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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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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한 직사각형 방

등록 2009-03-11 10:35 수정 2020-05-03 04:25

1.
법조 담당 기자이던 1990년대 초, 구치소 견학 기회가 있었다. 기자들의 현장 감각을 도와준다는 명분과 함께 교정시설의 현대화를 홍보하려는 의도가 깔린 행사였다. 사정이 괜찮은 곳에만 안내한 탓인지, 말로만 듣던 ‘감방’의 살벌함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 곳은 달랐다.
사형장이었다. 기억을 더듬자면, 문이 있는 쪽 벽이 2m 남짓, 세로로 긴 쪽 벽이 4~5m쯤 되는 길쭉한 방이다. 창문 없는 방이다. 두꺼운 철제문을 열고 들어서면, 입구 쪽에 책상이 놓여 있고 3개 정도의 의자가 놓여 있다. 깨끗한 모습이다. 사형 집행 때 구치소장, 검사, 종교인 등이 앉는 자리다. 책상 맞은편에는 하나의 의자가 놓여 있다. 사형수가 앉는 자리다. 여기에서 남기고 싶은 말 등 마지막 진술 기회가 주어지고 종교의식도 행해진다. 의자는 레일 위에 놓여 있다. 진술이 끝나면 의자는 레일을 타고 뒤로 쭉 물러난다. 그리고 방의 뒤쪽 끝부분에 선다. 마룻바닥 가운데 의자를 둘러싼 정사각형 구역이 레일을 포함해 분리 가능한 구조로 돼 있다. 그 지점의 천장에서 올가미가 드리워져 있다. 3~4cm 두께의 올가미는 시커멓고 반질반질하다. 오랜 세월 온갖 체액에 절어 있는 듯하다. 의자에 앉은 사형수에게 올가미가 걸린다. 집행 버튼을 누르면 의자 아래 분리되는 마루 부분이 아래쪽으로 열린다. 마루 아래에는 한 층 정도의 빈 공간이 있다. 사형수는 의자와 함께 아래로 떨어진다. 아래층엔 교도관과 사망 여부를 확인하는 의사가 대기한다.
그 방은 평소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곳이다. 그날은 생뚱맞게도 기자들이 북적였다. 텅 빈 풍경이 어울리는 방이다. 견학 아닌 다른 이유로 들어선 사람들이 있는 광경이라면 섬뜩해지는 방이다. 그날 기자들은 모두 살아서 그 방을 나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각자 호기심의 양만큼 둘러보고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몇년 뒤인 1997년 겨울, 23명이 한꺼번에 사형 집행을 당하던 날 그 곳에서도 사형이 집행됐다. 10명이 들어서면 9명만 나오는 방, 길쭉한 직사각형은 무섭다.

2.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아무리 추하고 사악한 생명이라도, 생명이라는 이유로 생명을 이어온 게 지구 40여억 년의 역사다.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은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가혹한 형벌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형벌을 가하는 우리에게까지 가혹한 형태여서는 안 된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에 진저리치던 독일 국민들은 사형은 인류가 사용해선 안 되는 형벌의 종류임을 헌법에 명시했다(‘가석방 없는 종신형’마저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법적·철학적 사유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
이제 사형제를 존치할 것이냐, 폐지할 것이냐 하는 추상적 질문은 하지 말자. 저 방에 들어가, 한 사람을 구멍난 바닥으로 떨어뜨리겠느냐는 질문을 해보자. 우리가 버튼을 누르든 말든, 방 바깥에는 40여억 년째 봄이 오고 있을 것이다.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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