내동 시영아파트쪽 채권자죠? 압류물건 감정가는 46만원이던데, 받을 빚이 얼마입니까?” 양씨가 물었다. 이날 우리가 가기로 한 곳 중 하나였다. “빚? 얼마 안 돼. 10만원이야.” “아니 10만원 갖고 압류까지 하고.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물었다. “도대체 괘씸해서 그러지, 98년에 빌려준 건데 피하기만 하잖아. 경매집행하는 데 들어간 비용만 벌써 35만원 넘게 썼어.” 어이가 없었다. 이 노인의 채권 강제집행을 맡은 법원 직원이 차를 타다 말고 혀를 끌끌 차며 이죽거렸다. “가봤자 개털”이라고 했던 그 직원이었다. “할아버지, 점 100원짜리 고스톱치다 빌려준 10만원을 꼭 그렇게 받아야겠습니까.”

첫 번째 경매물건이 있는 가락동 시영아파트 경매시간은 12시. 도착하고 나니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일단 채무자의 집안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낡은 17평 아파트인 이 집 경매물건은 찻장, 냉장고, 정수기 등을 합쳐 총 100만원. 채권자와 우리가 마주친 건 거의 동시였다. 채권자인, 의정부의 한 금융기관에서 나온 젊은 남자가 아파트 문 앞에 막 도착한 것이다.

채무자인 아들은 없고, 집안에는 그의 부인과 아버지 김아무개씨만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방안에 있는 살림살이에 압류딱지가 붙어 있지 않았다. 알고보니 김씨의 부인이 원래 앞에 붙어 있던 붉은 딱지를 눈에 안 보이게 살림살이 뒤쪽으로 옮겨붙여놓은 것이었다. “법도 질서가 있는 게 아닌가. 우리 아들이 작은아버지한테 보증서줬다가 이렇게 된 것인데, 집에 들어와 아무 데나 빨간 딱지를 막 붙여도 되는가 말이야.” 채권자를 보자마자 김씨가 따지기 시작했다. “딱지는 우리가 아니라 법원이 붙인 거예요. 그런 말 하지 말고, 어떡할 겁니까? 12시에 경매되기 전에 해결할 겁니까?” 점차 험악해지자 김씨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게 바꿨다. “그러니까 12시에 업자들이 오기 전에 해결할 겁니까 말 겁니까?” 채권자가 계속 전화선 저쪽에 있는 아들을 몰아세웠다. “그렇게 구두로 약속하는 건 필요없어요”라며 채권자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들통날 뻔한 사진기자

그러자 양씨가 자기 명함을 김씨에게 건네주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경매에 넘어가도 낙찰금액의 절반은 아드님의 부인이 배당받을 수 있습니다. 부부가 공동소유니까. 그리고 채권자나 법원 직원이 와도 문을 안 열어주면 됩니다. 꼭 열어줄 필요는 없어요. 또 채무자가 경매에 참여해 낙찰받을 수도 있어요.” 처음에 우리를 달가워하지 않던 김씨의 안색이 점차 풀리고 있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씨가 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근처 시장통에서 일하던 상인 한명이 전대에 200여만원을 넣어들고 부리나케 오토바이로 달려왔다. 김씨의 친구였다. 태어나서 한번도 경매에 참여해보지 않은 그였지만 당장 친구의 살림살이가 남에게 넘어간다기에 무작정 달려온 것이었다.

12시가 가까워지자 우리는 집을 나왔다. 김씨의 친구도 뒤따라 나왔다. 김씨가 문을 안에서 걸어잠그고 버티기로 작정한 것이다. 잠시 뒤 법원 집행관이 도착했다. 아까 법원에서 “가봤자 개털이야”라고 말했던 그 직원이었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아파트 앞에 나, 법원 직원, 채권자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찍던 출판사진부 이정용 기자를 법원 집행관이 문제삼은 것이다. 법원에서 만날 때부터 눈썰미가 있어보이는 그였는데 심상찮은 느낌을 챈 모양이었다. 신분이 탄로나면 여기서 끝이다. 우리가 다음에 가기로 한 성내동 시영아파트 건도 이 집행관이 담당하는 게 아닌가. 거기서 또 마주쳐야 하는데…. 혹시 눈치챈 건 아닐까. “거기 뭐 하는 겁니까?” 그가 이 기자에게 다가갔다. ‘알아서 하겠지. 괜히 일행이라고 하면 더 꼬일 수 있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곧 되돌아왔다. 다행히 들통난 건 아닌 듯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 기자에게 슬쩍 물었다. “어찌된 겁니까?” “낡은 아파트만 골라서 찍으러 다니는 사진 전문가라고 둘러댔지.” 위기는 모면했지만, 이 기자는 일단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채권자가 집행관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김씨의 아파트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자 채권자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아니 조금 전까지 있었잖아요. 어찌된 겁니까?” 채권자는 답답했지만, 법원 직원은 더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불능으로 처리하고 휑 하니 되돌아가버렸다. 아침에 경매신청을 받을 때 채권자한테 출장비를 이미 받아낸 집행관으로서는 아쉬울 게 없는 것이다.

세 번째 경매참가 시도 역시 불발로 그치고 말았지만 나는 한발짝 더 깊숙이 동산경매의 세계에 발을 옮겼다고 여기며 2시로 예정된 성내동 시영아파트로 향했다. 받을 빚이 10만원이라던, 그 노인의 채무자가 사는 집이다. “자기 남편이 빚을 져서 법원에서 압류딱지를 붙이러 오자, 그 부인이 그랬대요. ‘당신들 우리 남편이 누군 줄 알고 그러냐’고. 돌아온 대답이 뭔지 알아요. ‘누구긴 누구야. 채무자이지.’” 가는 도중 양씨가 “채무자는 한번 엮이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며 입심좋게 말했다. 살림살이가 경매에 넘어간 것으로 채무가 종결되는 건 아니다. 동산압류가 이뤄지고 나면 월급과 보험 등에 대한 압류가 뒤따른다. 동산경매에 들어간 비용까지 채무자에게 물려서 또다시 압류를 걸기도 한다. 정상이자도 못낸 판에 연체이자까지 물고 경매비용까지 물어야 하는 빚쟁이가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양씨의 결론이었다.

브로커는 내 팔자에 없었네

성내동 시영아파트에 도착해보니 아직 아무도 와 있지 않았다. 채무자는 칠순 가까운 노인인데, 10평 남짓되는 아파트에서 노부부가 단둘이 살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 앞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있으려니 검은 그랜저가 우리 앞에 미끄러지듯 섰다. 그리고 넥타이를 맨 젊은 남자가 내렸다. 이 집 경매물건을 노리고 온 업자였다. 채권자인, 법원에서 만났던 그 노인도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채무자는 집에 있습니까?” 내가 노인에게 물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지금은 나가고 없더라고.” 그때 넥타이가 거들었다. “할아버지, 열쇠는 불렀어요?” “열쇠? 안 불렀는데.” “그럼 법원 집행관한테 한번 말해 보세요. 열쇠말이에요.” 한참 동안 법원 집행관과 휴대폰으로 통화를 한 노인은 “열쇠는 부를 거 없다고 그러는데. 오늘 경매는 못한 것으로 처리한대”라며 힘없이 말했다.

그러자 넥타이가 노인에게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아니 빚진 사람을 주먹 한대 치고말지 10만원을 받아내려고 합니까? 나도 비록 이런 일을 하는 장사치이긴 하지만 너무 심하잖아요.” 수양이 덜된 젊은 녀석이 까분다고 생각했을까. 노인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슨 말을 그리하나? 내 부동산 사무실에 와서 빌려갔는데 고스톱을 쳐서 잃었든 어쨌든 갚을 성의는 보여야지. 괘씸하잖아.”

끝내 모든 시도가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브로커 비슷한 일은 내 팔자에 없는 것일까. 대다수 채무자들은 막상 경매 때는 그저 멍한 상태로 지켜보지만 업자들이 살림살이를 빼낼 때는 눈물을 보인다고 한다. 물론 그래도 지속되는 게 삶이지만.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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